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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최숙자] 멈추어버린 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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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37회 작성일 08-02-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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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백일장 나가서 남의 시계만 훔쳐보았니?”손목에 볼펜으로
그려진 시계 때문에 손바닥 혼쭐나게 실컷 맞고 돌아와 잠결에도
흐느껴 울었던 그날부터 검둥이에게 아끼던 밥도 후하게 주시는
어머니를 눈치 채고 몰래 검둥이 귀에다 혹시 개장수가 올지도
모르니 어디라도 꼭꼭 숨어 있으라고 그처럼 귓속말로 일러두었
건만 수업도 귓등으로 받는 둥 마는 둥 부랴부랴 달려와 책보도
내려놓지 못하고 검둥이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울고 보채는 나를 어르고 달래며 장에 가자고 조르시는 어머니
를 따라 손등으로 눈물을 지우며 장터에 가던 날 어머니는 검둥
이와 바꾼 돈으로 살림장만 안하시고 큰맘 먹고 어린 나에게 시
계를 사 주셨지만 시큰 둥 검둥이 때문에 마음 상해져 돌아오는
길목 이게 꿈 아닌가 개장수 오토바이 철망 속에 며칠 동안 끌려
다녀 지치고 지친 형색으로도 나를 알아보고 어쩔 줄 모르던 그
눈빛 와락 끌어안고 싶었지만 차마 바로 볼 수 없어 외면하고 돌
아설 때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르는 예수를 보
았다 손목시계는 이미 멈추어 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