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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서귀옥] 연애편지 읽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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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76회 작성일 08-02-19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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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이 세상의 주소를 다 지우는 저녁
인편 끊긴 지 오래된 마흔 외딴몸에도
기별 오려나, 빗줄기에서 우체부 자전거바퀴 소리가 읽힌다
장롱 속 나프탈렌을 넣다가 배달 받은
배냇저고리
소인 찍히지 않은 편지 같은,
연애편지란 그런 거지
발길질로 보낸 첫 태동 읽으시고 한땀한땀 눌러쓴
어머니 親筆답장처럼
시작도 끝도 살아서 치러야 할 연애지침서 한권 분량이어야지
고속도로에서 빠르게 스쳐보낸 가로수처럼
온 줄 모르고 놓쳐버린 몇 번 안되는 삶의 기회가
사랑 뿐이겠냐만,
치통없이 자란 사랑니 보고서야
왔다 갔음 짐직한 뒷북이 그것 뿐이랴만
길들여지지 않는 고통은
그것 뿐
바람의 발자국 위로만 제 걸음 놓는 벚꽃이파리와
새의 날개짓 數만큼 흔들리는 나뭇잎과
햇빛의 심장부를 끌어안고 타 죽은 그림자처럼
연애편지는 온몸으로 읽어줘야 정상인데
눈치로는 한 줄도 막막한데
살아서가 아니면 죽어서도 못 치른다고 추신이 또 한권,
연애에 대한 오래된 속설 하나, 어머니를 믿지마!
떨어지는 도토리 소리에도 生짧은 이를 위해
초승처럼 합장하던 내게
“니는 사막에 떨궈놔도 살 아(兒)다”하셨던 어머니!
노을이 짙어요
사랑이 자꾸 반송되어요
당신의 傳書鳩*는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게 도착하는 게 탈이
에요
일찍 소등한다고 내 고독이 잠든 거라 생각마세요
무성한 어둠의 숲속에서도 울 곳을 찾지 못한다면
불 켜야 환해지는 아침을
다시 기다려도 되겠지요
􀓄전서구: 통신에 이용하기 위하여 훈련된 비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