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2008년 [시-최명선] 상처의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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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안쪽
호박 밑동에 똬리를 받치며
어머니 말씀 하셨다
병의 근원은 습함에 있는 거라고
늙은 호박을 가른다
좀처럼 칼이 먹히지 않는다
속은 분명히 비어 있을 터,
이 버팀의 힘은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어머니, 수술대 위에 누워서
암 덩이를 들어내는 동안
나는 호박 가르던 그 순간을 생각했다
여린 씨앗들을 위해
모질어질 수밖에 없었을 생의 외피를
다만 질기다 무심했던 자식과
행여 그 속내 근심으로 읽힐까 봐
커다란 혹 달고서야 젖은 속 열어 보인
무던한 당신,
공명으로 가는 길 그토록 깊어
내게 닿기까지 더뎠던 것인가
눅눅한 생일수록 쉬이 오지 않는 봄,
진즉 똬리가 돼드리지 못한 자책과
피우지 못한 몇 겹의 꽃들이
벗은 몸 다시 입는 어머니 병실에서
허기처럼 삼 년을 붉다가 졌다
호박 밑동에 똬리를 받치며
어머니 말씀 하셨다
병의 근원은 습함에 있는 거라고
늙은 호박을 가른다
좀처럼 칼이 먹히지 않는다
속은 분명히 비어 있을 터,
이 버팀의 힘은 어디로 부터 오는 것일까
어머니, 수술대 위에 누워서
암 덩이를 들어내는 동안
나는 호박 가르던 그 순간을 생각했다
여린 씨앗들을 위해
모질어질 수밖에 없었을 생의 외피를
다만 질기다 무심했던 자식과
행여 그 속내 근심으로 읽힐까 봐
커다란 혹 달고서야 젖은 속 열어 보인
무던한 당신,
공명으로 가는 길 그토록 깊어
내게 닿기까지 더뎠던 것인가
눅눅한 생일수록 쉬이 오지 않는 봄,
진즉 똬리가 돼드리지 못한 자책과
피우지 못한 몇 겹의 꽃들이
벗은 몸 다시 입는 어머니 병실에서
허기처럼 삼 년을 붉다가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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