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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시-박대성] 영랑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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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98회 작성일 09-02-0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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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에서

아무런 연유도 없는 이 쓸쓸함은 어디서 오는 건지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그대로인데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이라는 말은 그저 그 말의 물결일 뿐
나는 지금 저 호수인가 쓸쓸함인가
여기 이 호수와 외로움을 섞어 짠 검은 망토 자락 같은 충혼비옆에 앉는다.
이 碑를 헹구면 어떤 진액 같은 것이 흐를 것 같고, 죽어서
무엇이 된다함을 믿은 사람 하나 걸어 나올 것 같다.
통천군 사람 여남은 이가 반공反共하다 목숨을 잃었다는 비문이 새겨진
호수의 기슭은 물새들이 앉아 제 흥에 겹다.
碑는 무엇인가, 쓸쓸함의 조소彫塑인가 부종浮腫인가
물새 한 마리 비문을 읽는다.
검은 돌에 이름을 박아 넣은 진손부치라는 사람을 생각해 본다.
거란이나 여진 혹 말갈, 발해 사람이었지 모를 그가 고려 사람
을 좇아 고려인들이 외치는 반공을 좆다가 목숨을 건네주었을것이다.
복잡한 생각 없이 좋아하는 친구 따라 강남 왔다가 그 친구의
일을 그냥 돕다가
목숨을 져버린 남자들의 무모한 우정에 대해 생각해본다.
남자란 역사의 무엇인가
죽은 그들과 마주하기 맞춤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