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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시-신민걸] 너무 많은 잠자리에 대한 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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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01회 작성일 09-02-0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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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잠자리에 대한 미안함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거대한 곤충으로 변해 있는 것
을 발견했다.
초여름 어느날 아침두 살짜리 아들아이가 잠자리를 처음으로 만났다
좀처럼 가까이 오지 않는 잠자리를 쫓다가 넘어져 여린 무릎이 깨지곤 했다
며칠 후 함께 놀던 좀 큰 아이가 잡은 잠자리를 해치우는 걸 지켜보았다
잠자리의 날개를 뜯어내고, 머리를 뜯어내고, 꼬리를 뜯어내는 걸 오래 보았다
비 그치니 하늘 가득 잠자리 떼로 날아다니고, 아이가 자꾸 나가자고 조른다
흔했다, 고추잠자리랑 물잠자리 빼고는 다 똑같아 보이는 밀
잠자리였다, 잡는 방법도 다들 제각각이었고, 잡는 확률도 달랐
다. 누구는 금세 잡았고, 누구는 떨면서 잡았다, 누구는 빨래집
게도 들고 다녔다, 딱지를 따듯 참 많이도 잡았다, 검지만 높이
치켜들면 잠자리가 조심스레 달라붙고는 했다, 엄지를 가만히
가져가 다리를 잡기만 하면 잡히기도 했다, 다리가 뜯겨질까봐
그렇게 잡지는 못했다, 한쪽 날개만 잡으면 깨물기라도 할까봐
그렇게 잡지도 못했다, 발가벗은 채로 새카매져서 잠자리채를
들고 긴 낮 다 가도록 쏘다녔다, 채집상자를 산 아이들은 잡자마
자 싱싱한 채로 들고 다녔고, 없는 아이들은 손가락에 끼고 다니
느라 잠자리 날개가 축축해졌다, 다시 돌려보내려고 해도 잘 날
지 못했다, 누구는 시집장가를 보낸다고 꼬리를 조금 잘라내고
두 마리씩 실로 묶어 날려보내기도 했다, 결혼한 잠자리들은 서
로 다른 길로 가려해도 실이 끊어지지 않았다, 가끔 엉성하게 맨
실이 빠져 허망하게 달아나기도 했다, 그게 꼬리가 아니라 배라
는 걸 나중에야 알았고, 곤충이 그렇게나 많은 지도 배워서 알게
되었다, 밀잠자리만 해도 종류가 참 많았다, 잠자리 노래도 곧잘
불렀다, 꽁꽁, 윙윙윙, 꼭 살려주라는 말씀도 함께 얻어들었다,
잠자리에게 미안해해야 할지 망설이는 누구도 있긴 있었다, 나
중에 커서 프란츠 카프카의‘변신’을 읽기도 전에 잠자리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시를 쓴다고 했더니‘자넨 눈만 보이네.’하신
분이 있었는데, 잠자리처럼 머리만한 눈을 가지지는 못했다
생김새도 이름도 유별난 잠자리를 잡으라고 아들아이에게 잠
자리채를 쥐어줘야겠다, 너 아픈 만큼 잠자리도 아플 거라고도
일러줘야겠다, 제 맘대로 되지 않는 게 많다고는 더 나중에 알려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