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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최월순] 기억 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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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46회 작성일 08-02-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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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 찰랑거리고 얼굴 하얗던 음악 선생님
손수 곱게 갈아 만든 토마토 쥬스 한 잔
그분께 전하라 하셨다
늘 엄하기만 하셨던 그분
조금 얼굴이 붉어졌던가
돌담엔 붉은 담쟁이 엉켜있고
햇살은 망초꽃 이파리 뚝뚝 떨구고 있었다
열서너 살 어린 계집아이였던 나는
연애편지 전하듯 쥬스 한 잔 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엄하신 그분 때문인지
붉어진 그분 얼굴 때문인지
가슴이 콩콩 뛰었다
내 나이 지천명에 이르러
엄하시던 그분
돌아가셨다는 소식 듣고
그날 유난히 붉게 빛나던 담쟁이 이파리
눈 아프게 빛나던 망초꽃 떨어지던 모습
수줍게 마음 전하던 음악 선생님
눈에 어리던 것이다
가을녘 이끼 낀 돌담엔 담쟁이넝쿨 우거지고
아마도 붉어진 그분 마음
지금쯤 흙 속에 묻혀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