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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시-신민걸] 門·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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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32회 작성일 09-02-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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門·2·11

하릴없이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떠드는 불우한 세상 위에
홍예를 틀어 큰 문 하나 오래 서 있었다
문은 열고자 해서 세운 것인가
닫아걸고 막고자 세운 것인가
문을 통해 들어서도 나서도
세상은 제풀에 돌고 얽고 꼬이고 풀리는데
문만 뎅그러니 보기 좋게 서 있고
문이 깡그리 다 타버렸다
문을 세운 자를 태우기 위해 문을 태웠나
문의 가식적인 의미와 역할을 태웠나
문이 사라지자 그제야
드나들던 자들과 그 위용을 배경으로 삼던 자들과
또한 누각에 들어 비루한 잠을 청하던 자들과
문을 가두고 차마 문이라 하던 쓸쓸한 자들이
울고불고 앞다투어 문을 애도하는데
문을 다시 세우자 한다
세우기 힘들다고 한다
세울 수 없다고도 한다
문 하나 서 있다, 소지처럼 하얀 꽃무덤
묵묵히 제자리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활활 타오르며
이 세상 저 세상의 가여운 통로가 되어
장차 말이 되지 않을 소리로 떠드는 자들을
오래도록 조용하고 크게 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