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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장은선] 나무에게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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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13회 작성일 08-02-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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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조명기구가
책더미 사이로 가을을 밝히네요
꽃무늬 벽지에 금간 얼룩들이 흉터같이 드러나요
그동안 달빛에 너무 등을 돌렸나봐요
구름 위를 가는 하얀 조각배에 입맞추며
늑골에 쌓인 검은 먼지들을 씻었어야 되는데요
잡풀처럼 자란 비루한 언어들이
두껍게 화장을 하고 허공을 날으네요
작은 산이라도 올라 팔벌린 나무들과
살가운 숨이라도 나누어야겠어요
나무의 얼굴들은 온몸이 얼면서도 달빛에 전생을 문지르어
미소짓는 부처 같으니까요
형형색색 지붕과 간판들을 뒤집어엎던 바람들도
나무 곁을 지나면 순한 미풍이 되어요
계수나무 어린 달조각이 뼈마디에 파고들어
들국화 향기나는 나이테가 되었나봐요
펼쳐든 책갈피 속 나무의 닳아 주름진 지문들이
달로 가는 지도를 가리키네요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가을달이 천천히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