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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시-장은선] 즐거운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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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516회 작성일 09-02-0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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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버스

시골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은 즐겁다
승용차들이 바람을 가르며
구인광고지를 부적처럼 내 얼굴에 뿌려
잠시라도 벌 서는 가로수와 한 몸이 되어본다
내가 팔 벌리면 그도 흔쾌히 팔 벌릴 것 같다
아이들이 던진 아이스크림이나 빨아먹는 우체통
노숙자같이 별빛이나 헤아렸을 굽은 등을 바라본다
수화기가 덜컹거리는 동전이나 삼키는 공중전화 박스
술꾼들의 투정이나 들었을 할머니의 목소리가 가라앉는다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그리움을 남기고
흐르는 세월의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착하디착한 운전기사에게 요금이 깎이고
옥수수알같은 이를 내보이며
커다란 생선함지박을 간밤의 꿈으로 품은 아낙네들
그녀들의 억척스런 생이 파도처럼 하얗게 밀려온다
물길같이 노선을 따라 곡예하는 버스들
헤엄치듯 피가 도는 삶이어서 즐겁다
지난 야근의 졸음을 깨우는 틈틈이 서는 정류장들
장마에 떠내려온 나뭇가지같이 떠밀리는 생이어도
밀고 밀리는 톱니같이 날선 삶의 틈바구니에서
때론 빈 광주리가 되어 햇살 한줌 실어보는 것도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