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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장은선] 산에서 이름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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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44회 작성일 08-02-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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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초입에는 명찰을 단
나무들이 있다
입학식날 초등학교 아이들처럼
해맑은 얼굴로 팔벌리고 서있다
단풍나무 사시나무 생강나무 굴참나무
숲을 빠져나온 바람들이 산문을 통과했다는듯
유쾌한 휘파람 소리를 낸다
동박새 찌르레기 딱따구리들의 합창소리에
그동안 부풀었던 풍선이라도 터지는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거리에서 잿비둘기같이 쏘다니던 이름이
계곡 물소리가 가까워올 수록 낯설어진다
나에게 상처받은 이들을 되새기며
오늘만이라도 나무가 되어 산을 오르자
집착의 그림자로 휘청거리던 나에게
계곡의 물세례가 지나온 길들을 비춰
모자를 벗기니 설익은 글자들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진다
낭떠러지에서 앉은뱅이 부처가 된 와송이
투명한 햇살에 머리를 빗고
털어버린 이름들을 주어담아
표지판을 꿰맞추고 있다
이 산까지도 속세의 마음이 따라왔구나
나무들을 노래 부르며 회초리 몇 개 덤으로
그만 내려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