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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서귀옥] 숯가마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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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97회 작성일 08-02-19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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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타닥타닥 타는 고속도로를 달려
숯가마에 당도하니
갈참나무 먼저 와 젖은 기억 내리고 있다
나이테, 뒤집어 벗어놓은 점퍼처럼 캄캄했던 날들의 단면 위로
굴러나오는 바퀴
잘리면서 나무의 고독은 환해진다
마음의 불기도 그 바닥까지 소모해야
미련이 남지 않는 법인데
이 겨울 반딧불이 같은 불씨 몇 개 꺼질세라 품고 사는데
저마다 제 겨드랑이에 시린손 묻으니
마음이 눈밭일 밖에
가마가 열리면서 오랜 말문도 열렸다
가마 속으로
도저히 날 수 없는 무거운 날개를 가진 늙은 가장이 들며
덤으로 들린 풀봉지 같은 그림자를 떨어뜨린다
그림자만 내려도 쉬워지는 일
가마 속으로
전소된 심장 한칸을 들고, 방금 이별한 여자가 들며
한 사람 잊는 일이 저 죽는 일이어서 목숨 하나 건지는 셈치고
꺾지 않았다던 추억을 풀어놓는다
추억만 내려도 가벼워지는 일
생각해보면 저를 놓아주는 일은 일도 아니다
깨끗하게 내려놓으려고 제 가장 안쪽을 비운
나무, 그 환한 곁에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