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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소설-김석록]독도와 배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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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5,522회 작성일 05-03-2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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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기 실내체육관은 숨가쁜 열기로 가득하다. 여느 곳과 다르게, 묘한 기운
마저감돈다. 따지고보면특별히묘할것도없다. 선수도코칭스태프도관계자
도, 그리고체육관을가득메운일본관중모두가쉽게한마음이된다. 1승에대
한처절한목마름때문이다. 코트에, 스탠드에넘쳐나는기운은그대로가1승을
향한그들의합장이나다름없다.
벌써몇번째폭포같은박수소리가체육관을흔들어댄다. 히로시마에떨어진
원자폭탄도, 글쎄, 소리만큼은그보다못했을것이다. 서둘러선수들걱정이앞
선다. 선전포고에 앞서 이미 폭격이 시작된 느낌이다. 이같은 분위기라면 실히
몇점은접어두고경기를치른다고생각해야마땅하다. 김감독의경험에따르
면그렇다.
일본여자대표팀이먼저연습을마치고벤치로돌아간다. 요시다감독이일어
서서선수들을맞는다. 선수들이일장기의붉은원모형으로요시다감독을에워
싼다.
요시다. 전임고지마감독에비해서는젊고의욕적이다. 좋이삼촌뻘은되어
보이는고지마감독이두터운안경알속에강렬한승리욕을감춰두고있었다면,
요시다감독의승리욕은훤한이마위에고스란히드러나있다. 뒤로빗어넘긴
검은머리와넓은이마, 그리고불타는두눈.
그에비하면김감독은높이에서나체중에서나한눈에도요시다감독의상대
로는부족해보인다. 괜한걱정이긴하지만, 감독도한명의선수가되어코트안
에서 주전으로 뛰어야 한다면 애시당초 그는 다른 직업을 구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그가전직을감안해서, 감독직을고집하고나섰을때, 그나마가장어울
리는직업을찾는다면역시시험감독정도일터이다.
아주가끔이기는하지만그는텔레비전화면에모습을나타낸다. 그것만아니
었다면김감독의면목이나표정을한자락이나마읽기도힘들었을것이다. 했어
도, 그가말그대로왕년에배구선수로뛴적이있는지, 또어떻게여자배구팀의
감독자리에까지오르게되었는지하는문제에대해서는여전히물음표가따라
다닐수밖에없다.
그러나그런물음에도불구하고, 김감독이여자배구대표팀의사령탑으로인
정받는근거가몇가지있다. 무엇보다엇비슷이배구공을빼어박은그의얼굴
부터가그렇다. 우선은실례가되지않는다는전제로, 김감독의얼굴형자체는
배구공과흡사하다해도틀린말은아니다. 계란형이니네모꼴이니역삼각형이
니 하는 틀과는 어지간히 거리가 멀다. 말하자면 배구공 위에 적잖은 머리숱이
덮여있으며, 그리고두눈과코와입과두귀가마치여섯명의공격수, 또는수
비수의형태처럼적당한간격으로포진하고있다.
또있다. 그보다더욱그를감독답게만드는것은아무래도그의표정이다. 그
마저영락없는배구공이다. 그러니까게임이끝날때까지그는흰색한가지표
정을좀처럼풀지않는다. 다만배구공에선수들의땀과때와, 그리고약간의얼
룩이 묻어나듯이 가까이에서도 보일 듯 말 듯 아주 작은 감정의 흔적이 표정에
올라올뿐이다. 그가천상여자배구감독이라는사실은그점에서더욱빛난다.
하지만가장확실하게말하자면, 그는자신이쌓아올린전적으로가볍게여자
배구 대표 팀 감독임을 증명한다. 특히 대 일본전에서 기록한 12연승은 그때마
다, 또생각할수록모두의가슴을한없이뜨겁게만든다. 김감독은그일을해냈
다. 그만한 지휘자도 쉽지 않다. 아마도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는 반원들의
현장감독도그같은가슴으로철거를지휘했을것이다.
막연습을끝내고한국선수들도벤치로돌아온다. 스탠드한쪽구석에서태극
기의물결이일었는가싶었는데, 곧바로일장기의춤속에묻히고만다. 깃발과

소리에어울려일본의기운은호랑이의발톱처럼기승을부린다. 오늘은호랑이
도피하고귀신도피하는일은쉽지않을것이다. 적진에서김감독은한번도그
생각으로부터해방된적이없다.
여섯명의스타팅이코트에들어가고나서김감독의이름이불리어진다. 한일
전에서만큼은불확실성을확실하게물리치는감독, 확실한믿음을안겨주는일
에뛰어난능력을발휘하는감독에게일본의관심은인색하기짝이없다. 꼭20
년전몬트리올올림픽여자배구에서금메달을수확했던다이마스감독에게그
들은어떤찬사를보냈던가.
주심의호루라기소리와함께한국의선공으로게임은시작된다. 지금부터두
시간, 어쩌면세시간동안승부의사슬로부터빠져나오지못할것이다. 그것은
너무 오랜 시간이자 잔인한 고통이다. 10초 이내에 승부가 판가름나는 백 미터
레이스가차라리얼마나인간적인가. 김감독은기도를풀고잠시몸을돌려기
자석을올려다본다. 이한성기자의불끈쥔두주먹이김감독을향해날아든다.
다름없이, 어젯밤 방에 들른 이 기자는 일본 신문의 배구 기사로부터 얘기를
풀어놓았다.
“이틀전에노무라기자를만났어요”
“기사가맹랑하데요”
“아, 김감독도읽었군요. 막기사를쓰기전이었던모양인데, 그날이번에도
이길수있겠느냐고나한테묻더군요”
“그래서요?”
“반드시이긴다고말해야되는게아닌가요?”
“반드시는, 없어요”
“영원한승자는없다, 그건누구나다아는상식이에요. 그렇지만일본배구가
열두번이나연거푸한국한테무릎을꿇으리라고누가생각이나했겠어요”
“그게 문제예요. 일본의 앙심은 대단해요. 그걸 느껴요. 머지 않아 지는 날이
오고말거예요. 내일이그날이될지도몰라요”

“이제는그만지고싶다는말은아니겠죠”
“지고싶어하는감독은없어요”
“열 두 번이나 이긴 감독으로서 한 경기쯤 진들 어떻겠어요. 일본이열두번
한국을내리이기기위해서는적어도3년이란긴시간이필요한게아닙니까?”
“시간은의미가없어요. 한번지고나면, 믿어지지않을만큼무섭게추락하고
말아요. 선수들의눈빛부터가달라지는걸, 아마모를거예요. 특히한일전에서
는전력이나컨디션은문제가안돼요”
이기자는자리에서일어나창가로다가갔다. 한쪽커튼을반쯤열고, 창밖을
내다보며말했다.
“그날노무라기자가생각지도못한질문을하나던졌는데, 정말난감하더군
요. 만일피파실무위원회가월드컵개막식은한국과일본에서공동으로치르고,
결승전은한국과일본이속한조에서올린예선전성적에따라승점이나골득실
에서앞서는나라가개최하기로결정했다면, 그결정을한국이받아들일수있었
겠느냐는겁니다”
“그만큼, 일본축구가한국에자신있다는말입니까?”
잠시생각을가다듬던김감독이물었다.
“그런셈이죠. 지금은몰라도2002년에는확실히앞설수 있다는게 일본의
결론입니다. 일본 축구는 설마 하는 사이에 무섭게 성장했어요. 우리가 선수들
의자질이나일본에게는질수없다는국민적감정, 또는역대대표팀경기전적
에서앞선다는막연한숫자노름에매달려있는사이, 일본은많은꿈나무들을남
미에보내축구유학을시키는한편, 제이리그를통해탄탄한전력을가다듬어
왔어요. 한마디로이제일본축구는신바람이나는거예요”
“그러나아직은정신력이라는덤이우리에겐있지않은가요?”
“아니에요. 믿을 구석이 없어서 그래요. 정신력이라는 게 어둡고 배고플 때,
어쩌다우리가쓰던무기가아닌가요? 부모나, 또는할아버지할머니시대의정
신력을젊은선수들에게마냥강요할수는없어요. 누구보다도김감독이더잘

아시잖아요”
“눈에보이게떨어지고있는건사실이에요”
“이제 더 이상 정신력은 첨단무기가 되지 못해요. 스포츠도 과학과 기술의
싸움입니다. 정신력으로기술을이기던시대는지났어요. 일본은알았어요. 배
구나농구, 다른어떤종목보다축구가일본인의체력과조건에맞다는사실을.
또한지구촌에서가장인기있는종목이라는점에매력을느낀거죠. 그래서경
제적동물답게, 발빠르게변신한거예요. 축구강국으로성장하겠다는겁니다.
그동안 일본이 국내외에서 투자와 기술개발에 쏟은 노력은 대단해요. 그 결과
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구요. 이제 일본쯤이야 하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들이 연패의 쓰라림을 맛보며 중단해야만 했던 한일전을 이제 와서 다시 갖
기로 결정한 것은, 무슨 의미겠어요”
작전시간때처럼방안은잠시평온을되찾았다. 창가에서물러선이기자의표
정이다소느슨해지는것을김감독은느꼈다. 김감독앞으로다가와선채로이
기자가물었다.
“김감독, 내일선수들에게던질한마디는뭡니까?”
“네게 어디 특별한 한 마디가 있습디까? 어쩌다 이 기자한테 얻어들은 게 다
지”
“꿈이나잘꾸세요. 내일저녁엔모처럼내기바둑이나한판둡시다”
이 기자가 떠나고 나서도 김 감독은 곧바로 잠을 청하지 못했다. 버릇이라는
놈이다른것은몰라도고집하나는대단한모양이었다. 국내경기에서100연승
고지를점령했을때만해도그모양은아니었다. 한게임을치르는동안수만개
의뇌세포가파괴된다고한다면, 한일전에서는그보다열배나많은뇌세포가
간단히나가떨어지고만다고해도억지주장은아니다. 아니, 벌써부터이미파
괴가진행되고있다는말이백번옳을것이다. 요시다감독, 반대로그가오히려
편안한잠자리에들었다면그보다더극적인역전은꿈에서조차없을지모를일
이다.

우려했던대로, 일본의기운은드세다. 눈깜짝할사이에일본이먼저다섯점
을 올려놓는다. 첫 세트의 중요성은 말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먼저 안다. 3킬로
미터의가파른산길이4, 또는5킬로미터로자꾸만멀게보이는경우나마찬가
지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으로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같은 아이들에게
마냥채찍만을들이댈수도없는노릇이다.
첫번째테크니컬작전시간동안김감독은이수정세터에게사인의패턴을바
꾸도록지시한다. 뭔가느낌이다르다. 이제까지와는전혀다른양상이다. 일본
의블로킹벽이정확하게공격수를따라다닌다. 공격수에게연결되는세터의토
스를미리예상하고그쪽에만벽을친다는것은불가능하다.
경기가속개되고스탠드의함성이다소주춤해진다. 김감독은일본선수들의
움직임에촉각을곤두세운다. 여전히한국선수들이그려내는삼각형의모양은
살아있다. 세터의손에서시작되는윗변의길이가짧고빠르다. 따라서빗변의
크기도짧아진다. 일본의블로킹벽이허물어지는대신한국의벽이살아나기시
작한다.
그러나흐름은곧바로끊어지고만다. 두세점따라붙으면서안도의숨을채
내쉬기도전에일본은연속세개의블로킹포인트를올려놓는다. 또다시일본
의 기운이 하늘을 찌른다. 이수정 세터가 구원의 눈길을 보낸다.
순간적으로김감독은벤치를박차고일어나부심앞까지다가간다. 그리고는
서브 위치에 나가 있는 일본 선수와 왼쪽 손목의 시계를 번갈아 가며 가리킨다.
몇번씩김감독의입에서, 화이브세컨드라는말이튀어나온다. 화이브세컨드,
오버. 5초 이내에 서브를 넣지 않는다는 항의다. 김 감독의 표정을 알아챘는지
중국 부심이 주심 앞으로 다가가 김 감독이 그려냈던 똑같은 몸짓을 반복한다.
몸짓은 곧 언어다. 대화를 마치고 부심이 제자리로 돌아오자 주심은 김 감독을
향해정중하게하나의문건을내민다. 노란색경고딱지. 그것을신호로잠시휴
식을들어갔던스탠드의함성이또다시격렬하게춤추기시작한다.
실업연맹전2차대회가끝나고슈퍼월드챌린지배구대회에참가하기까지준

비기간은고작일주일도안되었다. 휴식은고사하고도대체손이고발이고맞춰
볼시간도제대로주어지지않았다. 서울을떠나던날아침이기자는전화를넣
어선수단과동행할것이라고알렸다. 그리고는농담삼아선수단버스를신문사
앞에잠깐대주었으면좋겠다고말했다. 언제나그렇듯이그의말속에는거스르
기어려운힘이실려있었다.
이기자를태운버스는신문로를지나아직도흉측스럽게철거막이처져있는
조선총독부건물앞에서멈춰섰다. 아주짧은시간동안선수들은앙상한벽하
나로남아있는건물잔해와, 그리고그뒤로보이는안개낀근정전의근엄한위
용을 보았다. 이 기자도, 선수들도 누구도 말이 없었다. 다만 잠시 보았을 뿐이
었다.
여느때와다르게겁이날정도로말을아끼던이기자는비행기가얼추서울
하늘을벗어나자그때서야입을열었다.
“선수들이 폐허가 되다시피 한 경복궁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무슨, 이기자같은남다른감회야있었을라구요”
“그랬을까요?”
“……”
“김감독, 일본의하시모토총리가제주도에다녀간건알고계시죠?”
“무슨말을했는지는몰라도, 그림은생각나요”
“제주도를다녀간다음의일이지만, 하시모토총리가신사를참배했다는보도
가나간적이있어요. 그날하시모토총리는신사참배를마치고나서, 그길로
한초등학교에들러세명의어린학생들과검도대련을벌였다는겁니다. 그런
다음 많은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너희들은 행복한 세대다, 전후에 우리는
검도마저강제로금지당했다는내용의발언을했다는거예요. 우리특파원들이
신사참배화면과함께그그림을서울에보냈지만, 웬일인지그그림은방송되
지않았다는얘기예요”
“그런일이있었군요”

“올해는영친왕이이토히로부미에게볼모로끌려간지꼭90년이되는해예
요. 제주도가아니라그때어떻게든하시모토총리를서울로불러, 철거되기전
조선총독부건물을보여준다음, 기회가있으면어느정도복원된경복궁의모습
을다시보여주어야했는데말예요”
거기서말문을끊고이기자는구름사이로번뜩이는동해를하염없이내려다
보았다.
15대9로첫세트는여섯점이나뒤진채계산이끝난다. 엄청난규모의수지
적자다. 어떤불공정거래약정이나행위가있었는지없었는지하는문제는일본
의양심에맡긴다. 남의컴퓨터프로그램을이리저리휘저어놓는해커가체육관
어느곳에숨어있다면, 일본의기술력은세기의심판을면치못하게될것이다.
한세트를마치고일본의기세가숨을가다듬는사이이기자로부터작은쪽지
가 벤치로 전달된다. 손바닥만한 쪽지에는 하나의 그림이 그려져 있을 뿐이다.
다섯명의선수가가운데그려진주먹을둘러싸고서있는그림이다. 주먹과손
가락몇개로교신되는앞차, 뒷차, 시간차, 오픈, 이동공격, 후위공격. 말없는
말, 해커를퇴치하는이기자의프로그램을이해하는일에는, 언제나많은시간
이필요하지는않다.
체육관안의열기가잠시틈을내어서인가. 또다시, 김감독은생각하기도싫
은악몽에빠진다. 이상한일이다. 잊어버리고싶은일을영원히잊을수만있다
면. 그러나한편으로는전혀이상한일도아니다.
호주캔버라국립체육관. 아시아지역에배정된애틀란타올림픽여자배구티
켓한장은결승전한판에달려있었다. 결승전상대는숙적일본, 역시상대의
벽을뛰어넘지못해서는올림픽출전이무산되는절명의한판승부였다.
초반일본의기세는등등했다. 첫세트와둘째세트를거푸일본에내주고났
을 때, 김감독은벼랑끝에서 있는자신의마음을애써달랬다. 연승기록은8
에서 멈추고 마는 것인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마음은 오히려 호수의 물처럼
한결잔잔하고홀가분했다.

그러나 선수들의 눈빛은 달랐다. 그들의 눈빛은 애틀란타, 애틀란타가 아니
라 또다시 고개를 숙여 체육관을 떠나는 일본의 자존심을 보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더하여오사카훈련캠프에서한국타도를가다듬고결전에나선신임
요시다감독에대한말없는반항이그들의눈빛에서묻어났다. 그날김감독은
역으로 선수들의 의지에 완전히 제압당하고 말았다.
셋째세트에서일본은고작다섯점만을올려놓았다. 구겨질대로구겨진일본
여자배구의자존심, 그리고요시다감독의자존심에서서히음지가잡히기시작
했다. 김감독은보았다. 기자석에앉아있던이기자가자신도보고있노라고눈
으로말했다.
그때부터경기의흐름은이미한국편에와있었다. 일본은고비고비마다에서
흐름을타지못했다. 그것은바꾸어놓을수없는역사적진실과도같았다. 마지
막다섯째세트, 10대14의매치포인트에서김남순의블로킹이흰공을일본코
트에쇠말뚝처럼내리꽂았다.
악몽은악몽으로접어두는것이좋다. 악몽이되살아난다는말은악몽에대한
모욕이된다. 잊어버리고싶은일모두가모욕이될수없듯이. 김감독은모욕을
훌훌털어내고다시제자리로돌아온다.
공격의핵오바야시. 일본의얼굴이라고까지치켜세우는오바야시의기는둘
째 세트에 들어서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녀의 강타가 코트에 내려꽂힐 때마다
스탠드전체가혼절을거듭한다. 공의낙하지점을따라쓰러졌다일어나는선수
들이차라리안쓰럽다.
오바야시가일본의얼굴이라면, 세터나가니시는한국의얼굴에가깝다. 나가
니시가유니폼을갈아입고한국코트에선다고해도, 누구도그녀를부정선수로
잡아내는신통력을갖추기는힘들것이다. 그만큼나가니시는다소곳하고, 알게
모르게정적인선을지니고태어났다. 한때김감독은그녀의피에멀리가야나
신라의핏줄이섞였는지도모른다고생각했을정도다.
역시감춘곳보다는드러낸곳이많은두선수의움직임을살펴보면서김감독

은기억에도선명한두장의흑백사진을떠올린다. 하나는일본정치인들의망
언이있을때마다시그널처럼등장하는텔레비전의자료화면으로, 걷기조차힘
들어 보이는 젊은 위안부들의 한때를 잡은 짤막한 그림이다. 그 그림에는 어떤
표정도형상화되어있지않아내심불만이지만, 이기자가건네준다른한장의
사진을들여다볼라치면그같은불만은이내사라지고만다. 몇해전사진인지는
몰라도, 적어도해떨어진뒤에찍은것만은확실하다. 어둠과어둠이만나는위
쪽에 할머니의 흰 머리만이 하얗게 인화되어 있다. 어둠 속에 양각처럼 윤곽이
드러나는얼굴, 문지방안에서밖을지향하고있는할머니의얼굴과똑같은표정
을김감독은한번도만나본적이없다. 어느배우의표정에서조차. 한번도없으
므로, 표현할언어마저부족하다. 다만삶과죽음, 과거와미래, 사랑과미움, 희
망과절망, 행복과불행, 환희와절규, 그리고승리와패배, 그모든상대되는단
어들이한꺼번에올라있다고나할까.
다시김감독의눈길이이리저리움직인다. 왼손거포타지마를비롯해서야마
우찌, 사이키, 요시하라, 모두가국가대표다운한결같은미모다. 상대선수들의
몸매를눈으로더듬던시절은벌써지났다. 그러나도쿄의거리에서, 혹은오키
나와의 해변에서 그들을 마주친다면 대뜸 코트부터 떠올리고 싶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에비하면, 한국선수들의면면은뒤진다. 하지만달의아름다움과별의아
름다움은다르다. 행여라도별이달을시기하는마음을품고있다면. 그속에강
한 승부욕과 끈질긴 투혼이 뿌리박고 있다면. 질 수 없다는 오기와 승부근성이
그로부터비롯된다면. 경기외적인열세를뛰어넘어확실한우위를확보하려는
잠재의식과파괴력을인정한다면. 김감독은머리를흔든다.
시간이지날수록조금씩조금씩오바야시의높이가떨어지는게눈에보인다.
고베의 그린 아레나, 애틀란타 조지아대 체육관에서도 김 감독은 경험했다. 오
바야시의 높이와 일본 관중의 기는 비례한다. 일본의 얼굴이 살아나지 않는 한
일본의기운도갈등을겪게될것이다.

둘째세트는15대11로마무리된다. 한국과일본이한세트씩나누어가진셈
이다. 그때서야숨을죽이고있던태극기에작은바람이인다. 다소기운을차린
한국선수들의이름도하나둘스탠드속에서살아움직이기시작한다. 모든것
이원점으로돌아온느낌이다.
지난해가을, 월드컵여자배구시리즈마지막라운드가일본의고베시에서열
렸다. 하필이면 고베였다. 다른 도시를 제쳐두고 지진의 상처가 낙엽처럼 흩어
져있는고베에서일본은승리를기록하고싶어했는지도모를일이었다.
무슨일인지고베가싫다며잠시히로시마에다녀오겠다던이기자는한일전
을앞두고돌아왔다. 멀리서나마한국인원폭피해자위령탑과그앞에쌓인종
이학들을 보면서 한동안 깊은 슬픔에 젖었다고 이 기자는 말했다. 그러고 나서
독백처럼물었다.
“굳이고베를고집한이유가뭘까요?”
“일본의정신을보여주고싶어서였겠지”
그러잖아도같은생각을하고있었으므로, 김감독은쉽게대답했다. 한참동
안골똘히생각에빠져있던이기자가엉뚱한말문을들고나왔다.
“그 왜 우리 말에 남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남. 그런데, 묘해요. 획 하나
만바꾸면님도되고, 또놈도되니말예요. 그러니까나와너가네, 또는내가되
는지혜를모르는거지요”
“비슷한노랫말도있더군요”
거듭해서말에뜸을들이던이기자의얼굴에상기가돌았다.
“우리 선조들은, 남의 눈에 눈물 내면 제 눈에서는 피가 난다고 했어요. 지난
세기에걸쳐일본이우리민족의눈에얼마나많은눈물을솟게했습니까? 그것
도부족해서, 말로는사죄니부전결의니떠벌이면서잊어버릴만하면정치지도
자들을앞세워습관성망언을되풀이하고있으니, 이건원, 놈들이라는말을쓰
지않을수가없어요”
얼마동안이기자는에토총무처장관을몰아세웠다. 그정도라면그가장관직

에머물러있기도힘들것처럼보였다.
“김감독은, 일본의눈에서쏟아지는피를본적이있습니까?”
“……”
“없을 거예요. 나도 여태 보지 못했으니까. 남의 슬픔과 고통을 보면서 이런
말을하기는뭣하지만, 그래요, 고베지진이바로우리선조들이얘기한그피에
해당되는지도모릅니다. 자연이내리는피”
그날이기자의마지막한마디는마치전쟁터에나가는병사의의지처럼결
연했다.
습관성망언. 패배를승리로, 마찬가지로승리를패배로기록할수는없다. 일
본 여자배구가 한국에 12연패라는 처참한 수모를 당했다면, 그것도 한 시대에
기록된역사로손색이없다.
그날이었을것이다. 사진속의할머니와이기자사이에어떤떼어놓을수없
는관계가있을거라는생각. 이기자와헤어진다음김감독은조심스럽게그생
각을가다듬었다.
셋째세트의전세는이미한국편으로돌아선뒤다. 김감독을찾아왔던악몽
이요시다감독을향해발길을돌린탓일까. 아무래도악몽이라면김감독보다는
요시다감독과안면이더많을것이다.
공격력이현저하게떨어진상황에서요시다감독은어쩔수없이작전시간을
다쓴다. 상대적으로한국의수비가안정을찾았다는증거다. 득점은무려아홉
점차이, 한세트에서의득점차로는김감독도쉽게믿어지지않는다.
10점은승부의첫번째분수령이다. 10점까지오르는단계는그야말로승부로
가는하나의과정에지나지않는다. 그다음부터다섯점을올려놓는과정이더
중요하다. 그과정에서여러겹의험악한분수령이발길을가로막기도한다. 승
부의 관건은 그곳에 있다. 블로킹 하나, 수비 하나, 그리고 실책 하나는 그대로
점수와연결된다. 아주자연스럽게실책은또다른실책을낳는경우가흔하다.
“자, 봐. 왜욕심을부려? 손만든다고블로킹이되는게아니잖아. 높이를봐,

높이를. 그리고뒤에서, 급하잖아. 왜그렇게서둘러? 강타만들어오는게아니
야. 천천히해, 천천히”
김감독은화도아닌말로블로킹과수비를독려한다. 아홉점이나앞선국면
에서선수들에게화를내는일은섣부른화를불러일으킬지도모른다. 그같은감
독의폭력에대해고분고분고개를숙일선수들은없다. 어느경기에선가왜그
래, 공이폭탄이야, 하는심한말로오히려악수를두었던일을김감독은지금껏
가슴아프게되씹고있다. 다잡은세트를놓친기억은차라리쓰라린법이다.
다시경기가이어지지만요시다감독은오바야시를벤치로불러들인다. 셋째
세트를버리고넷째세트에승부를걸겠다는속셈이다. 거듭찾아온악몽이그렇
게지시했는지알수없다.
승부의 세계는 가끔 조화를 부린다. 여자배구도 그렇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
다. 이따금 공격이나 수비, 또는 블로킹이나 서브에 교체선수를 투입해서 흐름
을돌려놓거나기대이상의재미를보는경우도더러있기는하지만, 승부는역
시여섯명의주전에의해결정되는것이나다름없다. 그렇다면상대팀과의전
력차는뚜렷이존재해야마땅하다. 종이한장차이라는말은아마도관중들을
위해지어낸말에불과할것이다.
그러나 요시다 감독의 광기 어린 승부욕도 조화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종이한장의차이라는박빙의승부에서매번무릎을꿇는것도따지고보면조
화 속이나 마찬가지다. 한 세트를 먼저 따내고 내리 두 세트를 잃은 요시다 감
독으로서도조화의세계에넷째세트를맡기고싶은심정일터이다. 조화속에
매달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떨쳐버리기도 하면서.
굳이이기자의말을빌릴것도없이, 본래그는체육기자로부터출발하지는
않았다. 사회부와정치부를거치면서이기자는여러부문에서지식의폭을넓
혔다. 어떤일이있어도배구에관한한이기자가김감독을이길수는없겠지
만, 그밖의 어떤 대화에서도 김 감독은 이 기자로부터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
할 것이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했다. 어떻게 체육기자로 옮겼느냐는 물음

에그냥해외취재가좋아서라고그가대답했을때, 그마저도김감독은사실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승부는 해보나 마나였다.
그런데 그가 처음 해외취재에 나선 것은 바로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때였다.
물론그의취재영역이배구에한정되어있지않았으므로대회기간중김감독과
이기자사이는상당한거리가유지되었다. 그런그가한일전하루전날김감독
을찾았다. 찾아와서는가벼운얘기끝에, 처음으로일본에관한축적된지식을
풀어놓기시작했다.
그날이기자는마치새학기첫강의를시작하는교수처럼가볍게수업을이
끌었다. 일본의역사속에깊이자리한우리민족의빛나는문화유산에대해이
기자는몇가지예를들어가며설명했다. 말하는동안이기자는한번도쉽게말
해서, 하고말하지않았다. 역사공부와는아예어릴때부터담을치고살아온김
감독이었지만, 그정도신명나는내용이라면일찍배구를포기하고도남았을것
만 같았다. 연이나 이 기자는 오늘날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일본의 선진기술도
짜장따져들어가면그뿌리는한반도에있다고첫강의의결론을내렸다. 조선
조에 이미 우리는 토기문화와 철기문화에서 100년, 또는 50년 일본에 앞서 있
었다는내용이었다. 다만그결론에대해서반신반의로엉거주춤했을뿐, 김감
독은가슴깊숙한곳에서부터이기자에대한믿음이하나의문화처럼자리잡아
가는것을느꼈다.
그러나주고받는일에는김감독도이골이나있는편이었다. 그자리에서김
감독은배구얘기로그에게진빚을당장되갚았다. 우리가일본의끈질긴배구
를배운것은숨길수없는사실이었다. 이기자는가끔씩고개를끄덕이며김감
독의얘기를경청했다. 일본이오랫동안여자배구를평정해왔던소련을꺾고세
계정상에오르리라고는아무도예상하지못했다. 그러나일본은몬트리올올림
픽에서그기적같은일을해내고야말았다. 당시동양의마녀들을탄생시킨다
이마스감독의비밀병기는수비배구였다. 땀대신눈물로범벅이되는지옥같
은 훈련을 통해 일본의 무기는 가다듬어졌다. 코트 안에서 마녀들의 손은 어떤

상황에서도 로버트 팔처럼 움직였다. 무아경, 그리고 조건반사라는 말이 더 적
절한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볼을 걷어올려, 결국은 공격으
로연결시켰다. 높이의열세를끈질긴수비로극복하고자했던다이마스의명작
이었다.
그날이기자는수비배구에빠른배구의접목을시도한김감독스타일의배
구에큰관심을보였다. 물론이기자의관심은거기서끝나지않았다. 한세트씩
주고받는일도멈추지않았다. 이튿날김감독은일본여자배구의벽을뛰어넘
어처음으로연승가도에시동을걸었다. 다른곳이아닌히로시마에서.
갈수록오바야시의몸이연체동물처럼흐느적거린다. 언뜻쿠바나브라질선
수를연상시킬정도의긴하지장, 그들보다는둔부가다소내려앉아고무줄같은
탄력은떨어지지만장신과점프력에서생산되는타점높은강타, 그리고코트안
을장악하며쉴새없이선수들의호흡을모으는응집력. 그러나일본의얼굴은체
육관안의기운과소망과는아랑곳없이거푸고개를떨군다.
마지막세트. 김감독이그렇게전의를가다듬었다면, 요시다감독은넷째세
트만잡으면이길수있다는자신감을선수들에게불어넣었을것이다. 상대적이
지만, 두감독의전의나자신감은모두옳다. 넷째세트를따낸팀이다섯째세트
에서승리할확률은높다. 종이한장의차이라는점에서생각한다면, 역전승과
역전패또한종이한장의차이다. 손등과손바닥차이라면또어떤가. 다만요시
다감독의승부욕이한점을따라붙기전에몇점을앞서가느냐가문제다.
한때선수들은이기자에게몇가지경칭을혼용했다. 편집국장, 박사, 대학교
수, 심지어는외무장관까지여럿이었다. 감독보다더많은, 더믿음직스러운호
칭을지니고있다는데에은근히부아가치밀정도였다. 훈련과이동, 경기와휴
식이생활의전부인선수들사이에서이기자가화제로떠오르는일은당연했다.
그러다가무슨결론처럼하나의별칭으로굳어진것이바로이상이었다. 거기에
는나름대로의뜻이숨겨져있었다. 일본통이라해서김상, 박상, 하는이상이
요, 보통과는다르다는뜻, 그리고최고라는뜻의이상도포함되었다. 물론정상

과는 반대되는 이상도 빠지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자의식 면에서 키가 비슷한
작가이상의이름까지도찍어다붙였다.
그랬다. 배구선수의높이와수비력에대항해서이기자는그야말로일본에대
한이상적인깊이와공격력을지니고있었다. 하지만그여러가지의미의이상
보다역시선수들가슴속깊은곳에자리한호칭은역시기자였다. 이한성기자,
이기자. 그리고이기자.
바로일주일전, 이기자는선수들에의해저녁자리에초대되었다. 여느때처
럼거의자리가끝날때쯤가서야이기자는기다려마지않던한마디를들고나
왔다.
“일본초등학교6학년교과서에세계속의일본이란단원이있어요”
“오늘은겨우초등학교교과서예요?”
어느선수의말에모두들마음놓고웃었다. 이기자가계속말했다.
“베를린올림픽에서일장기를가슴에달고뛰었던손기정선수가했다는말이
실려 있는데, 다시는 일본을 위해 달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말이에요. 그러
면서 올림픽 정신과 일본의 잘못된 과거를 돌아보고, 나아가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을 어떻게 이해해야 바람직한가를 가르치겠다는 내용이에요. 다음 세대의
주인이될아이들에게일본역사의잘못을인정하는참다운용기를가르친다, 그
걸 누가 믿겠어요?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종군위안부 관련 기술을 중학교 교과
서에서 삭제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그들을 말예요. 어디 그뿐인가요. 독도를 자
기네땅이라고, 되지도않는사람들이나서서어필이나하는게올림픽정신인가
요? 영토의문제는인이나아웃, 터치아웃이나아웃의판정이아니에요”
거기가지말하고나서이기자는, 이번에는우리의수비자세를꼬집었다.
“그럼, 거기에대항해서우리는어떻게하고있나요? 여기김감독도아시다시
피, 우리의전후세대가철저한반일교육을받았던것에비하면도대체가무전
략, 무대응이전부예요. 누구하나나서서명쾌하게역공을펼치지도못해요. 그
럴만한실력이없어서그래요. 역사적으로언제부터독도가우리땅이되었는지,

입에올리기도싫지만, 일본의영유권주장이왜터무니없는것인지, 그걸우리
모두가먼저알아야한다구요. 김감독도딸아이가독도얘기를물어왔을때, 그
저우리땅이라는말밖에할말이없었다고고백했어요. 지금어른들도잘모르
는일을아이들이어떻게알겠어요. 이러다가또한세기가지나면그들의주장
대로아예독도가일본땅이되는게아닌가, 걱정이되기까지합니다”
누가뭐래도배구는신사적인영토와주권의싸움이다. 가운데네트와폴대로
이어지는보이지않는선까지각각의영토는똑같은크기로나뉘어진다. 코트밖
의 영토는 전관수역과 다름없다. 전관수역 안에서도 주권은 보장된다. 그러나
볼데드가되기전까지는절대로남의영토를침입해서는안된다. 영토를이웃하
고는있지만, 선수들사이에어떠한신체접촉도용납되지않는다. 혹시라도남
의영토를넘보다가네트를건드리기만해도득점이나득권을빼앗기고만다. 움
직일수없는경기규칙이다.
역시 버릇은 점수 변동에 인색하다. 13점을 먼저 올려놓을 때만 해도 배구공
다운표정을유지하던김감독의얼굴에불안한그림자가올라온다. 거푸두점
을일본에헌납하고나서다. 순간탄력을받은배구공처럼김감독이벤치를차
고일어선다. 앤드라인을향해깃발을내린선심의판정에대고, 김감독은고개
를가로저으며큰소리로개새끼를부른다. 사이드아웃을득점으로바꾸어놓
은일본선심의애국심을향해. 그러나어쩔수없는일이다. 두번째노란문건
을 받는다면 경기장을 떠나야 한다. 고독한 딸들만을 코트에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아닌가.
그렇다 해도 아직은 13대 8의 절대우세에 변동은 없다. 그러나 13점과 15점
의차이는혹독하다. 가을과겨울이아니라가을과봄의간격처럼멀게만느껴질
때도있다. 남은두점, 되겠지되겠지하면서도그두점을정복하지못했던경
험이되살아난다. 역전의드라마는그시작을숫자로예고하지는않는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불러들인다. 선수들이 김 감독을 둘러싼다. 일본의 흐름
을그쯤에서꺾어놓거나, 아니면고꾸라진피를다시치솟게하는칼날같은말

한마디가필요할때다.
그러나김감독은아무말도하지않는다. 태극의외곽모양을이루고있던원
에서벗어나김감독의시선이코트쪽으로이동한다. 뚫어지게코트를응시하는
김감독의눈빛이날카롭다. 더는시간이없다. 작전시간끝을알리는호루라기
소리가요란하다. 김감독의팔뚝하나와, 그리고서른다섯개의손가락이하나
로뭉쳐진다. 서른여섯. 그때서야김감독이한마디를내뱉는다.
“바로 너희들이 서 있는 곳이 독도야. 그곳에, 쟤들의 공이 떨어지게 해서는
안돼. 알겠어?”
독도를지켜내기위해, 독도의딸들이다시코트안으로달려들어간다.
이 기자. 고개를 들어 김 감독이 기자석의 이 기자를 올려다본다. 언젠가, 사
진 속 할머니의 눈물이 다름 아닌 이 기자의 눈물이라고 선수들에게 말해야 할
때가올것이다. 피같은한점이필요한, 그절명의순간에.
*제28회 한국소설문학상 작품집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