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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시-박대성] 깊고 깊은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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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61회 작성일 09-02-0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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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솥

어머니가 많이 아프던 날
그 내색 없이 쌀을 씻어 안치는 것을 보았다.
밥 짓는 어머니를 보았다.
나는 늘 아픈 어머니를 퍼먹고 살았다.
아픈 어머니가 씻지 않은 솥에 새 쌀을 씻어 안치는 것을 보고
‘어머니 왜, 씻지 않은 솥에 밥을 지으려 합니까?’나는 묻고
싶었지만
내 의문이 채 말이 되기도 전 그 잠깐, 벌써
식은 밥풀들이 새 쌀을 안고 뒹굴며
새 쌀이 묵은 밥풀을 안고 뒹굴며
뜨겁고도 감미로운 것들로 온 집이 끓어 넘치는 걸 보았다.
어머니와 새 쌀이
어머니와 식고 마른 밥풀이
어머니와 솥이 한 몸이 되어
밥이 되는 것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