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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소설-윤홍렬] 逆風은 불어도 江물은 흐른다.Ⅹ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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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73회 작성일 09-02-0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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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꾜요…꼬옥, 꼬꾜요…꼬옥”
벌써 두 회째 닭이 운다. 조선 땅에 무섭게 몰아닥치는 회오리 바람결
에 휘말려‘조선의 운명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핑핑 돌아가고 있
는데도 새벽이 되었음을 알리는 닭울음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나’라는 생각에 여선규는 감동인지 신기함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생각이
들었다. 느닷없이 긴 한숨이 나온다.
옆에서 곤하게 자고 있는 아내의 숨소리가 가냘프게 들려온다. 여선규
는 불 꺼진 방의 천정을 응시하고 눈만을 깜박거린다. 보이는 것은 없지
만 의식은 말똥말똥하다. 아내가 전달하는 처남의 의견을 벌써 몇 번째 되
풀이 하여 이렇게 저렇게 새겨보고 궁리 해보곤 하는 것이다. 도청(道廳)
있는 곳에 살고 있는 처남의 안목이 훨씬 밝을 것이리라고 생각은 한다.
또 지난날처럼 날마다 밤낮 없이 기차만 타고 다니던 시절과는 달리 청진
거리를 휘젓고 다닐 테니까 보고 듣는 것이 빠르고 많으리라. 일철(日本
製鐵) 공장의‘노동조합 위원장’이라는 직책이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소련군의 군정청(軍政廳)이 있는 곳이고 하니 듣고 보고 하는
것이 이곳 무산에서 보다는 훨씬 빠르고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 각 직장
마다‘세포위원장’이라는 이름의 공개적인 스파이가 한 둘 정도는 배치
되었다는 말과, 이제 곧 각 부락마다 세포위원장이라는 이름의 스파이가
배치 될 것이라는 말… 알 듯도 하고 냉큼 이해가 잘 안되기도 하고 아리
송하다. 전쟁도 끝났고 이제 조금 있으면 소련군들도 돌아갈 것이라고 하
는 데 왜 스파이가 필요한 것일까. 맞겨루는 적도 없는 데 무엇에 필요한
스파이일까. 그리고 함경북도 자치위원장은 허수아비고 어디선가 불쑥 나
타난 공산당 세포위원장이라는 자가 실질적인 도지사 행세를 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다. 아무리 제도적(制度的) 조직 체계에서 임명된
도지사가 아니라할 지라도 갑자기 해방된 강산에서 과도적기적인 방편으
로 생겨 난 것이 자치위원회라는 것이다. 도지사도 그렇고 군수도 마찬가
지다. 여선규가 생각했던 바도 그렇다. 언젠가 정식 정부가 들어서면 분명
한 행정체계의 순서와 절차를 밟아 새로운 군수가 임명될 것이리라고 짐
작하고 있었다. 뭐? 공산당 세포위원장? 공산당이면 공산당내부 문제나
관여 할 것이지 무슨 권리로 행정에 끼어든다는 말인가. 처남이 잘못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참 우스운 세상이 되는 것이다. 정말 앞날을 짐작할
수 없는 판국이로구나. 처남은‘우리 조선 땅에 큰 바람이 부는갑소.’라고
했다는 데, 아내에게서 전해들은 말대로라면 바람정도가 아니라 천지개벽
이 벌어질 판이 아닌가. 도지사를 제쳐 놓고 뭐? 세포위원장? 행정직에 무
슨 놈의 세포위원장인지 개뿔따귄지 하는 것이 도(道) 행정의 실권을 쥐
고 흔든단 말인가. 일본만 망해 도망가면 우리 조선은 독립을 다시 찾고
잘 살 것이라 생각 했는데 난 데 없이 공산당은 뭐고 세포위원장은 뭐란
말인가. 여선규는 또다시 긴 한숨을 쉬면서 천장만 쳐다본다. 우리 조선
사람들도 이 군수 관사처럼 훌륭한 집을 짓고 살 텐데…‘우리 조선 땅에
큰 바람이 부는갑소. 요즘 세상 돌아가는 물계르 보니 셈판 짐작도 몽하
껫소. 그러니 매부도 고향에 미련으 두지 말고 청진으로 후딱 오락합세.
우서는 내가 있는 제철공장 노조의 사무직으로 있으믄서리 세상 돌아가는
헹페느 보자 이기오. 그러다가 다른일으 해도 될끼 아이겠음. 아무리 매부
가 양심으 지키믄서 잘 했다캐도 읍사무소 서기질도 일본의 쪽바리드르
심부름하고 돈받아 먹은 자리 애이요?. 청진 거리에 스파이가 참 마이 생
겼소. 무산이라고 하여 마우제으 손길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일끼오. 내생
각엔 그렇소. 기러니 세상 인시믄 모르오. …우물거리디 말고 청진으로 훌
딱 뜨는기 좋을끼오. 우물거리디 말고 날래 뜨자고 합세. 자라나는 아아들
가르치는 문제르 봐서라도 그 무산 산골에 미련으 개질필요 없음메. 매부
하가 잘 상의 하여 날래날래 아주 이사르 하도록 합세. 나도 가족들 다 온
김에 아주 여기서 살끼요. 우리 함께 삽세.’
머리맡 창문이 뿌여지기 시작 한다. 여선규는 아내의 수면에 방해가 되
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불에서 빠져 나와 화장실에 들어가 후련하게 소변
을 보았다. 주방으로 들어가 냉수를 한 대접 마시고 거실의 소파에 앉았
다. 다시 궁리에 잠긴다.
요즘 길병석이 흘렸다는 말과 청진에 다녀온 아내가 전달하는 말과는
연결이 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스파이들이 많이 늘었다는 말이 자꾸
길병석과 연결이 지어진다. 엊그제 세미나에 참석하였던 길병석은 그 자
리에서 무슨 특수 임무를 부여 받았다고 봐야하나? 그 임무의 타래가 한
가닥씩 한 가닥씩 풀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자 여선
규는 무심결에 또 도리질을 쳤다. 끔찍스러운 생각이 번쩍 하여서 도리질
이 쳐졌던 것이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다른 부서의 비밀지령을 받아서 동
료의 동태를 염탐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정한다. 자기직
장의 동료를 속이고 직속상사를 따돌리고 하면서 뒷전에서 다른 쑥덕공론
을 나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여선규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상당히 발이 넓게 활동하는 처남의
말이기 때문에 안 믿을 수가 없다. 함경북도의 수부(首府) 청진에 사는 처
남의 말인 데 믿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요즘 길병석의 언동이 충분히 의심스럽다. 다분히 공무에 관
계되는 일인데도 위원장은 물론이고 자신의 직속 상사인 계장 과장을 따
돌려 놓고 제멋대로의 무슨 친목회라든가 소련군 환영 준비위원회를 결성
한다는 말이 들린다. 곧 여기도 공산당을 조직해야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는 말도 들린다. 어쩌면 처남이 말한 것처럼 이 무주군청에 배치된 스파
이, 뭐? 세포위원장이라던가? 그런 직책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조선 천지에 몰아닥친다는 큰 변화가 이 무산 군청이라고 하여 무
풍지대로 남아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 바람을 몰고 오는 인물이 길병석이
란 말인가. 그 바람의 영향이 우리 가정을 깨뜨리지는 않을까. 일본 놈에
게서 월급을 받아먹은 자는 모조리 친일파로 몰아 부친다면 나도 한 줄에
엮일 것이다. 샛강골에서 화전민으로 그냥 살았더라면… 여선규는 입가에
웃음을 풍긴다. 읍사무소 서기도 영화였나? 그 험한 산마루를 세 개씩이
나 오르내리며 봄,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통
근하였던 그 서기 생활도 친일파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일까? 일본이 패망
하였다는 소식은 그렇듯 통쾌하였는데 소련군의 출현은 왜 이렇게 불안만
몰고 오는 것일까. 그런데 그 친일파설…‘일본 놈 밑에서 월급을 받아먹
던 놈들은 모조리 친일파고 친일파들은 모조리 숙청시킨다더라.’라고 연
설을 한 사람이 조선말을 유창하게 하는 소련 사람이더라는 것까지 들려
온다. 이 대목에서 숙청이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던 기억을
상기하면서 여선규는 빙그레 웃었다.
길병석……. 무산군 자치 위원회 위원장인 여선규가 직원들과 상의하여
채용한 직원이다. 원래 고향은 부령인데 외가가 무산이라고 했다. 일본 사
람 제재소에서 근무하던 노무자가 외조부라고 했다. 그 노무자를 여선규
도 아는 사람이다. 길병석의 부모들은 간도에서 여관을 경영했다고 들었
다. 해방된 조국에서 활동하고 싶어 자신만 홀로 귀국했다는 것이고 학력
은 간도에서 대성중학교를 졸업 했다고 했는데 뒤로 들리는 말로는 3학년
2학기에 퇴학을 당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의 학력보다 더 떨떠름한 것은
그의 부친이 여관을 경영한 것은 사실이지만 관동군 헌병대의 끄나풀 노
릇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해방이 되자마자 간도에서 쫓겨났고, 그래
서 고향 부령으로는 못 오고 만주의 서남쪽인 심양(審陽)으로 이사를 갈
정도로 괘씸한 반역자, 말하자면 민족반역자라는 것이다. 자신은 돈벌이가
잘 되는 고장으로 간다고 소문을 퍼뜨렸다는 데 실은 살기 좋은 고장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간도 교포들의 더 큰 보복이 두려워 도망을 간 것이
라는 말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길병석은 고국에서 살겠다고 홀로 귀국
해서 무산의 외가에 얹혀살고 있다고 들리기도 한다. 허기야 길병석을 처
음으로 무산군 자치 위원회에 손을 대고 그를 소개한 것은 그의 외조부인
박형래였다. 그 이웃집에 살고 있다는 총무과 서기 차상만이 이력서를 들
고 총무과장에게 청탁을 하였고 이어 총무과장의 협조로 위원장인 여선규
에게 소개가 되었던 것이다. 마침 일본인들이 물러난 자리하고 원산과 경
성으로 이사를 간 직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직원
들의 협의를 통과하였던 것이다. 대성중학교, 우리 겨레의 열과 혼이 담긴
훌륭한 민족학교다. 여선규도 한때 가고 싶어 했던 학교다. 그러나 두만강
기슭의 화전민의 경제 능력으로서는 한낱 희망뿐으로 끝났다. 한때 정신
적 동경을 하던 정도도 인연인지 길병석이 간도의 중학교 졸업생이라는
것이 은근히 반가웠다. 마치 동문졸업생을 만나는 것 같은 친밀감, 그런
감정이었다. 그런데 그 며칠 후에 들리는 뒷이야기로 반가움이 감쇄 되었
다. 밤길에서 지나가는 여학생을 농락하려다가 문제가 터졌고 여학생의
부형들이 강력하게 들고 일어났단다. 가뜩이나 민족반역 행위를 하는 그
아비를 미워하든 교직원들이 일종의 화풀이, 가슴속 깊이 쌓여 있던 울분
의 발산 방법으로 길병석을 퇴학시킨 것이라는 것이 간도 교포들 사이에
서는 공공연한 비밀로 흘러 다니는 화제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여선규
의 길병석에 대한 친밀감이 적지 않게 사위었다. ‘애비는 애비고 아들은
아들이다.’라고 그 애비의 반역행위와 아들의 위치는 별도라고 떼어서 생
각하고 있었는데, 길병석의 언행이 차츰 귀에 거슬리고 점점 못마땅한 사
람이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친일파설에서 영향을 받은 또 하나의 이유는
자신의 신분이다.
‘일본 놈들의 쇠사슬’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벅찬 감격에 휘말리어
펄쩍펄쩍 뛰는 군민들이 우르르 모여 군중집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원
내고 좌수 내고”하는 식으로 구두공천하고 박수를 치고 하여 여선규가
‘무산군 자치위원회’위원장으로 선정된 것이다. 읍사무소 서기 당시에 백
성들을 괴롭히지 않고 양심적으로 근무 하였다는 추천인의 설명에, 모였
던 군중들이‘옳소’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고… 그런 식이었다.
지난날 읍사무소 서기였던 여선규가 껑충 뛰어 군수격의‘무산군 자치
위원장’이 된 것이다. 물론 여선규는 거듭 거듭 사양을 하였지만 군중들
의 의사를 돌려놓지는 못하였다. 이어‘치안 대장’……말하자면‘경찰서
장’도 현장에 모였던 군중들이 구두로 추천하고“옳소”그리고 박수쳐서
치안대장도 만들어졌다. 상급기관의 지시라든가 다른 지역의 전례 같은
것을 참작한 것도 아니고 그냥 모여 있던 사람들이 중구난방 식으로 외치
는 고함소리가 좀 크게 들리는 의견이면 채택되는 식이었는데, 선정된 사
람은 남면에 사는 장기식이라는 40대 초반의 젊음이었다. 순간 여선규는
내심으로‘마땅한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해방되던 바로 그날 저녁때
읍사무소 직원, 병사 노무관계를 담당하였던 배철환 계장의 집으로 달려
갔던 사람이다. 그 배철환이라는 직원이 바로 여선규가 사직한 바로 그 자
리의 후임자리다. 자신을 징용대상자로 선출하여 징용을 보냈던 것을 보
복하겠다고 몽둥이를 들고 달려갔던 것인데 다행히 배철환이 기민하게 도
피하여 별 불상사는 없었지만 그렇듯, 개인감정을 가지고, 혈기로만 자신
의 불만을 해소하려던 태도가 마땅치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여선규는 입
맛을 다시며 좋아서 길길이 뛰는 장기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 무리
의 남면 사람들과 어울려 둥실거리는 장기식을 불안하게 바라보던 여선규
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장면을 보자 여선규는 자신의 사직이 잘한 처
사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징용 대상자를 선정하는 작업은 아닌 게 아
니라 읍 면사무소 노무계 직원들 몇 사람이 상의 하여 결정짓는다. 때로
는 주재소 순사부장이 관여하기도 하지만. 여선규가 읍사무소를 그만 둔
것도 실은 이 징용 대상자 선정 작업이 싫어서였다. 그런데 바로 자신의
후임이 장기식의 기습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오싹하기도 하였고‘차
라리 내가 당했더라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무산읍 사람들의 호위를 받으며 군청으로 밀려갔고 군청직원들에게 소
개가 되었고 기립하여 맞이하는 군청직원들의 박수를 받음으로써‘위원
장’자리에 앉으니 그 것이 바로‘무산군 자치위원장’의 취임이었다. 며칠
동안은 일본인이 물러나고 개인사정으로 자진 사퇴한 사람들의 자리를 채
우는‘인사행정’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도청에도 공문을 보내 무산군의
‘자치위원장’과‘치안대장’이 선출되었다는 것을 알리기로 하였는데 여비
조달이 문제였다. 무산군청의 금고 역할을 하던 곳이‘금융조합’인데 무
산군청 예금 지출을 난처해하는 것이었다. 함경북도 도지사에게서 발령받
은 군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금융조합 자체의 애로이기도
하여 전화로 상의를 하려고 시도해 보았는데 여기저기 혼선이 되어서 통
화가 잘 안된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청진에 공문을 보내는 것은 뒤로
미루고 현지 결원을 보충하는 작업을 서둘렀는데 그때 들어온 사람 중의
하나가 길병석이었다. 그렇게 해서 채용된 직원들 어느 누구도 전형위원
들 어느 누구에게서도 사사로운 배려를 받은 사람은 없다. 다만 여선규의
입장에서는 길병석이 대성중학교 졸업생이라고 하여 조금 반가워했던 것
은 사실이지만 별다른 배려를 한 점은 없다. 길병석이 청진에 다녀온 이
후의 행태가 차츰 불쾌해지고 있다. 공직자로서 직장상사의 명을 받고 출
장을 다녀왔으면 출장 다녀온 내용에 관하여 상사에게 서면으로 자세히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다. 서면보고는 뒤로 미루더라도 우선 구두로라도
자세히 보고 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 공직생활에 연륜이 낮아서 그러한 절
차에 어둡다 할말이면 상사에게 한 보고내용과 다른 동료들에게 한 한 말
의 내용이 차이가 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언제 불러서 조용히 타이르리
라고 내심에 다짐을 하고 있는 참인데 엊저녁에 아내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우리 조선 땅에 큰 바람이 불 것’이라던 처남의 말에서 길병석의
태도가 자꾸 연결 되는 듯하여 적이 불쾌한 것이다.’아내가 잠자리에서 깨
어나면 청진으로 가는 문제를 깊이 상의 하리라. 타향으로 가야하나?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