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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2007년 [시-이화국] 지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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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42회 작성일 08-02-20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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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無名)이 된 그의 반쪽이
살아있는 나의 반쪽을 끌고 다닌다
괄태충처럼 우린 자웅(雌雄) 한 몸으로 한 집에 살았다
태풍에 끄떡 없다가 중풍에 쓰러져서도
일흔 두 계절을 그는 나를 끌고 꿈틀거리며 기어갔다
일백일흔 여섯 계절 앞에서 허리가 부러졌다
우리는 자와 웅으로 갈렸다 그렇게 헤어졌다
오랜 은둔에서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 눈총이 따가웠다
오뉴월 햇빛보다 따가웠다
그늘진 곳으로 스며들어 무덤을 팠다
위기에서 음습한 데 찾아 숨는 건 나의 생존 방식
눈에 보이지 않아 세상은 나를 없는 줄 알지만
고요함과 따스함의 성채인 흙벽 내 둥지
내 몸의 남은 반쪽이 자생으로 길어지고 있다
미래의 세계에서는 생명인 나의 반쪽이
무명인 그의 반쪽을 끌고 가려는지
내 허리가 자꾸 늘어나며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