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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소설-한춘녀]희망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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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8,436회 작성일 05-03-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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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희망의다리가보인다.
희망의다리는도시를가로지르는큰강을사이에두고해가뜨는동쪽과해가
지는서쪽지역을잇고있다. 천국으로가기위해서는낙타가바늘구멍을통과해
야하듯이희망의다리로가는길은극심한병목현상을보이고있었다. 주차장을
방불케하는차량행렬은아예움직일생각이없는듯했다. 아침안개만이희끄
므레한옷자락을끌며느리느릿강을건너고있었다.
최주임은시계를들여다보았다.
젠장, 세금받아서다어디다쓰는거야. 다리를더만들든지하지.
그는 강 건너 빤히 보이는 곳에 근무처를 두고 십여 분씩 기다리고 있노라니
짜증이 났다. 오는 도중에 접촉사고까지 있었다. 앞선 그랜저 신형에서는 아직
10대로보이는여자애가내렸다. 어떡하실거예요? 제차뒷드렁크를살피던여
자애가 눈꼬리를 치켜올렸다. 그의 소형차를 깔보는 게 역력했다. 그렇게 갑자
기 서면어떡해? 한 마디해주려다가과장의지시가떠올랐다. 한 시간일찍오
도록. 지금쯤과장은이미와있을것이다.
최주임은지갑을꺼내들었다. 어머머. 기가막혀. 할수없이그는지갑을다
시열어만원권전부를건넸다. 손목시계를들여다보면서비굴한웃음을지었
다. 일찍출근해야돼서요. 여자애는그의행색을아래위로훑어보더니할수없
다는듯이제차로돌아갔다. 그는서둘러차에올랐다. 부모가졸부거나돈많은



늙은이한테빌붙어사는여자일테지. 너같은거, 쇠고랑차고들어오는건시간
문제다.
차는좀처럼빠질기미를보이지않는다.
최주임은담배를입에물었다. 과장의지시가아니더라도오늘은일찍가야
한다. 담배 첫 모금의 맛. 아마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모를 것이다. 휴
우–. 그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잠망경처럼 목을 쭈욱 뽑아들고 앞뒤 옆을 꼼꼼
히살폈다. 그러면그렇지, 아까그까만그랜저신형은그의좌측차선에서세
번째앞에있었다. 운전석위로조금솟아오른긴생머리가보였다. 거봐라. 좋
은차탔다고맨날앞서갈줄아냐? 그는빙그레웃는심정이되어담배연기를
제 눈앞에 뭉게뭉게 뿜어놓는다. 담배 연기는 배구공 무늬를 만들며 공글어지
더니 이내 해체되어 버렸다. 가끔 차도 막힐 만 했다. 사람도 이따끔‘앞서 간
것전부무효’같은 게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돈십만원으로해결을본것은다행이었다. 하지만그로서는꼭도둑맞은기
분이었다. 남들은제부모복이없으면처가덕이라도보더라만그런복도없고.
얼마전에는계장승진에도누락되었다. 혹시나했는데그보다2년후배인김주
임이계장이되었다. 집안에판검사도있고병원장도있다는김주임은처가에서
사주었다는그랜저를끌고다닌다. 이러다간만년주임으로끝나는건아닌지모
르겠다는생각을하자다시짜증스러워졌다. 그는담뱃불을비벼껐다.
차들이서서히빠지고있었다. 행여뒤질세라뒤를따랐다. 하지만최주임은
희망의다리위를엷은열패감에젖어달리고있는자신을이내발견했다. 아침
햇살을앞유리창에듬뿍안고달려오는맞은편차량들이희망차게보이는것과
는달리아침해를등지고그들과역행하는제모습은뭐하나제대로풀리는게
없는처지를말해주는것같아맘이편치않았다. 그는서둘러차를몰았다. 그
랜저신형은그새다른차선으로빠졌는지보이지않았다.
정문에선보초는오늘따라더큰소리로경례를올려붙였다.
무시하고통과했다. 저눔의자식. 설마중고차라고일부러그러는건아니겠

지? 괜히해보는 생각이다. 오늘같은 날은정문에서부터분위기가삼엄해지기
마련이었다. 남들은한번도와보지않는곳을매일같이들락거리다니아무래도
전생에죄가많은모양이었다. 그만둔다그만둔다하던것이벌써십년이넘어
서고있었다. 갇혀있기로만말하자면재소자들이나최주임이나마찬가지였다.
신참때는하루24시간근무하고그다음날쉬고다시24시간근무했다. 그근
무라는게감방보초서는것이었기때문에자기사무실자기책상이라는것도따
로없었다. 교대근무만있었다.
가장견디기힘든것이졸음이었다.
파도처럼밀려오는졸음과싸울때는차가운시멘트바닥이나마몸을눕힐수
있는재소자들이부러웠다. 졸음은오히려추울때더많이더자주찾아왔다. 불
기하나없는썰렁한복도에서눈멀겋게뜬채잠의늪속에서허우적거릴때면
이게 보초병이지 공무원인가 싶기도 하고 드르렁거리며 자는 저들이 죄수인지
졸린눈을까뒤집고선자기가죄수인지모를지경이었다. 그는여러번그만두
려고도했었다. 교정직이라는업무가생리에맞지않는것같았다. 두세번사직
서까지제출했다가상관에게꾸지람만듣고없었던일로하고말았다. 그때마다
최주임은눈에서술이겔겔흘러나오도록마셨다. 아이가둘인지금은그런객기
마저까마득한전설이되고말았지만.
흔히교도관들은스스로를무기수라고부른다.
자조 섞인 호칭이기도 하지만 가벼운 죄질의 미결수들이 교도관들을 동정해
서부르는말이기도하다. 자기들이야잠깐갇혀있다가나가면되지만교도관들
이야 사표를 내야만 그 곳을 벗어날 수 있으므로 무기수라고 부르는 것도 과히
틀린말은아니다. 말하자면법에갇힌그들은잠깐창살신세지만생계에발목
이묶인교도관들은평생동안갇혀살게되는것이다. 교도관들은더큰창살에
갇힌죄수인셈이다. 처음몇년보초근무를하는동안, 그는죄수들처럼이사
회로부터소외되고격리된듯한억울한심경에서헤어날수가없었다.
오늘아침구치소는커다란침묵에휩싸여있다.

30분씩들려주게되어있는아침방송도끝나고아침햇살이찬연히퍼지고있
는 마당에는 평화로운 정막감이 감돌았다. 발정 난 덩굴장미 가지가 정맥 같은
속잎을 틔워내고 있는 화단을 지나 본관 건물 쪽으로 최 주임은 바삐 걸어갔다.
본관 건물 앞에는 빨강 보라 노랑 팬지꽃들이 피어 있었다. 피어있다기보다 핀
채로심어놓여져있었다. 알록달록한팬지꽃덕분에얼핏공장같아보이는구
치소건물은아름답기까지하다.
사무실엔과장만빼놓고는다와있었다.
아무래도희망의다리에서너무오래지체된모양이었다. 그래도다른날보다
30분정도이르다. 주차장에과장차가세워져있는걸로봐서과장은곧바로간
부회의에들어간모양이었다. 몇몇직원들이아는체눈인사를했다. 커피를마
시고있던박계장은그가들어서자사동쪽을턱으로가리키며말했다.
“벌써소문이쫘악퍼졌는가본데? 자식들. 눈치하나는빠르단말야.”
“정문에들어서면서부터다르던데요. 조요–옹하잖습니까?”
그는서둘러앉으면서늦게온아침인사를그런식으로건넸다. 책상서랍을
열다말고 얼른 담배부터 입에 문다. 과장은 좀 있어야 올 것이다. 휴우–. 그는
이첫모금의맛때문에하루에한갑하고도반갑을더피운다. 담배를입에문
채당장필요한서류를재빨리뒤적인다. 다섯명의이름이적힌재소자명단을
들여다보면서그는다시담배를깊숙이빨아들인다. 다섯명중에서두명이그
의담당이다. 담배에서는이제쓴맛이줄무늬의바–코드처럼배어나왔다.
그는전화기를집어들었다. 그리고외부몇군데에전화를했다. 담당목사와
교화위원들이었다. 어제오후에도같은전화를했었다.
“아, 예. 목사님. 저최주임입니다. 내일급한일이있으니아침10시까지나
와주십사고요.”
그들은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다만 누구누구도 끼여 있느냐고만 물었
다. 그누구누구란미결수들이었다. 구치소안에는두종류의미결수가있다. 형
이확정되기전의미결수가있는가하면형이확정된뒤에도미결수로취급되고

있는극소수의사람들이있다. 그누구누구란후자에속한다. 그는이름을알려
주었다. 이동철이도 있나요? 정말 안됐군요. 그리고 최 교수는 지금 재심 청구
중인데……. 안타깝다는듯이몇번이고목사는말했었다. 오늘아침목사는벌
써이쪽으로출발했다고했다. 회의가늦어지는지과장은아직나타나지않고있
다.
최주임은옆동료에게고개를돌렸다. 같은주임이지만한참후배였다.
“어이, 이주임. 어제, 칫솔삼킨놈어떻게됐어? 괜찮대?”
“아, 예. 괘안타나봅니더. 그눔의자슥. 괜히한번허세부려본거라예.”
“부러진치솔쓸놈하나더늘었구만.”
“아니라예. 며칠동안손가락으로이빨닦게내버려둘랍니더. 지난번에도배
가른다고 난리 안 쳤습니꺼. 그 눔의 아가 아무래도 독방 체질인기라예.”자해
행위란 별로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맘 같아선 출근길의 접촉사고와 날아간 돈
십만원에대해성토하고싶었지만그럴만한사무실분위기가아니었다. 저마다
심각한얼굴로바쁘게돌아가고있었다.
흔한 자해행위는 배에‘빨랫줄’긋는 일이다. 하긴 최 주임도 한창때는 깨진
맥주병을들고, 다죽여버릴거야, 덤벼, 객기를부리던때도있었다. 차라리이
런건애교스럽다. 숟가락을삼키는사람, 제손가락을질겅질겅씹어서툇툇내
뱉는사람, 굶어죽는다고입술을꿰매는사람, 이꼴저꼴보기싫다고눈꺼풀을
꿰매는사람, 별별행위가다있지만딱한번, 제성기를잘라내동댕이치는남
자를 보았다. 간통죄나 강간죄로 들어 온 사람도 아니었다. 폭력범이었는데 왜
죄없는제성기를패대기쳤는지알수없었다. 기겁을한직원들이꿈틀대는그
것을급히환자와함께병원에옮겨가는등다시붙여주기위해고생했다.
이태껏최주임은그런것들을보아오면서크고작게감탄했다.
치솔이나 철사 같은 것들이 어떻게 통째로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 직
접본적이없는최주임으로서는제 몸보다큰동믈을거듭쉬어가면서삼키고
있는 뱀을 연상케 했는데 사람의 구강 구조도 그것과 같은지 어떤지는 잘 몰랐

다. 일단 식도를 넘어간 치솔이나 철사는 내시경을 이용하여 꺼낸다. 놀랍게도
그런것들이꾸불꾸불한소장한가운데들어가있을때가있다. 그런경우수술
을해서꺼낸다. 의무과직원말에의하면이물질이몸안에들어오면그주위에
고온의열이발생하게되는데그열에의해비스듬히휘어진이물질은조금씩장
에까지옮겨간다고했다. 연동과분절운동에의해이동하는그것들을생각할때
감탄스럽기까지한것이다.
더놀라운것은못이나바늘을삼켰을경우다. 생각만해도아찔한그것을점
액질의분비물로포대기처럼돌돌감아서소장대장을구비구비돌아대변으로
옮긴다는것은신비에가까웠다. 사람의몸이란단순히쌀을집어넣어떡을만들
어내는기계가아닌것이다. 복제인간을만들어내는세상이라고는하지만인체
란영원한불가사의로남을게틀림없다.
연달아세번째줄담배를태우고있을즈음과장이빠른걸음으로들어왔다.
과장은들어서자마자계장을향해말했다.
“박계장, 다연락했겠지?”
계장은다시최주임을돌아보며물었다.
“최주임. 다연락했지?”
“그럼요. 조금전에도확인했습니다. 다나오신답니다.”
목사는잠시후면도착할것이다. 아마도목사는도착하자마자이동철이와최
교수부터만나게해달라고할것이다. 하지만만나게해서는안된다. 목사의말
대로 1004번은 자기가 오늘집행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도 않고 있을 터였다.
집안도괜찮다는그는이번에야말로재심개시결정이떨어질거라고확신하고
있었다. 최근내노라하는변호사를사서감형되게끔그의가족들이백방으로노
력하고있었다. 대학강사라는신분으로해서당시떠들썩한충격을불러일으켰
던사건이라번번이재심청구가기각되었다. 이번이세번째재심청구신청이
었다. 얼마전만해도1004번은확신에차서최주임에게말했던것이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재심 청구가 받아들여질 겁니다. 지난번엔 생각을 잘못

했어요. 형사소송법420조5항에의거틀림없이재심결정이떨어질거예요.”
책가방끈이길어서그런가필요한법조항들을줄줄꿰고있었다.
최주임은아무말도하지않았다. 자기가만난사람중에재심개시결정이떨
어진 사람이 몇 명 있었던가, 생각했다. 그건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는 어린이
연쇄강간살인자로구속되어이년전에이미형이확정되어있었다. 최주임으
로서는전직대학강사보다1818번이여러모로마음에걸렸다.
1818번의경우, 1004번과는많이달랐다.
1818번은영치금보내는사람도없었다. 발끝에채이는돌멩이처럼여기저기
굴러다니며살던불량배였는데어느날큰사고를저지르고이곳으로이송왔다.
옮겨와서도 한동안 감방 식구들을 못 살게 구는 바람에 몇 번 불려오기도 하고
방을옮겨가기도했다.
재소자들은‘고수’라고불리우는사형수와한방쓰는것을싫어한다.
죽을사람이라무슨짓을할지모른다는선입감때문이었다. 개중에는눈에서
광기가 휘번득인다느니 살기가 느껴진다느니 하면서 방을 옮겨달라고 호소해
오기도하지만최주임은일축해버리곤한다. 그가만난사람중에는기록을보
지않고는사형수라는생각이안들정도의사람이더많았다. 그래도모를일이
었다. 재소자들은목사나교도관들에겐더없이순한양이었다가도제식구들이
면회라도오게되면이빨을갈아붙이면서포악한염소가되는경우가많았다. 규
정상사형수는독방에둘수없다. 혼자놔두면자살을시도하기때문이다. 수갑
이채워져있는데도그들은죽는방법을귀신같이도찾아낸다. 양말을풀어노끈
으로만든다거나러닝셔츠를찢어서새끼줄처럼길게꼬아목을매기도한다.
몇년전다른구치소에서‘뺑키통’이라고불리우는화장실에서목을매고죽
은사형수가있었다. 남자들감방에서어떻게여자용스타킹을구했는지아직까
지수수께끼다. 하필그날밤근무를섰던최주임은한바탕곤욕을치렀다. 나쁜
자식. 가만있다가왜 하필내근무때죽어? 제깐놈죽는건괜찮지만나는무
슨 죄야? 그 날 따라 시간마다 순찰 도는 것을 게을리한 그는 불려 다니기도 하

고조사를받기도했다. 다행히도재소자들이매시간순찰을돌았노라고말해주
어서시말서만썼다. 십년감수한최주임은마구욕을퍼부었다. 나쁜자식. 하
루라도더살면자기좋고나좋고. 그런데남의신세를조져?
욕을하면서도자신이라도그랬을런지모른다는생각이드는건어쩔수없었
다. 일단이안에들어오면목숨도자기것이아니다. 형이끝날때까지맡겨두
었다가나갈때찾아가지고나간다. 아니면아예주고가든지. 살자유죽을자
유도없고먹을자유굶을자유도없다. 입을벌려서라도억지로먹인다. 죄값을
다치를때까지는어쨌든살아있어주어야한다. 반면사형수들은호시탐탐죽을
기회만을엿본다. 가위에눌려화들짝눈을뜨면백색공포로시작되는아침햇
살, 철문이열릴때마다철커덩내려앉는가슴, 그리고호출당할때마다온몸의
피가거꾸로서기마련이다. 이쯤되면사는게사는것이아닌것이다.
그런데어느날부터인가1818번은사람이달라져갔다.
한번은아침운동시간에보니까1818번이운동장한귀퉁이에서두손을모
으고기도하고있었다. 다른재소자들은윗옷을벗어붙인채축구를하느라고정
신이없었다. 그들이달리거나멈춰설 때마다마른먼지가뭉게뭉게피어났다.
울퉁불퉁한몸뚱이위로용이며독수리며장미따위의검푸른문신들도꿈틀거
렸다. 숨가쁜호흡과땀과흙먼지가뒤범벅이된채한무리가되어뒹구는그곁
에서고개를숙인1818번의모습은퍽이나인상적이었다.
최 주임은 자기도 모르게 어깨를 으쓱했다. 기분이 묘했다. 간수인 자기보다
그가더커보이고자기가모르는어떤세계를이미약속받아놓은것같아더운
여름이었는데도한기가느껴졌다. 이런걸보람이라고해야할까. 최주임이그
얼마 전에 담당목사를 소개시켜 주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1818번은
오늘고분고분잘협조해줄것이다.
2

최주임과보안과직원세명은사동으로향했다.
1004번이먼저집행된다는것은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재심 청구중이
여서꿈에라도생각하지못하고있을터였다. 그렇기때문에순순히협조하지않
을가능성이다섯명중가장컸다. 관례상사형장에서가장가까운감방에있는
사형수부터집행한다. 그래야다른감방에소문이늦게퍼지고사형수들의동요
가적다. 더군다나1004번은장기기증의사를밝히지않은유일한사형수였다.
그만큼 1004번은 생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 나머지 네 사람은 눈과
콩팥을기증하겠다고했다. 1818번같은경우는자신의장기중에서쓸수있는
것은전부다른사람들을위해서써달라고부탁을해왔다. 장기를이식할경우
가능하면뒷순서로미룬다. 지금쯤밖에있는병원이식담당의사들이들어와서
검시관과함께절개수술준비를끝내고대기하고있을터였다.
경비가삼엄해졌다.
복도마다정복을입은교도관들이늘어서있다. 이구치소는각사무실과직원
식당그리고사동까지실내로연결되어있다. 본관과신관, 별관등의이름으로
불리는각각의건물들이전부복도로연결되어있어마치대형종합병원을연상
케한다. 중앙복도막다른곳에서꺽어지면바로그곳에몇개의사동이늘어서
있다.
최주임일행은사동초입경관구실앞에서멈춰섰다.
담당자를 불러내어 1004번을 조용히 데리고 나오도록 했다. 처음부터 눈치
채게 해서는 곤란하다. 과장의 특별지시가 있었다. 담당자가 열쇠 꾸러미를 들
고1004번이있는감방쪽으로걸어갔다.
최주임의시선도따라들어갔다.
복도를가운데두고양쪽으로늘어선감방은쥐죽은듯조용하다. 오늘같은
날은평소말썽을부리던재소자들도끽소리못하고엎드려있기마련이다. 느
닷없이 아침 운동이 중단되었는데다가 출입이 일체 금지되었으므로 거개는 짐
작하고있을것이다. 아침일찍사형장청소에동원되었던재소자들이가만있었

을리가없었다.
긴복도에는4월인데도불구하고한기가서려있었다.
철창을미처빠져나가지못한겨울이구석진곳마다뱀같이또아리를틀고있
었다. 요즘같은계절엔건물안보다밖이차라리따뜻하다. 최주임은감기기운
이라도있는지몸이움츠려드는걸느꼈다. 조금전에다녀온화장실에다시가
고싶어졌다. 이거담배도못피우고.
담당자가1004번이있는감방앞에서멈춰서는 게 보였다. 담당자는 창살만
있는감방창을들여다보면서외쳤다.
“1004번, 교무과연출.”
일단외쳐놓고출입문쪽으로와자물쇠를땄다. 철컹철문열리는소리가났
다. 빨리나와.
“1004번빨리나오라니까.”
담당자가다시한번소리쳤다.
1004번이 수갑 찬 모습으로 엉거주춤 복도에 나와 섰다. 1004번은 고개를
돌려최주임일행이있는입구쪽을바라보았다. 최주임과눈이마주치자반가
운표정을지었다. 재심청구가받아들여지지않았을까? 순간그런생각이든모
양이었다. 웃을까말까망설이더니곁에있는직원들을보고는의아해했다. 여
러사람이함께왔다는게게름직한모양이었다.
최주임은무표정하게말했다.
“자, 갑시다.”
뒤돌아섰다. 두명의직원이얼른1004번양옆에 바짝붙어서고나머지 한
명은1004번바로뒤에섰다. 최주임은자신의뒤통수에아우성치는의문의시
선이와둘러붙는것을느꼈다.
중앙복도쪽으로꺽어졌다.
최주임은얼핏희미한바람소리를들었다. 한순간수분을다빼앗겨안으로
말려들어가는갈잎소리같았다. 아! 하는소리였는지오, 하나님! 하는소리였

는지는확실치않다. 1004번이복도양쪽에늘어선교도관들을본모양이었다.
옆에서 걷던 직원들이 재빨리 1004번의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넣는 것이 느껴
졌다. 주저앉으려는1004번을일으켜세우는것같았다.
최주임은아직뒤돌아보지않았다.
얼이나간걸까? 더이상아무소리도나지않았다. 1004번이엉덩이를뒤로
뺀채질질끌려오고있다는건확실했다. 제발로시멘트바닥을딛고는있지만
허방을 딛는 다지류처럼 허둥거릴 터였다. 직원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1004번을둘러싼일단의발자국소리만이복도를따라울려퍼졌다.
사형장으로꺽어지는입구에서최주임은멈춰섰다.
사형 집행장은 복도 안쪽 깊숙이 위치해 있다. 흰색의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사형장건물은복도에서도외부에서도보이지않는다. 흰담장에둘러싸여꽃봉
오리같이숨은곳. 흔히재소자들이‘넥타이공장’이라고부르는곳이다.
최주임은천천히몸을돌려1004번의얼굴을보았다. 사람몸속의피를다
뽑아버리면이런얼굴빛이될까. 1004번의두눈은경악과공포감으로끝간데
없이열려져있었다. 입가의근육이발작적인경련을일으켰다. 무슨말인가하
려고하는것이다.
“1004번. 재심청구신청만으로는 집행이 연기되지 않는다는 거 잘 아시죠?
사형장에나가서억울하다고해봤자아무소용이없어요. 이왕이렇게된것, 마
음을굳게가지세요.”
서둘러뒤돌아섰다. 소란을피우게해서는안된다. 최주임은처음부터일이
꼬이기시작하면끝날때까지힘들어진다는것을알고있었다. 본인을위해서라
도생각할틈을주지말아야한다. 난동이라도부리게되면무능한직원으로낙
인찍힐수도있다.
이년전인가, 사형수가달아난사건이있었다.
사형장으로가는도중이었는데사형수가수갑을찬채사동쪽으로냅다달아
났다. 눈깜짝할새벌어진일이었다. 방금눈앞에서무슨일이일어났는지알아

챈교도관들이뒤좇았을때는이미사라진뒤였다. 몇개의사동을끼고뱅글뱅
글도는동안직원들숫자는점점불어났다. 수갑을찬채도망가는사형수는마
치캥거루같이껑충껑충뛰었다. 그런데도그렇게빠를수가없었다. 후다닥거
리는소리와사람들의고함소리, 복도를구르는발자국소리가짐승몰이꾼들을
방불케 했다. 사형수는 막다른 곳에 이르자 획 뒤돌아 섰다. 이 새끼들아. 가까
이오면다죽여. 벼락같이소리치며수갑찬손으로퍽퍽벽을치기도하고발을
굴렀다. 입안가득거품을일구며일생동안익혔을욕이란욕은죄다퍼부었다.
심장발작으로나중에는제풀에쓰러졌다. 일으킬때보니까오줌이흥건하더라
고 뒤늦게 동료가 말해 주었다. 그 때 최 주임은 사형장 안에 있어서 그런 일이
일어난줄도몰랐다. 집행이끝난뒤인솔한직원들이단단히책임추궁을당했
다.
집행장의흰담벼락작은철문앞에서1004번은잠시버티었다. 들어가지않
으려고두 다리를뻗대고상체를뒤로한껏제쳤다. 왜하필나야? 금방재심이
시작될텐데. 당신들정말이래도되는거야? 직원들이1004번을덜렁들어집
행장안마당으로옮겨놓았다.
안마당에는흰쌀알같은햇살들이흩어져뛰어놀고있었다.
싸리빗자국위로발자국들이어지러웠다. 아침일찍청소를하면서마당의풀
도뽑은모양인지한웅큼씩뽑혀나온흙덩이들이눈에띄었다. 담밑으로는냉
이며쑥부쟁이들이그대로있었다.
현관앞에서기다리고있던박계장이계단을내려왔다. 그리고1004번의손
을잡으며말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잠깐이면 끝납니다. 끝까지 남자다움을 잊지 말도
록.”
최주임은박계장뒤를따라계단을올라갔다.
최주임은현관문턱을넘다말고주춤했다. 하마터면밟고지나칠뻔했다. 현
관문턱과마지막계단콘크리트틈새에무당벌레만한노란꽃이끼워져있었다.

얼마전다른곳에서도본꽃이었다. 너무작아서아침청소때도미처못본모
양이었다.
집행실안에들어선최주임은잠시착각에빠졌다.
방금자기가가로질러온곳이햇볕환한마당이아니라캄캄한터널인것같
았다. 이안이바깥보다훨씬환했다. 이쏟아지는국수가닥같은불빛너머저편
엔적지않은사람들이있을것이다. 최주임에게는그들이아직보이지않았다.
최주임은지나치게밝은불빛에익숙해지려고눈을몇번꿈벅거렸다.
문 쪽에 서너 명, 그리고 벽을 따라 직원들이 둘러 서 있었다. 단상에도 소장
이하 다 착석하고 있었다. 소장 우측에 앉은 사람은 이제 갓 서른을 넘겼을까?
검찰에서나온검사일터였다. 그옆에뚱뚱한보안과장과교무과장이앉아있었
다. 그뒤쪽으로낯익은목사가앉아있고맨뒤쪽장의자엔배석자들이앉아있
었다. 낯익은직원들도눈에띄었다. 하긴교도관이라고다사형집행에참여하
는것은아니다. 업무가달라한번도사형집행에참여하지않고그만두는사람
도있다.
최주임은마치이자리가자신들의면접이나능력을평가받는일같이생각되
었다. 검사가젊은애송이라는것도약간우울했다. 최주임은신참때를떠올렸
다. 사형집행이있다기에보러갔었다. 지켜보고있는데한직원이아무렇지도
않은듯사형수목에올가미를걸었다. 흥분하여달려온자신은잊고저도모르
게‘지금저자식이제정신인가’하는생각이들었다. 그때만해도자신이이런
일을하게되리라곤생각지도못했었다.
최주임일행은한가운데로걸어나아갔다.
강단은마룻바닥보다단차가있게만들어져있다. 단상가운데앉은소장과마
주보게 되어있는 곳에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포승을 들고 있던 직원 두 명이
1004번에게달려들었다. 잠깐사이에수갑찬두손이겨드랑이에꼭붙여묶여
지고두무릎과발목도포승으로묶여졌다. 그런다음의자에앉혀졌다.
의자밑에는마루판자가따로만들어져깔려있다. 나무판자의결이다른방향

인탓도있지만주변마룻바닥보다는새것이어서기워입힌옷처럼금방표가났
다. 어느쪽이나더러운건마찬가지였으나아침에물걸레질을했는지오히려새
나무판자의더러움이생생하게드러났다. 아직물기가남아있는탓이었다.
머리위천장에는도르래를타고내려온밧줄이허공에매달려있고그끝에는
타원형의올가미가매어져있다. 마닐라삼으로만든굵은밧줄이다. 최주임은
교수형도중밧줄이끊어져살아난사람얘기가떠올랐다. 사형수가얼마나얼이
빠졌던지 다시 해야 한다면서 지하실 벽을 엉금엉금 기어오르더라는 것이었다.
그런데정작사형수보다더기겁한사람들은직원들이었다나.
으엄. 소장이마른기침을했다.
인정심문이시작됐다. 사형수의신원기록을들여다보면서소장은한손으로
안경을추켜올렸다. 사형집행이처음이라는소문이사실인지소장의목소리가
약간떨려나왔다.
죄수번호는? 성명은? 주소는?
신원 확인이 끝나자 소장은 판결문을 뒤적이며 소송과정에 대해 일일이 확인
했다. 사건에대한공소사실로부터시작해서1심선고와항소와상고와그기각
된사실, 마지막으로형이확정된사실까지길게이어졌다. 1004번은재심청구
신청을연거푸했기때문에지루했다. 와중에도소장의안경은몇번인가추켜올
려지고으엄, 마른기침은여러번터져나왔다.
유언차례가되었다.
여지껏은이름정도의간단한대답이거나맞죠? 하면예, 하는정도의대답이
었다. 아무정신이없는상태에서인정심문을끝낸사형수들도유언차례가되
면자기에게주어진마지막몇분을위해그동안준비했던말들을생각해내려
고 애쓴다. 거듭거듭 준비해 두었건만 정작 필요한 순간엔 하나도 기억해낼 수
없다. 그저빙글빙글어지러울뿐이다. 하지만무슨말이라도남기려고젖먹던
힘까지다하기마련이다.
옆에선최주임은마음이놓이지않았다.

지금까지는 말할 기회가 없었다. 데리고 오면서 단단히 말해 놓았지만 1004
번은 틀림없이 항변할 것이다. 유언을 기록하는 다른 과 직원이 강단 위에서
1004번의얼굴을빤히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운증후군 환자 같이 오목한 눈을
가진저직원하고는지난번재소자들체육행사때다툰일이있었다. 업사이드
가 아닌데 업사이드라고 우겨서 겨우 들어간 한 골을 무효시켰다. 어차피 사기
돋구자고 하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까다롭게 굴 게 뭐냔 말야. 저는 내려다보고
있고최주임은단상아래서올려다보려니심기가약간불편했다. 그러고있는데
1004번이집행장이다내려앉는듯한한숨을토해냈다.
곧 이어, 떨리지만 차분한 목소리가 최 주임의 허리께에서 천천히 흘러 나왔
다. 살아서해보는마지막말인유언은단상을향해나아가더니이내집행장전
체를휘어감았다.
“이왕이렇게된것, 여러사람들에게죄송할뿐입니다. 우선저희가족들에게
그동안고마웠다고전해주십시오. 제가죽은뒤에도목사님은저를위해기도
하시지마시고저로인해희생당한은아와영주그리고그가족들을위해기도해
주십시오…….”
1004번은말을멈추었다. 그러더니결심이선듯말했다.
지금이라도제장기를기증하겠습니다.
형광등불빛떨어지는소리가들릴정도로장내가숙연해졌다..
유언을기록하고있는직원의손끝만이열심히움직이고있었다. 최주임은소
장코끝에걸쳐진안경을올려다보았다. 당장이라도굴러떨어질것같았다. 얼
마전에부임한소장은오십중반은넘어보인다. 말단공무원으로시작한최주
임으로서는소장자리는꿈도꿀수없었다.
곧이어사형예배가있었다.
목사가단상에서내려와안수기도를시작했다. 기독교담당인최주임도함께
예배를보았다. 찬송가는목사가가장큰소리로불렀고최주임역시힘을주어
불렀기때문에1004번도작고떨리는목소리였지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성

경구절낭독에이어목사의기도가있었다. 죄를사하여주시옵고여기불쌍한
영혼을받아들이시사……. 1004번은모태신앙인이다. 1004번은고개를숙이
고있었다. 기도가끝났다. 그런데1004번의입에서는주기도문이흘러나오고
있었다.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아버지의이름을거룩하게하옵시며…….
박계장이묻는눈빛으로소장을올려다보았다.
소장은박계장을향해고개를끄덕했다. 계장은다시등뒤에선직원을돌아
보며고개를끄덕였다. 직원은죄수번호가적힌용수를재빨리1004번머리위
로뒤집어씌웠다. 순간, 움찔했다. 주기도문이빨라졌다. 하늘에계신우리아버
지.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 계속해서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를찾고있었다.
청회색천으로만든자루형태의용수는1004번의얼굴을가린채어깨위까지
내려왔다. 하늘에계신우리아버지.
다른직원이머리위에있는올가미를잡아당겨1004번의목에걸었다. 턱밑
으로 바짝 집어넣은 다음 빠져나가지 않도록 뒤에서 힘껏 잡아 당겼다. 단단히
올가미를죈다음양쪽에서부축하여일으켜세웠다. 앉았던의자는옆으로빼놓
았다. 최주임과계장, 목사가단상앞으로물러서고두직원도의자가놓여있던
마루판자에서재빨리떨어져나갔다.
계장이다시소장을올려다보았다.
소장의 안경은 여전히 위태로웠다. 아무래도 땀을 흘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소장이고개를끄덕였다. 단상과사형수사이를가르며흰커튼이병풍처럼그들
눈앞에펼쳐지며지나갔다. 벽한쪽에걷혀져있던커튼이었다. 커튼너머저쪽
에서‘버튼 눌러’고함소리가 들렸다. 강단 위에 있던 몇몇이 출입구 쪽으로 달
려나갔다. 그들이미처빠져나가기도전에등뒤에서꽈당, 35년이무너지는소
리가났다. 1004번이서있던나무판자가 내려앉으면서 지하실 내벽에 부딪히
는 소리였다. 나무판자는밑으로떨어지면서한쪽벽에가 붙게장치되어있다.
끝났다.
잠시후, 최주임은삶과죽음을일시적으로갈라놓았던흰커튼을걷어냈다.

의자가놓여있던곳에는죽음의함정이입을벌리고있었다. 방금전허공에
서한바퀴팽그르르돌았을도르래밧줄이묵직한것에의해아직왔다갔다하
고있었다.
목사가함정을내려다보며혼신의힘을다해주기도문을외기시작했다. 동참
한최주임눈에굵은밧줄의미세한떨림이확연히보였다. 마침내그떨림마저
정지되었을때밧줄은대낮같은불빛아래굳어진석회처럼희게아주희게보
였다.
지금, 지하실에서는1004번이숨끊어지기만을기다리고있을것이다. 이따
금빨리장기를떼어내가려는외부의병원의사들과검시관과의약간의실랑이
가 있을 때도 있다. 매달린 지 20분이 경과하면 검시를 하게 되고 검시가 끝난
뒤에도5분간더매달아놓게되어있으므로밖의의사들은그시간을줄이려고
하고검시관은규정을지키려고하기때문이다. 사람의눈은시간이경과해도크
게상하지않는반면콩팥은곧바로조직이손상되기때문이라고의무과직원이
말했었다.
최주임은사무실로돌아왔다.
사무실한쪽에서는교화위원들이예배를보고있었다. 사형수들과자매결연
을맺은그들은한달에한두번씩찾아와얘기도나누고먹을것을갖다주기도
한다. 교회 전도사인 1004번의종교자매는 최 주임이 들어서자마자 물어왔다.
최교수는요? 그는간단히말했다.
“최교수는편안하게잘갔습니다.”
잘 갔다는 말을 듣자 여신도 역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돈독한 믿음을
가지고이제막주의품안에날개를접은1004번을위하여곧바로기도로들어
갔다. 최주임은담배부터꺼내물었다. 담뱃불이단숨에중간까지빨려왔다. 두
모금에벌써손가락이뜨거워졌다. 최교수는편안히잘갔습니다. 사실이었다.
마지막엔깨끗하게갔다. 개중에는악을쓰며저주를퍼붓는사람도있고대성통
곡부터하는사람도있다.

최주임은눈을감았다.
아침일들이뜬금없이떠올랐기때문이다. 딸아이가종이쪽지를들고제방에
서나왔다.
“아빠. 이거오늘까지해가야하는데아빠직업을뭐라고써?”
최주임은어젯밤술에취해늦게들어온탓인지입맛이없었다. 그는언젠가
도같은질문을받았던걸기억해냈다. 수저를들면서퉁명스럽게대답했다.
“뭐라고쓰긴뭘뭐라고써? 쓰던대로쓰면되지.”
콩나물국을가져다놓던아내가딸에게말했다.
“법무부공무원이라고쓰라고그랬잖아.”
“아빠가법무부공무원맞아?”
최주임은국을떠서입에가져갔다. 아내가대신말했다.
“아빠, 법무부공무원맞다니까. 얘는거짓말하는줄아나봐.”
아내는법무부라는말을즐겨앞세운다.
학교자모회에가서도시장아주머니들에게도그렇게말한다. 우리애들아빠
는법무부공무원이예요. 법무부라는거창한말때문에모르는사람들은최주임
이판사나서기관쯤되는줄안다. 중학생이나된딸아이도제아빠직업을몰라
서묻는건아니다. 구체적으로말하면사람들은뜨악한표정부터짓는다. 그래
서법무부공무원이라는, 대단히범위가넓고막연한, 힘이느껴지는단어로대
치한다.
망할놈의법무부공무원. 그는밥을먹다말고수저를놓았다.
어떤일이있더라도하루세끼밥만큼은꼬박꼬박챙겨먹는최주임으로선보
기드문일이었다. 물컵을거칠게식탁위에놓고그는일어났다.
최 주임은 딸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출근을 서둘렀다. 교정직 공무원, 혹은
교도관이라는구체적인명칭이있음에도불구하고제엄마의말대로법무부공
무원이라고써놓고있을터이다. 하긴간수라고하는게가장이해하기빠를테
지만.

최주임이현관을나서는데아내가따라나왔다.
“여보, 시골에서약값좀보내달라고전화가왔는데어떻게해요? 한10만원
이라도부칠까요?”
“또돈보내래? 당신이알아서해.”
아내는착하긴한데둔한게문제였다. 밤늦게들어와도으레회식이있었겠거
니묻지도않는다. 최주임이짜증을내자아내는자기부모에게보내지우리집
에보내냐며투덜거렸다.
최주임은매달생활비를시골에보낸다.
틈틈이약값이다집고친다하면서노인네들이별도로손을벌리기때문에살
림이좀처럼펴지지않는다. 아이둘과사는것도빠듯한데다가몇년에한번씩
전근을가기때문에여유가없었다. 살림집이야아파트나관사가있지만아이들
교육때문에라도한곳에정착해야하는데공무원들에게혜택을주는아파트특
별분양이라는것도어느정도내돈이있어야가능하고보면그는이래저래짜
증이나지않을수가없었다.
하지만최주임은이내마음을고쳐먹었다.
노인네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명절에도 그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했다. 신부전증으로누워있는노인네가아들의손을잡고말했다.
“야야, 니살기도힘든데내까지도와줄라카니힘들제? 하지만우짜겠노. 느
그들이암만힘들다케도생활이고우리는목숨이달린생존인기라.”
최주임아버지는왜정때순사노릇을잠깐했다고했다. 아버지와별반다르
지않는일을하고있다는점에서, 그리고자식보다도유식한말을더잘한다는
점에서최주임은노인네가못마땅했다.
손가락끝이뜨거워졌다.
최주임은급히담배를비벼껐다. 재떨이에는벌써담배꽁초가여럿누워있
었다. 지금쯤 1004번은 수술대 위에 눕혀져 있을 것이다. 집행되기 직전 장기
기증의사를밝히고지장까지찍은1004번은대충꿰매인채관속에담겨질것

이다. 그래도1004번은시신을인수받을가족들도있고울어줄사람도있다.
최주임은시계를들여다보았다.
3
“1818번. 목사님오셨다.”
사동담당자가감방창을들여다보며그렇게외쳤지만최주임얼굴을일별한
1818번은침착한목소리로말했다.
“시간좀주십시오.”
그는사물일절을정리해놓고있었다. 수갑찬손으로책들과의복따위를어
루만지더니성경책을쓰다듬었다. 그리고나서제일가까운삭발머리에게손을
내밀었다. 삭발머리는 엉거주춤 손을 주고는 얼른 고개를 푹 숙였다. 기도합시
다. 빨리나갈수있게해주시고……. 다시그옆사람의손을잡았다. 집을나간
영숙이어머니가부디돌아와화목한가정을이루기바랍니다…….
최주임은담당자얼굴을돌아보았다.
담당자가대신말했다. 빨리끝내도록. 들은척않고1818번은돌아가면서손
을잡고한마디씩다건넸다. 다시한번담당자가소리를질렀지만끌어내지는
못했다. 그동안아는처지인것은최주임이나담당자나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최주임이말했다. 그만하지. 여러사람이기다려. 방식구들은고개
를 숙이고 있거나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1818번은 복도에 나와서도 깍듯했
다. 담당님. 그동안신세만지고갑니다. 최주임에게도고개를숙였다. 그동안
여러가지로고마웠습니다. 최주임님.
재촉하여사동을나서는데박계장이좇아왔다.
뭐하고있어? 빨리하지않고? 모두기다리고있는데. 최주임은궁색한변명
을 더듬거렸다. 일일이 작별 인사를 하느라구요…. 계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최주임을쳐다보았으나더이상아무말않고앞장서걸었다.

1004번과는달리1818번은확실히제발로걷고있었다.
오히려팔짱을낀직원들이딸려오는듯한인상을받았다. 역시신앙의힘이란
대단한 것이었다. 1818번은 자신이 천당에 갈 거라고 확신하는 자만이 보여줄
수있는그런의연한태도를보여주었다. 마치살인을하고교수대로향하는사
람이아니라순교하기위해십자가로향하는사람같았다.
때문에최주임도마음이가벼웠다.
어차피한번가는목숨아니냐. 머리맡에한아름약보따리끼고골골거리다가
죽는거나이렇게죽는거나죽기는매한가지였다. 더군다나지켜보는사람없는
가운데외롭게죽는게아니라20, 30명이둘러보는가운데가는것이다. 하루
에도몇십명씩아무죄없이도억울하게죽는사람은또얼마나많으냐.
1818번이직원들에게동정을받고있다는건확실했다.
전혀모르는사람처럼다루지만직원들의말한마디, 동작하나에서도최주
임은느낄수있었다. 짐작대로1818번은순순히협조했다. 포승을묶을때도다
리를벌리라면벌리고팔을붙이라면붙였다. 인정심문을하는동안에도비교적
또박또박 대답했다. 이송되어 와서도 한동안은 역시 다루기 힘든 죄수였다. 대
체로중형을받은사람들은형이확정되고도1, 2년동안은적응하지못하기마
련이다. 확정된형량을인정하기가쉽지않을뿐더러그들눈앞에현실로닥쳐온
그엄청난시간의중첩이까마득하기때문이다. 하물며오늘죽을지내일죽을지
모르는 사형수임에랴. 1818번의 경우, 신앙을 접하고부터는 다른 사람이 되었
다는것을직원모두알고있었다.
“유언이있으면말하시오.”
유언하라는 말을 듣자 1818번의 몸피가 갑자기 움츠러 들었다. 죽는다는 실
감이거듭확실해지는모양이었다.
“유언이있으면말해보세요.”
소장이다시재촉했다. 소장은마지막집행이므로빨리끝내고싶은기색이역
력했다. 끝나면곧바로검사와과장들과함께저녁겸술집으로갈터였다. 소장

의목소리는이제떨려나오지않았다. 으엄, 으엄하던헛기침도들리지않는다.
다만코끝에걸쳐진안경만이여전히위태로웠다.
“유언을말하면…, 제대로기록되고…, 전달되기는합니까?”
감았던눈을뜨면서1818번이내뱉은첫마디였다.
최주임은눈꼬리를치켜떴다. 어째말이심상치않았다. 소장은유언이있으
면말하세요, 처음과별반다름없는어조로다시말했다.
“으으음, 우선, 여러사람들한테신세만지고갑니다. 으음, 나같은인간에게
도그동안신경을많이써주어서고맙습니다. 하지만여기들어오기전에여기
서의절반만큼만누가내게신경을써주었다면얼마나좋았겠습니까?”
말을멈추고1818번은침을꿀꺽삼켰다. 목울대가크게씰룩였다.
그다음부터는말이거침없이쏟아져나왔다. 마치이순간만을기다리고있었
던사람같았다.
“억울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할 말은 해야겠습니다.
지금부터는정말한자도빼놓지말고말하는그대로기록해주세요. 그사람들
은내가먼저찌른게아닙니다. 공범인최종혁이경찰서에서죽었기때문에꼼
짝없이내가다뒤집어썼습니다. 최종혁이가다내가한짓이라고했기때문이지
요. 나를 심문하던 수사관들을 이제 와서 원망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기들도
먹고살기위해서그러는거니까요. 하긴악질적인놈도있긴있습디다. 부르는
대로진술하고받아썼지요. 당신네들도당해보세요. 그럴수밖에있나없나.”
최주임은1818번이이렇게말을잘하리라곤생각치도못했다. 대부분사형
수들은횡설수설하기마련이었다. 한마디도못하고울기만하는사람도있다.
“최종혁이를꼬여서보석상을털러간것은사실이나내가그두사람을먼저
죽인것은아닙니다. 내가물건들을챙기고있을때등뒤에서망을보고있던최
종혁이가안에서나타난벌거숭이남자를찔렀고내가달려가보니나중에나타
난여자도이미재크나이프로찌르고있더군요. 여자는몰라도남자는살아날까
봐내가최종혁이손에서나이프를빼앗아더찌르긴했습니다. 법정에서도이런

사실을몇번이고주장했지만받아들여지지않았습니다. 저에게모든걸뒤집어
씌워놓고 간 최종혁이가 이가 갈리도록 원망스러웠지만 최종혁이를 끌어들인
것은나였기때문에원망할수도없었습니다. 나만아니면종혁이는죽지도않았
을테니까요. 자업자득이지요. 하긴나같은건죽어도억울할건없습니다. 없어
져봤자표나는것도아니고. 하지만이놈의세상, 내가죽는것은살인을했기
때문이아니라돈이없어서죽습니다. 돈이란게얼마나흡혈귀같은지이런곳
에서는 더욱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합디다. 무전유죄지요. 나도 개인 변호사만
살 수 있었어도 이렇게 사형까지 당하는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짧은나이에좌판을거둬들이는것도내운명이려니하고받아들이겠습
니다. 그러나내형과같이사는여자,”
여기서부터는1818번의목소리가사뭇떨려나왔다.
“그여자에게꼭전해주십시오. 저승에가서도가만안놔둘겁니다. 그여자
때문에어머니가농약을먹었습니다. 어머니원수를꼭갚고가야하는데. 내가
사형까지간것도돈하고그여자때문입니다. 내가죽여버린다고협박을했거든
요. 골치 덩어리인 시동생을 어떻게 해서라도 형량을 오래 살게 하려고 불리한
증언만을골라가며했습니다. 아마제가사형당했다고연락이가면두다리뻗
고잘겝니다. 이렇게죽게되어서나도다행이라는생각이듭니다. 살아나가게
되면그두연놈들을그냥놔두지않을테니까요.”
“그리고내애인……. 그만두겠습니다. 집행되었다고나전해주십시오.
그리고약속대로두눈과콩팥을기증하겠습니다. 하지만너무못볼것을많
이본눈이라남에게주어도될련지모르겠습니다. 유복자로태어나가진것배
운것없이밑바닥에서만굴러다니다보니참더러운꼴못볼꼴많이보기도하
고 서러움도 많이 당했습니다. 나도 죽일 놈이지만 정말 나쁜 놈들도 버젓하게
활개치고다니는세상이니까요. 나야죄값을치르고갑니다. 내가죽는다고해
도그들이살아돌아올것도아니지만어쩌겠습니까? 매달리는것, 이이상의죄
값은없는것을. 아무튼그사람들에게미안할뿐이지요. 나는이제거친뼛가루

로묻힐테지만떼어낸장기들은남의몸에서좀더더부살이하다가오겠지요. 부
디남의몸에서는좋은것만보고좋은일만하다오기를바랍니다.”
다음은사형예배차례였다.
목사가 성경책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장 쪽을 향해 목례를 하고 강단
아래로내려서려는데1818번이느닷없이소리를질렀다.
“잠깐기다리십시오. 사형예배는사절하겠습니다.”
최주임은본능적으로소장얼굴부터올려다보았다. 이자식이지금무슨소리
를하고있어? 정신나간것아냐?
목사도당황하고있는게틀림없었다. 혈색이가셨다가자기를주시하고있는
사람들을의식해서인가목사는예의그미소를떠올리고있었다. 언제봐도녹은
아이스크림같은온화한미소다. 이무슨뒤통수치는일이람. 최주임은얼굴이
화끈했다. 소장옆교무과장이눈을부릅뜬채계장을쏘아보고있었다. 계장은
다시 최 주임을 곁눈질했다. 이동철, 나쁜 자식. 목사가 그토록 침이 마르게 칭
찬하던1818번이아니었던가. 이동철의변화가마치자신의능력이자작품임을
은근히내세우던목사였다. 최주임도1818번을대상으로교화성공사례발표
까지했던것이다. 그런데이무슨날벼락같은일이람.
“무슨소리야. 안수기도를안받겠다니. 왜그래? 동철이?”
최주임은서둘러달래듯말했다.
1818번은 발 밑 마루판자를 내려다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아랫배에
힘을모으는것같았다. 그러더니고개를번쩍처들었다.
“목사님에게는죄송하기도하고고맙기도하지만죽는마당인만큼무슨말은
못 하겠습니까? 목사님. 하나님은 어디 있습니까? 내가 그 동안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있다면 벌써 내 기도를 들어주었을 것입니다.
원래나란놈은종교같은건부자들이더부자가되게해달라고빌거나나약한
사람들이 현실 도피로 믿는 거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안에서는 정말
열심히기도했습니다. 내가먼저찌른게아니라는것만밝혀졌어도이렇게까지

는안되는건데. 나는어차피하나밖에없는내목숨을내놓습니다. 그런마당에
뒤늦게 내 영혼을 가지고 천국패니 지옥패니 하는 도박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설사천국지옥이진짜있어5분뒤지옥에가있게된다고해도좋습니다. 마지
막 이 순간까지 엉거주춤 확률 50퍼센트의 기회주의자로 끝내고 싶지 않아요.
다만제대로간수하지못하고폐업신고를하게되는내몸뚱이에게미안할따
름입니다. 나는이제내자신에게떳떳한죄많은인간으로죽습니다. 그러니까
기도니뭐니하는것으로절귀찮게…….”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은지 계장이 등뒤의 직원에게 눈짓했다.
단숨에용수가씌워지고머리위의올가미가끌어내려졌다. 올가미가목에걸리
기전, 1818번은다시한번분연히소리쳤다.
“나는내자신에게떳떳한죄많은인간으로죽습니다.”
소장이잘했다는듯이고개를끄덕이자달걀꾸러미처럼군데군데포승줄로
묶인1818번을양쪽에서일으켜세웠다.
1818번의입에서어, 거, 쥐어짜는소리가흘러나왔다. 목을죈밧줄로인해
서처음에는무슨말인지알아들을수가없었다. 그가다시세개의음절을토막
토막끊어서발음했을때야어, 머, 니, 라는것을알았다. 그는살아서는마지막
으로 어머니를 부르고 있었다. 유난히 큰 매부리코며 입술 주위며 넓적한 얼굴
윤곽이용수밑으로고스란히드러났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어수선한 소리가 났다. 의자가 끌리는 소리. 구
두소리. 한숨소리. 모두미친듯서두르고있었다. 커튼안에서도다급한소리
가들렸다. 고함소리는유난히컸다. 버튼눌러.
4
사무실로돌아온직원들책상위에봉투가하나씩놓여졌다.
최주임은봉투를들어뒷주머니에아무렇게나쑤셔넣었다. 오후3시가넘어

서고있었다. 오늘은다른업무들을밀쳐두고온직원이그일에만매달렸다. 너
나없이눈에핏발이서려있었다. 모두나가지. 박계장이직원들을둘러보며말
했다. 책상위는벌써깨끗하게치워져있었다.
최주임일행은단골소주집으로몰려갔다.
술부터채워졌다. 점심을못먹은직원들이대부분이었으나음식을재촉하는
사람은없었다. 처음에는가득채운술잔만연거푸돌았으나곧다른날처럼떠
들기 시작했다. 다른 날보다 더 떠들어대고 마셔댔다. 계장들 자리에서 말석에
앉은신참자리까지격려삼아날아오던형식적인대화가차츰마주앉은사람들
끼리의분분한대화로바뀌었다.
앞에앉은이주임이말했다.
“최주임요, 1818번그자슥말인데예. 열길사람속은알아도한길사람속
은모른다카더니그눔의아가그럴줄누가알았겠습니꺼? 최주임님도놀랐지
예? 거기에비하면역시많이배운놈이다른기라. 1004번, 갸보시이소. 딱체
념하고깨끗이간다아입니꺼?”
최주임은주로듣는편이었다.
겸손해서그런다기보다는말재주가없었다. 말해놓고보면생각과말은언제
나한뼘이나어긋나있었다. 말은늘생각의언저리에서만머물기일쑤였다.
재소자들과상담할때는차라리그편이나았다. 그들은좁은공간에갇혀자
기생각에만몰입해있기때문에누구의말도들으려하지않는다. 섣불리조언
을 했다간 머리만 아파진다. 말하고 싶은 대로 실컷 말하게 내버려두면 그들은
후련해진기분으로돌아간다. 뭐가달라진것도, 달라질것도별로없다. 심기를
불편하게하던오물같은말들을잔뜩토해놓고간것외에는.
최주임은잠자코술잔만들이켰다.
배은망덕한자식. 그동안내가저를위해얼마나애썼느냐말이야. 영치금보
내주는사람도없는걸후원자를연결시켜주고책도넣어주고상담한다고자주
불러내어 커피도 주지 않았느냐 말이야. 그런데 그 자리에서 내 얼굴에 똥칠을

해? 소장이 뭐라고 생각하겠느냐 말야.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던 게 고작 그
정도냐고생각안하겠어? 올해도계장승진은힘들거같구먼. 망할놈의자식.
이왕 죽을 거, 그렇게까지 할 게 뭐람. 속으로는 설사 그렇더라도 대충 하고 가
지.
목사의얼굴에서미소가사라지는것을최주임은오늘처음봤다. 목사는목
사대로얼마나당황했겠어? 소장보기얼마나낯뜨거웠을까? 아니지, 하나님보
기얼마나죄스러웠을까? 사람병신만드는거잠깐이군. 이거야원, 목사님보
기민망해서. 자식이그럴줄누가알았냐말야.
최주임이말이없자옆에앉았던박달만이거들었다.
“이 주임님. 저는 아까 소름이 쫘악 끼치던데요. 거짓말이 아닌 것 같더라구
요. 그런말해봤자안매달리는것도아닌데. 사람이죽을때는거짓말안한다
잖아요? 정말그렇다면, 안됐다는생각이듭니다.”
박달만이는집행때최주임이보니까다른직원이불러도모를정도로긴장하
고있었다. 술에약한박달만의얼굴이사형장마당에풀뿌리와함께뽑혀나와
있던붉은흙덩이를연상케했다.
“어이, 박달만이! 자네, 이런일처음해보제?”
“예. 처음입니다.”
“떨렸제?”
“예. 사람 목숨이 목숨이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허탈한 생각이 자꾸 들어서,
아무래도며칠잠못잘것같습니다.”
최주임도신참일때가있었다.
집행을처음본뒤로한동안푸줏간앞을지나칠때마다외면했었다. 쇠갈고리
에걸려있는고깃덩어리들이예사로보이지않았던것이다. 좌우대칭반쪽으로
도체된돼지가매달려있는것을볼때면더욱그랬다. 그것들은죄수번호같은
선명한잉크를몸에새겨넣고있었다. 돼지같은가축들도도축허가표시가있
어야만도살할수있는것이다.

처음엔다그래. 최주임은마침내입을열었다.
“억울하다고발버둥치는사람이라고정말억울하다고생각하면오산이야. 마
지막순간까지도미련을못버리는사람이많아. 올가미를거는순간에도기적이
일어나길바라는게사람심리야. 오늘1818번그자식만봐도그래.”
최주임은술잔을들어단숨에털어넣었다. 그리고는소리나게내려놓았다.
“그눔의자식이내게뭐라고그랬는지알아? 언젠가울면서자기때문에최종
혁이가죽었다고하더란말이지. 놈에게속죄하기위해서라도교회에나가겠다
고말야. 죽은사람들을위해서장기전부를기증하겠다고했다고. 남은나날이
나마참회하며재소자들을위해서헌신하고봉사하겠다고하던놈이말야. 오늘
그 자리에서 최종혁이가 찔렀다고 말하는 것 봐. 남들은 거짓말을 하다가도 그
앞에서면진실을말하는데. 내참. 어린애한테뺨맞은기분이라니까.”
최주임은말을멈추고담배연기를길게내뿜었다.
“언젠가는자기가상담신청을해서데려오라고했더니이자식이이러겠지?
안믿으셔도좋지만기도를하다보면온몸이불에덴것처럼뜨거워져요. 성령이
저와함께하시나봐요. 여기서살아나가기만한다면평생선교사업에몸을바치
겠다나. 내가부끄럽더라니까. 나는마누라성화에어쩌다한번씩교회에나가
는데이제겨우믿은지얼마안되는자식이그런소리를하니내자신이다반
성이되더라니까. 그러던자식이그래….”
“하지만1818번의말이사실일수도있지않습니까? 판검사도사람인데.”
박달만이반박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있다고 해도 우리 잘못도 아니고. 서류상으론 완벽
하니까. 자네도알다시피아무나사형당하는건아니잖아? 우리는우리에게넘
어온사람들을보호하고교화하는일만하는거니까. 진범인지아닌지는본인하
고죽은사람하고하나님만알겠지. 자네도우리가할수있는일들과할수없는
일들을빨리파악하도록해. 그게우리일하는데갈등을줄이는가장좋은방법
이야. 나도자네때는고민많았지. 그래도지금은나때보다는많이좋아졌어.”

최주임은돼먹지도않은소리를해댔다.
누군가예전에들려준소리를지금자기가하고있었다.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