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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시-정명숙] 길들여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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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01회 작성일 09-02-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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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다는 것

금강산 등반에 마땅히 신을 신발이 없었다.
십년 된 등산화와 메이커만 믿고 산
불편한 운동화를 놓고 망설이다
내 발에 길들여진 굽 낮은 구두를 신고 길을 나섰다.
목표는 만물상 코스 중 천선대
아찔한 층암절벽과 하늘 찌를 것 같은
기암괴석에 매료되어 산을 오르는 동안
산길이 초행인 구두가 가쁜 숨 몰아쉬었다.
통증이 심해질수록 믿음 깊었던 발과 구두는
다툼이 잦았지만
산행을 멈출 수는 없는 일
고통의 길을 지나 천선대에 올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광 앞에서
그들도 산행의 진미를 느꼈으리라
그것도 잠시, 하산 길
가파른 길에 매끄럽게 단련된 돌계단을 내려오며
발목 삐거덕거릴 때마다 구두는 맨살 깎아내며
발을 버리고 싶어했다.
발 또한 중심 잃고 미끄러지는 구두보다는
맨발이 더 편할 거라고 여러 번 생각했지만
서로에게 길들여진 시간은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는다.
여름 볕에 달구어진 돌 위를 맨발로 걷게 할 수는 없다고
생살 깎아내며 자신을 보호해준 고마움 외면할 수 없다고
바뀐 생각은 그들의 결속을 더욱 단단히 다져주어
여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온천에 들려 상처투성이인 구두를 닦아주고
퉁퉁 부어오른 발을
물에 담가 주무르며 가슴으로 읽는다.
길들여진다는 건
내 아픔보다 너의 아픔을 먼저 생각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