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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서귀옥]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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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70회 작성일 08-02-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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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키우는 공작선인장에 물 주다
툭 줄기를 꺾고 말았다
그냥 둬 보기로 하였다
베란다 깨진 유리창이 제 몸에서 햇빛 몇가닥 풀어 금을 묶고
있다
바람 한점 새지 않았다
툭 이별 온 날 종일 빗줄기 쏘여 성한 데라고 몸만 남고 나니
앓던 감기가 낫고
生짧은 어머니를 묻고 와 가위누르는 어둠에 위로 받고 나니
어느새 아침이 와 있는,
시간이 낫게 하는 病을 꽃으로 앓게 하는 봄에는
한 生을 믿는 일이 쉬워진다
일어날 일은 무슨 일 있어도 일어나고
세상은 우발적이고
털끝 하나 다치지 않는다면 세상 참 무안할 일이지
고비마다 징검다리 놓듯 검버섯 띄운 할머니의 연륜을 보았
다면
저 우연한 고통조차 꽃 치르기 전 먼저 피울
애벌꽃잎인 가시로 거둘 테지
스스로를 벼랑으로 몰아내는 것만큼 치욕적인 화해는 없으
니까
백살이 넘어도 아픈 데 많은 할머니
아직 세상 안부가 궁금하다
내 변명이 통했을까
선인장 상처 부위에 네가닥 가시가 돋았다
줄기가 다 꽃의 추억에 사로잡혀 있는 줄 알았더니
상처가, 사랑한 나머지 덥석 쥔 세상의 손자국인 줄 알아보고
몸의 굵은 밧줄을 풀어낸 것이다
약이 달 때마다 풀었다 묶는 할머니 壽衣보관함
분홍보자기 매듭처럼
무늬마저 단단한 끈,
귀먹은 할머니 빈 수화기에 대고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그러니까 산다야
안부를 흘려놓는다
공중에
죽어도 풀리지 않는 매듭 묶인 자국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