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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소설-강호삼]맘모스의 멸종에 대한 최종보고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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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11,684회 작성일 05-03-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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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에서 계속)
“우리아직정식으로인사도나누지못했습니다. 저이두영이라고합니다.”
“제게명함주시지않았어요.”
여자가하얀이를살짝드러내보이며미소를지었다.
“아, 그랬지요.”
뒷머리에손이가면서두영은겸연쩍게웃었다.
“저차춘화입니다. 이름이촌스럽지요?”
인화는비로소고개를들고남자를정면으로바라보았다. 생각했던대로남자
는준수한외모못지않게착하고선량하다는느낌을받았다. 젊은나이에대기업
의차장이라면이사회에서는엘리트중에엘리트일것이다. 술자리에서남자의
친구들이생홀아비라고하는말을들었다. 그렇다면결혼을했으나어떤이유로
아내와별거하고있다는이야기였다. 별거하는이유가무엇이건간에인화는남
자의 진실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리고 남자와의 섹스를 생각하자 갑자기 다시
가슴이뛰는것을느꼈다. 무언가모를상실과아픔을동반했으나싫지는않았었
다.
커피를 마시고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인화는 두영이 이끄는 대로
일식집으로가서저녁을함께먹었다. 헤어질때두영은제과점으로들어가서케
익한상자를사서인화에게주었다. 인화가의아해서남자에게물었다.
“웬케익입내까?”
“내일이크리스마스아닙니까. 가져가서가족들과함께…”



“감사합니다.”
케이크를받아들면서인화는한동안잊고있었던아버지와엄마의얼굴을떠
올렸다. 그들은지금너무나먼곳에있었다. 한평생을땅을파면서지독한가난
속에살면서여느부모처럼딸자식하나만은잘살게하려고당신들의허리띠를
졸라매면서대학공부를시켰다. 그러나대학을마치고서도인화가그들을위해
서할수있는일은별로없었다. 생각다못해서울로가서돈을벌기로결심했고
밑바탕에서부터다시일을배우기시작했다.
“또만날수있겠습니까?”
두영은인화의표정을조심스럽게살피면서물었다.
“제가전화를드리겠습니다.”
두영은자신의정중한사과에도불구하고인화가아직도자신을신뢰하지않
는다는느낌이들었다. 그랬다. 그것은단한번의사과로써끝날문제가아니었
다. 서운했으나두영은언젠가여자가마음을열어올때까지기다릴수밖에없
었다.
“꼭전화주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인화는대답대신미소를지어보이고머리를숙여인사를한뒤지하철계단을
내려갔다. 여자가계단을다내려갈때까지두영은여자의뒷모습을지켜보다가
지하철통로가굽어지는데서보이지않게되자할일없이발걸음을옮겼다.
신길동지하철역에서전철을내린인화는어느때보다발걸음이가벼웠다. 지
하철 역사 안에도 감미로운 크리스마스 캐럴 송이 흐르고 있었다. 피자와 호프
집앞에는크리스마스추리가세워져있고꼬마전구장식등이켜졌다꺼졌다를
반복하면서환상적인분위기를연출했다. 시국이야어떻게되었건거리는연말
과연시의들뜬분위기에싸여흥청거렸다. 인화는지금까지화려한거리풍경들
이 먼외국의풍경처럼전혀자기와는상관없다고생각되었으나이제는아니었
다. 인화는남자를만난뒤자신도모르는변화가내면으로부터오고있다는것
을느꼈다.

쏘룡빤띠엔이위치한곳은큰길을건너영등포쪽으로나가는이면도로의서
쪽끝이다. 식당안에서음식과술을먹고마시면서중국말로떠드는소리가문
밖까지흘러나왔다. 이식당의주고객은조선족들이어서중국음식을잘하는주
방장을특별히고용했다. 중국을드나드는한국사람들도더러오긴하지만역시
주 고객은조선족들로음식값이만만치않지만그들은고달픈타향에서향수를
달래느라 마음먹고 친구들과 같이 쏘룡빤띠엔에 온다. <쏘룡빤띠엔>은 한자어
로 소용반점(笑容飯店)이다. 굳이 풀이하자면 웃는 얼굴의 식당이라는 뜻이다.
공산주의국가에서온 중국국적의조선족들이크리스마스를알리없지만직장
과학교와관공서가놀면서그들도모처럼의노는날을맞아서고향음식을먹으
러온것이다. 춘화가이면도로쪽으로난식당문을열자식당안의각가지음
식냄새와후끈한열기가그대로얼굴에쏟아졌다.
“네왔구나. 그것뭐니? 케익아니니. 뭐그런걸다사들구오니. 너도이제서
울사람다됐구나. 그것여기두고이거부터저쪽손님상에좀갖다주어라.”
식당언니는인화의얼굴을보자말자대뜸들고있던음식그릇을인화의가슴
에안겼다. 고향이같다는이유로여기와서알게된사이지만인화가두살아래
여서언니라고부르고있다. 인화는윗옷을벗을사이도없이음식그릇을받아들
고음식을손님상으로날랐다. 식당안은빈자리가한곳도없이꽉찼고조선족
아줌마를 두 사람이나 쓰고 있는데도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밤 열 두 시가
넘어서야손님이뜸해지자인화는그릇을같이씻으면서겨우언니에게말할틈
을얻었다.
“언니! 내가이식당맡을게. 언니말대로권리금삼천만원, 먼저내고나머
지는매월수입에서까나가는조건으로.”
“그래, 생각잘했다. 이가게남한테넘기기가참아까웠다. 너도보다시피큰
돈은 못벌어도수입이제법솔솔한편이다. 남의집에일해주고월급받는것
보다내장사니몸이고되어서그렇지, 어디월급받는것에비교가되겠니. 아이
들아버지가빨리가게를내놓으라고성화인데도아까워서지금까지붙들고있

었던걸너도알지않니. 2~3년고생하면가게전세금은빠질테고그다음부터
는전부너몫이지.”
식당 인수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인화는 식당사정을 눈 여겨 관찰했다. 주된
지출은주방장월급200만원과종업원두사람월급200만원으로식당을인수
할경우, 매달전세금200만원이더지출되어야함으로모두월600만원이필
요하다. 현재하루평균매상이40만원정도임으로월1200만원이되는셈이어
서, 이중에재료비와광열비등을제하더라도식당운영은별어려움이없는셈
이다. 다만이계산에는인화자신의인건비가포함되지않았으나매월갚는전
세금200만원이인화의수입인셈이고또100여만원정도가융통성이있으므
로월삼백여만원이인화의실질적인수입이되는셈이다.
식당을인수하기로마음을정하면서인화는이튿날부터마음이바빠졌다. 먼
저일을나가던한식식당에사정을이야기하고일을그만두었다. 주인은섭섭
해하면서도식당을차리게되었다는말에축하해주었다.
인테리어라할것도없지만일주일동안식당의문을닫고내부수리를했다. 그
을린벽에흰페인트칠을다시하고전에쓰던의자와식탁이너무낡아새것으
로들여놓고간판을새로제작해서내다걸었다. 그리고구로동과가리봉동, 신
길동일대와영등포쪽의중국과조선족들이많이모여사는곳에광고지를돌렸
다.
식당문을다시열때까지인화는거의파죽음이되도록열심히일했다. 남의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고단하고 일이 많았
다. 중국음식 재료 상에서 음식재료를 주문하고 그릇을 씻고 손님을 맞는 일에
이르기까지전부인화의몫이었다. 몸은고단했으나신장개업첫날매상이무려
100만원이나되었다. 인화는매상금을챙기면서이런식으로매상이오르면금
방부자가될것같은기분이었다. 그리고머지않아고향에있는부모님을편히
모실수있는기반도마련할수있을것같았다.
밤늦게까지술취한손님들상대로시달리다새벽두시나세시에삭월세방

으로 돌아와서 몸을 눕히면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아침 열 시에야 겨우 잠에서
깨어세수를하고로션과입술연지만으로화장을끝내고대강옷차림을차린뒤
집을나서서그대로음식재료를사기위해영등포시장으로향하는생활이계속
되면서한동안다른곳에정신쓸겨를이없었으나그바쁜와중에도시간을쪼
개두영을만났다.
그러나인화는남자가어떤사람인지를아직정확히알지못한다. 40대초반
의처자식이있는기혼이고무슨까닭인지부인과떨어져살고있다는것이인화
가아는전부다. 그런데도인화는남자에게이끌리고있는자신을발견하면서스
스로어이없어지기도했다. 자신이일방적으로너무남자에게빠져있다는것을
알면서도마음이잘다스려지지않았다. 어느사이두영은인화에게서절대적인
존재가되어가고있었다.
그 사이에도 두영을 만나서 밥을 먹고 영화도 보고 고궁에 가서 사진도 찍고,
정해진당연한순서처럼여관으로가서섹스를나누었다. 만나면만날수록남자
는매력적이었다.
아내가있고가정이있는남자가언젠가자신을떠날것이라는생각을하면마
음이아팠으나섹스를빌미로붙들어두겠다는생각은없었다. 언젠가남자는자
신을떠나겠지만결코후회하지않을것같았다. 그것보다인화는남자의얼굴에
서무언가모를어두운그림자같은것을감지하면서마음이아팠다. 남자의얼
굴에드리운어두운그림자가구체적으로무엇때문인지인화로서는알수없지
만남자가불행해보이는것에마음이쓰였다. 어쩌면그것이자기탓일것같아
서죄스럽기도하였다. 남자의어두운그림자가인화와는전혀상관이없는일이
었지만인화는걱정스러웠다.
남자가연락할수있는전화번호를달라고했을때인화는일부러가르쳐주지
않았다. 대신 인화는 자신이 전화를 걸겠다고 했다. 남자에게 믿음이 안가서가
아니었다.
나중남자와헤어지게되더라도남자에게아무런흔적도남기고싶지않다는

생각이었다. 사랑한다고해서다같이살수없다는것을인화는잘알고있었다.
남자가자신을떠날때마음편하게해주고싶었다. 인화는난생처음으로남자
에게사랑이라는 감정을느꼈으나사랑이라는이름으로남자를붙잡고싶지는
않았다. 인화는남자가 떠나더라도자신의사랑을아름답게간직하고싶었다.
식당을인수해서내부를수리와페인트칠을다시하고개업을하느라정신없
이한달이나후딱시간이흘렀다. 막상식당을시작하고보니겉에서보기와는
달리인화가손수처리해야할일이한두가지가아니었다. 음식재료를사들이
고거래처에술과음료수를주문하고카운터일을보는것까지모두인화의몫이
었다. 손님이붐빌때면음식을나르고그릇을씻는일까지그야말로눈코뜰사
이가없을만치바빴다. 전에있던주방장은인화가가게를인수받으면서다른
곳으로갔다. 처음생각으로는주방장을따로두지않고음식조리는자신이손
수하기로생각했으나손님들이한국사람보다는주로조선족과중국사람이라
는 점에서중국음식을잘하는주방장을수소문해서다시조선족주방장을채용
했다. 주방장은중국의연길에서도식당주방장을한서른세살의주씨라는남
자다. 딸하나와부인이연길에살고있다고했다.
김씨는어서돈을모아한국으로올때낸빚을갚고부인과딸을한국으로데
려오는것이소원이었다.
너무바빠서인화는한동안두영에게전화를걸지못했다. 남자를두번째다
시 만났을때다니던식당일을곧그만두고아는언니의식당을인수하기로했
다는이야기를했다. 남자는진심으로축하한다고했다.
“그러면식당사장님이되시는거아닙니까? 축하합니다. 식당을경영한다면
크던작던사업을하는것인데가냘픈춘화씨의어디에그런용기와배짱이들어
있는지모르겠습니다. 꼭성공할겁니다. 제가뭐도울일이없겠습니까. 냉장고
있습니까? 식당을하려면대형냉장고가필요하다던데…”
“아니예요. 쓰던냉장고까지모두인수받기로했어요. 따로다시사야할것은
아무것도없어요.”

“그래도제가뭐라도한가지해드리고싶습니다.”
인화는남자의진심이고마웠다. 남자도분명히자신을사랑하고있다는것을
느꼈다. 그 무렵 남자가 미국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두영은 지혜와의 이혼문제
와관련해서미국법원으로부터소환장을받고있었다.
미국에서체류기간이2주아니면3주정도가될것같았다. 두영의이번미국
행도회사의출장을겸했다. 그편이경비도덜들고자연스럽게시간을낼수있
어서좋았다.
인화는남자가출국하던날식당일을주방장에게맡기고인천공항까지배웅
을나갔다. 두영은탑승수속을마치고출국장으로들어가면서인화의손을꼭잡
았다. 왠지그순간인화는눈물이왈칵쏟아졌다. 남자가손수건으로인화의눈
물을닦아주었다. 남자가웃으며손을들어보이고출국장안으로사라지자인화
는하릴없이돌아서서공항을나왔고버스를타고서울로돌아왔다. 돌아오는버
스안에서도인화는눈물을참을수없었다. 2~3주면다시만날텐데도마음이
텅빈것같았다. 인화는새삼자신이얼마나남자를사랑하고있는지를깨달았
다. 잠시떨어져있을뿐인데도자신의남자가같은서울하늘에있지않고미국
으로가고없다는심리적인공허감을떨쳐버릴수가없었다.
점심시간이지나고조금한가한가했더니길쪽으로난식당의미닫이문이열
리며손님들이들어왔다. 남자들셋이었다. 그들중한사람은식당이신장개업
을하던날에도왔던사람으로은근히인화에게관심을보이고있었다. 이식당
에음식을먹으러오는사람가운데인화때문에오는사람도적지않다. 인화는
그런낌새를알면서도적당한거리에서그들의농도받고비위도맞추었다. 모두
들 처자식을 고향에 두고 돈을 벌려 낯선 곳까지 온 외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이
다.
한남자는일산어디선가에공사장에서일한다고했다. 이따금사람들을데리
고와서십여만원의매상을올려주기도했다. 특별한기술을가지고있어서일
당을 십 만원씩이나 받는데 총각이라고 했다. 돈도 모을 만큼 모았다고 술김에

자랑을늘어놓았다. 오늘은주중인데도친구로보이는두사람과함께왔다. 사
람혼자간신히앉을만큼옹색한카운터에앉았다가일어서는인화를보고남자
는장난스럽게한눈을찡긋해보이고는일행들과곧장구석자리로가서앉으며
안주와술을시켰다. 그리곤곧장자기들의이야기를이어갔다. 이리로오는도
중에계속하던이야기인것같았다.
“고럼, 이참에는에누리가없담말임메?”
“그렇다는구먼. 이번에는불법체류자들을싸악다내쫓는다는기야.”
“내래일없구만. 나가라는날짜에나갈것이구먼. 비행기표도다사놨어. 그
런데임자들은어쩔것이여?”
“그기말이여. 난아직비자싼돈도벌지못했는디참낭팰세.”
인화는주방장과함께주문한음식을만들면서그들이주고받는말을들었다.
그들은지금한참외국인근로자들사이에화제가되고있는불법체류자들에대
한당국의강력단속에관한이야기였다. 불법체류자단속은벌써부터예견되었
던일이다. IMF다뭐다해서일자리는자꾸줄어드는판에불법체류자들은점
점늘어나고있었다. 뿐만아니었다. 가짜여권으로버젓이인천공항이나인천부
두로불법입국하는사람들과아예다이렌이나상하이쪽에서밀항선을타고들
어오는사람들도점점늘어나고있었다.
중국에서는 한국 여권이 공공연하게 고가로 팔리고 전문적으로 여권만을 훔
쳐위조해서파는조직도생겨났다. 이때문에여행사에서중국으로가는한국인
관광객에게 첫번째 주의 사항이 여권을 도둑맞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워낙한국여권이고가로팔리는바람에현지가이드가한국관광객여권
을몽땅가지고잠적하는사건도발생했다. 모두들기를쓰고어떻게해서든한
국으로오려고난리였다. 너도나도한국으로가기만하면떼돈을버는것으로생
각하고중국현지에서는, 얼마안되는재산을모두팔아밀항선을탔다가잡혀
서송환되는바람에거지가된사람도많아서문제가되고있었다.
아무튼이번불법체류자일제단속만은엄포가아닌것같았다. 자진신고기

간에신고를하고귀국비행기표를산사람들이떠나고나면어떤식으로던대
대적인불법체류자단속이있을것이라는소문이일찍부터나돌았다.
“식당으로오는조선족의이야기를들으면어느때보다한국에나와있는조
선족불법체류자들의동요가보통이아니라고한다. 귀국을결심한이씨처럼웬
만큼돈을번사람도있었지만이제서야겨우한국으로올때진빚을갚은사람
도있고아예갚지못한사람도있었다. 이들이만약에강제로송환된다면알거
지가될것이너무나뻔했다. 그래서조선족들사이에자신들을돕고있는교회
를중심으로당국에탄원을해보자는의견도나돌고있었다. 그러나그어느것
이든 이번만큼은 한국정부의 태도가 너무나 단호해서 먹혀들지 않으리라는 것
이중론이었다.
하얼빈에서수소문은무위로끝나고말았다. 달랑사진한장을들고더넓은
중국대륙에서사람을찾는일이란처음부터불가능한일이었다. 그러나두영은
한가닥의작은가능성이라도놓칠수없었다. 하얼빈에서사흘째되던날오전
에 다시 하얼빈 교외의 조선족 마을을 방문했으나 역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하릴없이호텔로돌아온두영은오후에장춘으로돌아가기로했으나기차편이
없었다. 다른차편을구할수도있었지만무리하지않기로했다. 귀국편의비행
기는 발권이 되어 있었으므로 좌석 예약만 하면 언제나 귀국이 가능한 상태다.
출장일정에도여유가있어서하얼빈에서하루밤을더묵기로했다. 심신이모두
피로한상태여서호텔에서푹쉬기로작정했으나점심을먹은후생각이달라졌
다. 사람을찾기위해관광은생각지도못했으나이제돌아가면이곳에다시오
기어렵다는생각에서시내관광을나가기로했다. 이씨에게내일장춘으로가는
기차 편을 부탁하고 간편한 차림으로 혼자서 호텔을 나섰다. 호텔 주위가 바로
하얼빈에서가장번화한거리인중앙대로였다.
중국땅이면서도중국도시같지않은곳이하얼빈이다. 중앙대로변의건물들
은모두러시아풍이다. 삐죽한첨탑지붕이있는가하면이중으로여닫게되어

있는 창문은 전형적인 러시아식 건축물이다. 어느 골목에선가, 얼굴이 둥글고
광대뼈가나온피부색이노란황인종대신, 갈색머리에흰피부의눈이파란슬
라브 인이 나오기라도 하면 그대로 러시아의 어느 도시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
다.
두영은헤이룽지앙성뽀우관(黑龍江省博物館)을가보기로했다. 한국에서발
간한어느관광책자에서하얼빈에있는흑룡강성박물관에가면맘모스의화석
을볼수있다고했다. 먼저호텔로비에서집어온관광안내도를펼쳐자신이서
있는거리와위치를확인했다.
관광안내도에서맘모스의그림을보았을때두영은한때이땅에번성했다가
사라진맘모스라는동물의화석을보고싶었다. 춘화를찾지못한다해도맘모스
를보는것만으로이번여행은전혀무의미하지않으리라는생각이었다. 호텔에
서십분쯤걸어어렵지않게박물관을찾았다. 박물관건물역시러시아인들이
건축한건물이었다.
일제식민지 시대에 일제가 건축한 세칭 중앙청이라 불리던 총독부건물이 한
때우리의국립박물관이었던것처럼이건물도러시아인이이땅을지배했을때
중요한관공서건물이었던것같았다.
맘모스에대해서유달리두영은유달리많은관심을가지고있는편이었다. 맘
모스가이땅에서사라진동물이라는것때문만은아니다. 맘모스뿐만아니라이
지구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동식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치 그 숫자가 많
다. 수십종을헤아리는공룡도이지구상에서영원히사라진동물이다.
공룡이지구상에서나타났다가자취를감춘것은대게제3기지질시대에속
하는쥬라기에서백악기에이르는시기이다. 지구는이시기에열대우림으로덮
여있었다. 그러나어떤이유로, 지구는대빙하기를맞으면서기후는급격한변
화를가져왔고거기에적응할수 없었던공룡은자신의화석만이땅에남긴채
멸종하고말았다. 학자들에의하면당시공룡은전지구상에골고루분포하고있
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경상도와 전라도의 남해안에서 공룡

의 화석과공룡의알과공룡의발자국으로추정되는흔적이심심찮게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맘모스는공룡보다시기적으로후대에지구상에나타난동물이다. 제
4기지질시대초기인홍적세(洪績世:pleistocene)에순록등과함께나타났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만 년 전으로 같은 시기에 인류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크로마뇽인도함께나타나인류의구석기문화가시작되었다.
맘모스는유럽과시베리아전역에서식했던것으로생각되지만우리나라에는
아직맘모스가살았다는흔적이나화석같은것이발견되지않았다. 우리나라에
서도공룡의화석이발견된것처럼언젠가 맘모스의화석이발견될가능성이전
혀없는것도아닐것이다.
맘모스의외형은주로지금의코끼리와비슷해서학자들은어떤식으로던현
재의코끼리와관계가있을것으로보고있다. 맘모스도처음에는화석으로만그
존재를확인할수밖에없었는데1901년, 러시아의과학자들이시베리아의빙하
층에서완벽하게원형이보존된맘모스의미이라를발견함으로서그실체가세
상에드러났다.
두영은우연히어느과학잡지에서복원시킨맘모스의그림을보았다. 얼른보
아서코끼리와외형이별반달라보이지않았다. 코끼리의상아같이위로길게
자라, 말려올라간커다란송곳니까지도코끼리와거의같고부채같이넓은귀도
가지고있었다.
다만맘모스와코끼리를확연히구별할수있는부분은코끼리가몸에털이없
는데 반해 맘모스는 치렁치렁 늘어질 만큼이나 긴 털이 온 몸을 뒤덮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또다른하나는눈이었다. 코끼리의눈은큰덩치에비해유난
히작지만그림속의맘모스의눈은황소의눈처럼크고흰자위까지보이는맑은
눈을가졌다는점이었다. 두영이가처음그림에서본맘모스는옆으로서서, 머
리는 정면으로 향하고 앞쪽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 큰 눈 때문에 마치 감정을
표현할줄아는인간처럼무척이나슬퍼보이는표정이었다.

맘모스의그림을처음보았을때두영은무어라고꼭집어말할수는없는강
한충격을받았었다. 지구상에서사라진동물이라는다소감상적인그림설명과
함께맘모스의눈에서금방눈물이라도주르르흘러내릴것같은맑고커다란눈
이아프게가슴에각인되었던것이다.
시베리아에서 발견된 맘모스의 미라를 두고 당시 과학자들은 유럽의 알프스
일대에집단으로서식하던맘모스가어떻게단한마리만이시베리아까지남하
해서미라가되었는지에대해서의문을제기하였다. 맘모스의미라가발견된주
위에는 한 조각의 맘모스 화석도 발견된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다소 지엽적인
것이긴 하지만 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 지질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이 공동으로
지표조사를하고탐사작업을벌였지만별결론도내리지못하고무위로끝나고
말았다. 그러나과학자들은그대로단념할수가없어몇가지가설을내놓았다.
그첫번째가설은, 맘모스의서식지가처음부터전지구적인것이라는것이었
다. 그리고두번째의가설은지구의삼분의이가얼음으로뒤덮였던대빙하기
의극한적인추위를피해남하했을것이라는가설이다.
그러나첫번째의가설은지질시대제3기에이미대빙하기와간빙기, 그리고
여러차례의빙기가반복되는동안급속한기후변화를겪으면서공룡들이멸종
했고이러한현상은제4기전반까지이어졌으므로맘모스가전지구에서식했
으리라는가설은설득력이떨어졌다. 이런면에서오히려두번째의가설이설득
력이 있었다. 빙하기가 닥치면서 전 지구를 뒤덮고 있던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이에적응할수없었던동식물들도지상에서자취를감추었으나, 뒤이어지구상
에나타난맘모스와순록같은동물들은두꺼운지방층과보온성이높은털로추
위를이기면서이끼같은조악한먹이로버텨냈다는것이다. 그러나지금까지살
아남은순록등에비해서상대적으로극한의추위와조악한먹이에적응력이약
했던맘모스는결국멸종의길로접어들었으리라는것이었다.
어느가설이든시베리아동토층에서발견된맘모스의미라는집단이아니라
홀로남하했음이분명했다. 맘모스의다른미라를찾기위해서여러가지조사를

했으나끝내다른맘모스의미라는발견되지않았다. 먹이를찾아혼자집단에서
이탈해시베리아쪽으로남하했다가극심한추위와굶주림에지쳐서그대로동
토층에묻혀미라가되었으리라는추측만할수있을뿐이었다.
두영은치렁치렁한긴털을드리우고혼자서절망적인모습으로서있는맘모
스의그림을보고맘모스의실제모습을복원했던미술가가의도했건하지않았
건간에맘모스는죽음을앞둔최후의모습이었다. 집단의힘센무리에게따돌
림 당하고 어쩔 수 없이 혼자 떨어져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이제 완전히
생을포기한듯한모습이두영이가처음본맘모스의그림이었다.
그렇다면 인간의 조상인 크로마뇽인들은 어떠했을까? 그들도 극심한 추위에
내 몰렸을 것이다. 인류의 대 이동이 어느 때부터 시작되어 어떻게 오늘날처럼
정착되었는지자세히는알수 없지만남하를계속하다가동토층에서미이라로
발견된맘모스처럼인간도같은역경을만났을것이다. 그러나인간은멸종되지
않았다. 멸종되지않으려고온갖어려움을감내해내면서지금까지버티어왔다.
맘모스는멸종했지만인간은생존했다.
고고학자들과역사학자들이어떤이동경로와역경을이겨내면서인류가현재
처럼지구상에분포되게되었는지지금도끊임없이연구를계속하고있지만아
직까지도밝혀진것보다는밝혀지지않은부분이더많다. 역사시대로접어들면
서부터는겨우인류의이동경로들이조금씩밝혀지고있다. 이를테면유럽에서
는앵글로색슨과노르만민족의대이동같은것이고아시아있어서는몽고민족
의발흥과함께17,8세기로접어들면서신대륙의발견등으로인류의대이동과
변천이극단적으로계속되어왔다.
현세에들어서면서인류는대빙하기에못지않게1차와2차에치러진세계대
전은인류뿐만아니라지구상에생존하고있는모든동식물에게, 공룡을멸종케
한대빙하시대의재앙만큼이나인간스스로에의한인류의멸망과그개연성을
보여주고있다.
이것은우주공간의한낱미세한우주먼지의결합체에불과한지구가스스로

수명을다해언젠가우주공간으로다시해체되기전에, 인간에의해서지구의종
말을앞당길수있게되리라는반증이기도했다.
한 민족이 선사시대에 어디로부터 이동해 왔는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않고있다. 고조선시대가신화라거니아니라거니하는논쟁이일제시대의
식민사관을벗어나려는 소장학자들사이에서부터비롯되었지만아직까지도 정
확하게고증된바가없다. 비공식기록인한단고기나고사기같은기록물도삼국
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이 정사로 문헌적 가치를 인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제기되고있으나그 어느것이던우리의역사기록을한반도안에서만국한시키
지않고좀더거시적인사관으로보아야할필요성이제기되고있다.
두영은초라한박물관의매표구로가서입장표를샀다. 한낮인데도어둠컴컴
한박물관안으로들어서자장판바닥의마른먼지냄새같은것이맡아졌다. 아
무 조명시설도 없는 1층의 넓은 공간에 공룡과 맘모스의 화석이 같이 전시되어
있었다.
맘모스의화석은생각한대로그크기만다를뿐코끼리의그것과별다름없었
다. 사전상식없이, 또맘모스라는영문표식만없다면거대한코끼리의화석으
로밖에볼수없었다. 맘모스화석아래쪽에화석이아닌맘모스의실제그림이
있었다. 그림이조잡하긴했으나그맘모스그림역시, 두영이처음보았던맘모
스의그림처럼긴털을치렁치렁늘인채크고초점없는슬픈눈망울로멀거니
앞쪽을바라보고있었다.
왜, 맘모스의그림은항상슬픈모습으로묘사되었는지모를일이었다.
다음 날, 두영은 기차를 타고 장춘으로 돌아오면서 절망적인 기분을 느꼈다.
처음부터여자의행방을찾을수있으리라고기대를한것은아니다. 다만이번
여행에서 여자를 찾을 수 있는 작은 단서 하나만이라도 찾을 수 있길 희망했을
뿐이다. 그러나사흘동안발이불어터지도록낯선나라의낯선도시, 하얼빈을
종횡하면서조선족이모여사는마을을일일이찾아다녔으나여자의행방을알
수있는작은실마리하나도찾질못한것이다. 여자를찾기만하면이제아무꺼

릴것이없었다. 그사이서류만으로존재하던지혜와의부부관계도정식으로이
혼서류에서명했다. 벌써오래전에그렇게정리되어야할관계였다.
영수가지혜와경민의관계를말해주지않아도두영은이미그들의관계를알
고 있었다. 설마 했던 그들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로스앤젤레스로
보낸수출물품에크레임이걸려급히엘에이로출장을갔을때였다. 서울을떠
난비행기가현지시간으로밤아홉시에, 엘에이공항에도착했고두영은공항
을 나오자마자 바로 택시를 불러 지혜와 은비가 살고 있는 라 미라다로 달려갔
다. 미국행을 미리 지혜에게 알리지 않았던 것은 불쑥 찾아가서 딸아이 은비를
놀라게해주고싶었기때문이었다. 그들은돈많은외할아버지덕으로라미라
다의70만달러짜리고급주택에살고있었다. 두영은바로집앞에서택시를내
렸다. 밤열시가조금넘었을뿐인데다운타운과떨어진주택가는한산하리만
치조용했다.
두영은현관벽면에붙은집의번지를다시확인하고가방에서챙겨온열쇠를
꺼냈다. 이번으로이집에오는것이세번째였지만이집의열쇠를자신이직접
사용해보기는처음이었다. 열쇠를집어넣자딸깍하고현관문이소리없이부드
럽게열렸다.
문을열고실내로들어서면바로거실이고주방이다. 불이켜져있지않은실
내는어둡지만저쪽다운타운의불빛이창문으로희미하게들어와, 벽난로와필
요이상으로 덩치가 큰 응접세트와 갖가지 도자기와 크리스털 장식품으로 채워
진대형장식장과TV세트들이흐릿한윤곽을드러내고있었다. 남향쪽에주방
이있고희미한다운타운쪽의불빛이주방쪽창문을통해서들어오고있었다.
네개의침실은모두이층에있다. 목제로된나선형계단을오르면, 발코니가
방앞에있는남향한방이부부침실이다. 옆방이은비의방이고복도를사이에
두고 있는 두 개의 방은 비어 있어 손님이 올 때나 사용된다. 바닥에 깔린 털이
긴카핏때문에발소리가전혀나지않는다. 계단을오르다가두영은갑자기발
걸음을멈추었다.

지혜가자는부부침실쪽에서이상한신음소리가흘러나왔다. 여자의소리였
다. 순간두영의신경은극도로팽팽하게긴장했다. 모녀가사는집이라는것을
알고 강도가 들었다는 생각이었다. 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골프채가 벽에
기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두영은 골프채를 집어 들고 강도가 튀어나오기라도
하면언제라도박살을낼수있는자세로한걸음, 한걸음계단으로올라가침실
문앞에섰다. 신음소리가더욱크게들렸다. 그런데여자의신음소리가이상했
다. 두영은한동안무엇엔가얻어 맞은것처럼얼떨떨한기분을느꼈으나이내
그신음소리가의미하는방안의상황을알아차렸다. 그것은두영의귀에도이미
익숙한소리로, 지혜와섹스를할때절정에이르면지혜가야단스럽게내지르는
교성이었다. 철썩철썩살과살이맞부딪히는소리와함께남자의거친숨소리도
같이어울려들렸다.
두영은방안의상황을알아차리는순간잡았던문의손잡이를잡은채얼어붙
은듯그자리에서버리고말았다. 예견한일이긴했으나이렇게정면으로목격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방안의 두 남녀는 이제 절정이 고비를 넘기고 있는 듯 했
다. 자지러지는듯한지혜의비명같은소리를끝으로방안은잠잠해졌다. 두영
은지혜가차마남자를집으로까지끌어들이리라고는생각지않았다. 바로옆방
에은비를두고남녀가공공연히정사를벌이고있다는사실에극도의분노가치
밀어오르며부르르몸을떨었다.
보지않아도상대는경민이임에틀림없을것이다. 그들이엘에이에서공공연
히어울리고있다는소문을듣고있었다. 두영은당장이라도방안으로뛰어들어
들고있던골프채로두년놈을박살내고싶은충동을받았으나무서운자제력으
로 곧 냉정을 회복했다. 지혜가 은비의 공부를 핑계로 미국으로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이미충분히예견된일이었다. 방안에서몸을뒤척이는지부스럭거리는
소리가나고이어남자의컬컬한목소리가흘러나왔다.
“좋았어?”
“응. 죽는줄알았어.”

이어 여자의 코맹맹이 소리가 들렸다. 방안의 남녀는 의심할 것 없이 지혜와
경민이었다.
“나도최고로좋았어. 지혜너정말대단한여자다”
“몰라.”
“두영이그자식도이렇게널죽여줘?”
“그런건묻지않는거야.”
“질투가나서그래.”
“아이, 좀있다가해. 아이간지러워.”
남자가젖꼭지라도빠는지여자가앙탈을했으나이내다시두사람의숨소리
가높아지고있었다.
두영은더이상남녀의정사소리를듣고있을수가없었다. 두영은그와중에
어처구니없게신라의향가처용가를생각해냈다. 몇편안되게전해오는신라의
향가는어문학사를연구하는귀중한문헌적인가치를지니기있기도하지만그
중처용가는문학적인향기도높았다. 달밝은밤신라의서울서라벌에서밤늦
게놀다집으로돌아와보니자신의아내가다른남자와정사를벌이고있더라는
내용이노래의가사다. 이노래의문학성은아무래도남편이정사를벌이고있는
남녀를벌하는대신덩실덩실춤을추면서노래를불렀다는대목일것이다. 그러
나두영은처용가에등장하는남편이될수는없었다. 오래전부터기다리던일
이 마침내 왔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차 담담한 심정이 되었다. 가만히 발걸음을
옮겨은비가자는방앞으로갔다. 그리고은비의방문을열었다. 창문의흰커튼
을 투과해서 스며든 저쪽 도심의 희미한 불빛 속에 혼곤이 잠든 은비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이는그대로하늘에서내려온아기천사였다. 두영은아이의볼에
가만히 입맞춤을 한 뒤, 공항에서 급히 산 바비 인형을 침대 곁에 놓았다. 왠지
생각지도않았던눈물이볼을타고주르르흘러내렸다. 얼른눈물을훔치고돌아
섰다. 그리고들어올때처럼되돌아서서아이의방을나왔다.
지혜의방에서다시살이맞닿는소리가볼레로의점점고조되는음계처럼높

아가고있었다.
두영은그밤한길까지걸어나와간신히택시를잡았고다운타운에이르자맨
먼저눈에띠는모텔로숙소로잡았다. 그리고엘에이에서클레임이수습이끝나
는대로바로귀국길에올랐다.
은비의양육은어미인지혜가맡기로했다. 지혜는처음부터은비의양육권을
주장하는대신위자료같은것은한푼도요구하지않았다. 그리고아이는언제
라도 아버지가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두영은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어미인지혜가은비를맡는것이좋을것이라고생각했다. 은비에게는나라돈을
훔친것이긴하지만돈많은외할아버지와외할머니가있었다. 다만지혜가경민
과재혼을할경우를생각하면다소마음에걸리긴하지만지혜도은비만은끔찍
하게생각하기때문에별문제가되지않을것같았다. 지혜가요구하는대로이
혼서류에사인을했다. 그리고아이와함께디즈니랜드와유니버설스튜디오등
을돌아다니며며칠을보내고귀국했다. 당분간아이에게는부모가이혼한사실
을알리지않기로했다.
귀국을하자며칠은일때문에그냥지나갔으나조금시간에여유가생기자춘
화의전화를애타게기다렸다. 그러나어쩐일인지보름이넘도록춘화에게서전
화한통화없었다. 춘화는틀림없이자신의귀국을알고있을것이다. 전에없었
던일이었다.
춘화는아무리식당일이바빠도일주일에두세번씩은꼭전화를했다. 보름
동안이나전화가없다는것은춘화의신변에무슨일이생겼음을의미하는것이
었다.
그제서야 두영은 억지라도 춘화의 연락처나 전화번호를 알아두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두영은처음부터왠지춘화가자신의거처와전화번호를알려주고싶
어 하지않는다는느낌을받았을뿐아니라자신의가정환경이라든가부모라던
가형제들, 그리고고향에대해서구체적으로아무것도이야기해주지않았다.
다만춘화의고향이시골이라는것과농사를짓는부모아래서몹시어렵게자랐

다는것만단편적으로들었을뿐이다. 두영은섭섭했지만자신이춘화에게아직
믿음을주지못한탓이라고생각하면서기다렸다. 언젠가춘화가두영을완전히
신뢰를하게되면그런것들은자연스럽게알게되리라는생각이었다. 중요한것
은춘화가자신을믿게하는일이었다.
결코한때의장난이아니라는믿음을갖게하는것이중요했다. 그것은시간
이필요했고결코강요할수있는성질의것이아니었다.
두영은더이상가만히앉아서춘화에게전화만오기를기다릴수만없게되었
다. 자신이없는사이에무언가춘화에게중요한변화가발생했음이틀림없었다.
어쩌면춘화가일부러자신으로부터종적을감추지않았을까생각도해 보았으
나그것은절대로아니었다. 어떻게하면춘화와연락이닿을수있을까를생각
하다가어쩌면춘화가전에일했던식당에주소같은것이남아있을지도모른다
는생각이들었다. 개인이운영하는작은식당에서종업원의신분에관한자세한
기록은있을지가의문이었지만간단한이력이나주소같은것이보관되어있으
리라는생각이었다. 춘화의인적사항을알아보기위해춘화가전에일했던식당
으로간김씨에게잔뜩기대를걸었으나김씨는아무것도얻어오지못했다. 삼
개월 전에 식당을 그만 두고 영등포 어딘가에 식당을 차렸다는 것과 사는 데가
구로동어디라는것이전부였다. 그것은이미두영도알고있는사실이었다.
“오셨어요?”
손님테이블에앉아있던마담이두영이들어오는것을보고일어나카운터에
앉은 두영의 옆자리로 와서 앉았다. 마담의 몸에서 짙은 향수와 덜적지근한 술
냄새가함께풍겼다. 마담은이미상당히취해있었다. 밤열시가넘은시간, 카
페안여기저기술을마시면서나누는사람들의대화가이어지고있었다.
그러나 OO그룹 사옥 빌딩의 창문마다 환히 불이 켜져 있다. 아직 많은 직원
들이 금융 감독원의 감사 자료를 준비하느라 퇴근을 못하고 있었다. 그룹이
IMF와기업구조조정은용케넘겼지만벌써부터많은사람들이이번에는좀어
렵지않겠느냐는전망을내놓고있었다. 불법분식회계로그룹의외형을불리고

은행에불법대출을받은혐의가금융감독원에의해서혐의가잡혔다는소문이
었다. 전 정권 하에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로 새삼스럽다면 새삼스러운
일이었다. 문제의발단은부산공장의설비를중국으로이전하려는회사의방침
에 노조가 극한투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부터였다. 공장설비의 중국이전은
기업이존속하기위한정책적인것으로노조가왈가왈부할성질의것이아니었
다. 회사는법대로대처했고하등의잘못도없었다. 그러나노조의투쟁이극한
으로치달으면서새로집권한정권의노사문제에대한시각에대한시선이집중
되자문제가엉뚱한곳에서터져나왔다. 이제단순한노사문제가아니라그룹의
사활이걸린문제로비화되어버렸다.
두영은마담에게내키지않는미소를지어보이고다가온바텐더에게스카치
위스키를한잔주문했다.
“저도한잔사주세요.”
“둘!”
바텐더가알았다는몸짓을하고이내스카치두잔과얼음통을두사람앞에
가져다놓았다.
“왜요즘회사에무슨일이있으세요? 다들늦게퇴근하시던데. 안색도안좋
으세요. 실연한사람처럼..”
집게로얼음통에서얼음을집어두영의잔에넣어주면서마담이말했다. 마담
의직감은무서우리만치정확한셈이다. 회사의문제는이미두영의손이닿지
않은 곳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혜와의 이혼은 이미 그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나마찬가지여서별다른심리적인타격을받지않았다. 이혼을받아들이는
두영의태도가그처럼담담할수있었던것은어느무엇보다춘화라는존재가있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춘화가 감쪽같이 증발해버렸다. 두영은 정신적 공황
에빠져버렸다. 그사이춘화와있었던일은어쩌면처음부터실체가없었던환
상이었다는생각이드는것이었다. 금방이라도춘화에게서전화가올것같아기
다린지벌써한달이지나간것이다.

“내가실연한사람처럼보여요.”
“네, 꼭실연한사람같네요. 이발도제대로안하시는가봐요.”
“그래요. 실연했어요.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고 두 사람에게 한꺼번에 말이
요.”
“정말이군요. 그럼제가대타가되면안될까요.”
“마담이말이요. 안되라는법도없지요. 오늘밤당장어때요?”
“아이구황송해라. 지금까지기다려왔는데이제겨우내차례가됐나봐.”
마담이호들갑스럽게웃었다. 듣기에따라두영의말은모욕적이었지만마담
은개의치않는다.
두영은단숨에술잔을비우고술잔을내밀며바텐더를다시불렀다. 바텐더가
병을들고다가와빈술잔에술을부었다. 기다리고있던영수가카페안으로들
어왔다. 두 사람은 조금 전 회사에서 구내전화로 카페 멕시코에서 만나기로 했
다. 같은회사에있으면서도좀처럼 잘만날수가없다. 회사가노사문제로시끄
럽다가금융감독원의감사이야기가나오면서회사의중견간부인두사람은더
더욱바빠졌다. 오늘은일부러두영이가영수에게먼저전화를걸었다.
‘이게누구세요. 우리강부장님은꼭이부장님이우리가게와야만나타난다
니까요. 어디혼자오면잡아먹는사람이있어요.”
“마담에게잡아먹힐까봐겁이나서못왔어요.”
영수가두영의옆자리에앉으며같은어투로응수한다.
“그러지말고자주놀러오세요. 나절대루강부장님안잡아먹어요. 이부장
님이라면 몰라도. 오늘 밤 우리 실연한 이 부장님을 내가 잡아먹기로 예약했어
요. 기다리고기다린보람이있었지뭐예요.”
영수가두영에게눈을끔벅거리며무슨말이냐고묻는다. 두영은거저웃기만
한다. 바텐더가다가와서영수에게술을주문받았다. 영수가두영의술잔을힐
긋 보고 스카치위스키를 달라고 한다. 술이 잔에 채워지는 것을 기다려 영수가
정색을하고마담을본다.

“마담우리이야기할것이있어서자리좀비켜주었으면좋겠는데.”
“어머! 그러세요. 두분비밀이야기가있으신모양인데그거어렵지않지요.”
마담이비틀거리며자리에서일어났다. 손님들자리에서주는대로한잔씩마
신게몸을제대로가누지못할정도로취한모양이다. 마담이멀어지는것을기
다려영수가입을열었다.
“이야기 들었어. 잘했어. 좀 뭐 한 이야기지만 너희 둘 처음부터 인연이 아니
었어. 이제어쩔작정이야?”
“어쩌긴.....”
“이런말하긴이르다는것알지만혼자살수는없쟎아?”
두영은대답대신술잔을입으로가져간다. 영수는두영에게여자가있다는것
을아직모른다. 더더구나망년회모임때식당에서음식시중을들던바로그여
자가두영의여자라는사실을전혀모른다.
“어떻게될것같애?”
“뭘말이야?”
이번에는두영이가묻고영수가반문한다.
“금감원말이야.”
“아, 그거. 글세나도 자세히는몰라. 그러나이번 일은심각한 것 같아. 그냥
넘어갈사안이아니라는거야. 이미금감원에서분식회계에대한확실한증거를
잡았다는거야.”
“이번정권에서밝힌거야?”
“그건아닌것같아. 그쪽의소식통을통해서알아본결과로는드러난것만으
로도그규모가몇조원대가넘는다는거야.”
“지난정권에서그냥넘어간것을새삼스럽게이정권에서문제삼는배경이
어디에 있지? 어떤 식으로든 재벌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본보기를 보여야 할 판
이었는데 부산에서 노사문제가 불거지면서 표적이 된 셈이지. 그 규모가 몇 조
원대가넘는다는소문도있어.”

두사람사이에잠시침묵이흘렸다. 예삿일이아니었다. 그것이사실이고정
부가본격적인조사를시작한다면그룹전체가무너지는것은기정사실이나다
름없었다. IMF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그룹은 살아남았다. 분배정의도 좋고
조세형편의원칙도좋지만그룹이망하면수만명의일자리가없어지고나라의
경제가휘청거리게될것이다. 그룹산하에중국심양으로공장설비를옮기기로
한공장말고도수만명의종업원을거느리고있는자회사가있다. 연쇄적인도
산을모면할수없을것이다. 군사독재정권시절의정경유착과주먹구구식족벌
경영이가져온폐해가엉뚱한서민들에게튈판이다.
두사람은모처럼짬을내서만났지만별다른이야기를나누지도못하고술만
마시다가헤어졌다. 그룹이도산하면하루아침에자신들도일자리를잃게되리
라는사실만확인한셈이었다. 당장거리에나앉지는않겠지만다시직장을구
하기에도어정쩡한나이였다.
그러나두영에게는그룹의존망이나직장을잃는일보다더급한것이춘화의
행방을찾는일이다. 춘화에게무슨일이생긴것이분명했다. 그렇지않고서야
이토록연락이없을수가없었다.
두영은 어쩌면 춘화 스스로가 종적을 감추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거가아주없는것은아니다. 지혜와의이혼이야기가나왔을때춘화는자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물론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충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든 춘화가 전화 한 통화 없이 연락을 딱 끊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없는일이다. 그보다춘화의신변에돌발적인어떤일이일어난쪽에무게를
두는것이현실적인판단일것같았다.
남구로 전철역에서 내린 두영은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번갈아 타고 도로를
가로지르는유리지붕이있는육교로올라왔다. 같은서울이지만처음와보는곳
이다. 사람들을 따라 육교를 건너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도로에 내려섰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 잠시 주춤거리는데 지나가는 사람들과 몸을 부딪쳤다.
길가로 한 걸음 비켜서서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를 보았다. 두영은 잠시 자신이

중국의어느거리에와있는듯한착각을느꼈다. 거리의모습이이색적이다. 몇
집건너있는들어선중국음식점의간판이모두붉은글씨다. 유리창에역시붉
은글자로적힌음식이름은간자체가많아서기호와같은느낌이다. 영등포의
구로동과가리봉동일대에외국인근로자들이, 특히중국과중국의조선족동포
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다는 신문보도를 읽긴 했지만 이처럼 거리 전체가 중국
거리로 변모해 있을 줄은 몰랐다. 두영은 천천히 길을 따라 걸으면서 지나가는
젊은여자들의얼굴을유심히살펴보았다. 두영은춘화가영등포의구로동에서
방을얻어자취를하고있다는것과신길동어딘가에서중국음식점을개업한했
다는사실을토대로직접춘화의행방을찾아나서기로한것이다.
퇴근시간무작정지하철종각역에서지하철에올랐고도중에1호선으로바꾸
어타고남구로역에서내렸다. 춘화에대해서아무것도알아두지못한것에대
해서새삼후회해도소용없는일이었다. 춘화를찾을수있는단서를 아무것도
가진것이없었다.
서울교외로놀러나갔을때찍은사진몇장이전부다.
두영은 며칠동안 구로동과 가리봉동, 그리고 신길동 일대의 중국음식점이란
음식점은모두다찾아다녔다. 그러나어느곳에도춘화의모습은발견되지않
았다. 그러다가한번은뒷모습이비슷한여자가길건너에서걸어가고있는것
을발견하고급한김에차도에뛰어들었다가하마터면차에치일번한일도있
었다.
넓은영등포일대에서춘화를찾는다는것은처음부터무모한일이었다. 찾는
것을 포기하려다가 하루만 더 찾아보겠다고 신길동을 누비고 다니다가 춘화가
경영하던 식당을 찾아냈다. 소용반점(笑容飯店)이라는 중국 음식점이었다. 배
가 고프고다리도아파점심을먹을양으로두리번거리는데큰길에서갈라지는
골목입구에한식집이눈에띠었다. 해장국이라도먹을셈으로골목길로들어섰
다가 골목길 더 안쪽에서 중국 음식점 간판을 보았다. 기왕이면 하는 생각으로
미닫이문을밀고들어섰다. 흰페인트칠이된실내는유리창에붉은중국글자로

크게써붙인음식이름외에아무장식도없었다. 여느중국음식점보다는사뭇
다른분위기였다. 주방맞은편쪽자리에대낮부터사내넷이술을마시고있었
다. 그들은이미상당히취한상태였다. 혀꼬부라진중국말과한국말을섞어서
떠들고있다가두영이들어오는것을일별했으나다시그들의대화에몰두했다.
식사시간이지나서인지그들밖에다른손님은없었다.
두영은그들과떨어진반대쪽자리로가서앉았다. 30대초반쯤으로보이는
여자가 물수건과기름에볶은땅콩, 무말랭이무침같은것이담긴플라스틱쟁
반을가져와서식탁위에놓았다. 아랫배가표나게부른것으로보아여자는임
신중인것같았다.
“뭘드시갔습니까?”
여자가물었다. 이북말투가섞여있는것으로봐서여자는조선족인것같았
다. 중국음식점이눈에띠어반사적으로이식당에들어왔지만딱히뭘먹겠다
는 생각으로들어온것은아니었다. 그러나시장했으므로뭐든지먹어야했다.
음식이름이모두생소해서어떤음식을시켜야할지몰랐다. 수교자(水餃子)라
고쓰인음식이름이우리의물만두라는것만알수있었다.
“물만두를한접시주십시오.”
그리고여자가돌아서기전에두영은서둘러주머니에서사진을꺼내들고여
자를불러세웠다.
“저좀물어볼게있는데요?”
여자가의아한시선으로두영의얼굴을처다보았다.
“혹시이사진의아가씨를보신적이없겠습니까? 이신길동어디선가중국조
선족동포들을상대로아주머니처럼중국음식점을한다고했는데요.”
처음에는 건성으로 사진을 들여다보던 여자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지면서 가
로채듯이사진을두영의손에서받아들었다. 그리고뚫어져라사진을처다보더
니이번에는두영의얼굴을민망하리만치빤히바라보았다. 두영은여자의표정
에서무언가알고있다는강렬한느낌을받았다. 그러자갑자기가슴이쿵쾅거리

면서호흡이가빠지는것을느끼며다급하게물었다.
“아주머니, 이아가씨를압니까?”
“아자씨는누굽네까?”
여자가의심이가득실린시선으로되물었다.
“저는이아가씨의애인되는사람입니다.”
얼결에나온말이었다. 조금은바보같은말이긴했으나사실이었고달리여자
에게자신과춘화의관계를설명할마땅한말이없기도하였다.
“정말입니까?”
“예, 제가이아가씨의애인이틀림없습니다. 아주머니이아가씨를아시면지
금이아가씨가어디에있는지좀알려주십시오. 사례는충분히하겠습니다.”
여자는자신의입만처다보고있는두영의시선에는아랑곳하지않고대신두
영의앞쪽에있는의자를끌어내덜퍼덕주저앉았다. 주방에서무슨일인가하고
이쪽으로처다보고있던주방장에게빠른중국말로물만두한접시를만들라고
한뒤다시두영의얼굴을처다보았다. 여자는자신앞에나타난남자가춘화가
말했던남자임이틀림없음을알았다. 어쩌면이남자가춘화를다시한국으로오
게할수있을지도모른다는생각을했다.
“춘화, 그아이지금중국에있어요.”
“네에?”
두영은 여자의 말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어 눈을 크게 뜨고 반문했
다.
“춘화, 그아이지금중국에있어요.”
여자가같은말을되풀이했다. 두영은춘화가갑자기무슨일로중국에갔다는
것인지알수없었다. 두영은여자의다음말을기다렸다. 여자가한심하다는듯
한표정으로말을이었다.
“갑자기불법체류자일제단속이나와강제로추방당한기야요.”
그렇다면? 춘화가조선족이라는것은말이되지않는다. 춘화는정확한서울

말씨를구사하고있지않았던가. 두영은무언가로호되게뒤통수를얻어맞은것
같이얼떨떨한기분이들었다. 그리고보니많은것이한꺼번에짚이는게있었
다. 춘화는자신의정체를베일속에감추어놓고두영에게드러내지않았다. 거
처는물론핸드폰의전화번호도알려주지않았고개업한식당의위치도알려주
지않았다. 이런일련의납득이잘되지않는일에도두영은다만춘화가아직도
완전히자신을신뢰하지못하는까닭이라고만생각했을뿐이다. 그러나춘화가
조선족이고불법체류자라면그간의일들에충분히이해가가는일이었다.
여자는춘화가자신과동향인하얼빈출신이라고했다. 자신은한국으로시집
을와서살고있으며자신의식당에음식을먹으러온춘화를만나알게되었다
고한다. 동향인데다가아가씨가착하고부지런해서무엇이든지도와주고싶었
는데 마침 여자가 임신을 하게 돼서 남편이 식당을 그만 두라는 바람에 식당을
춘화에게 넘겼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불법 체류자 일제단속에 걸려들어 자신의
입성도제대로챙기지못하고강제로추방당했다고했다.
두영은여자에게춘화의하얼빈집주소를알려달라고했으나자신도한국에
나와서춘화를만났기때문에확실한주소를모른다고했다. 다만하얼빈근교에
서나이많은부모가농사를짓고있다는이야기만들었다고했다. 두영은크게
낙담하여시켜놓은물만두도먹지않고일어서자보기가안되었든지여자는위
로의말을덧붙였다.
“너무실망하지마시라요. 춘화갸말이야요. 틀림없이밀항선을타고라도다
시돌아올테니두고보시라요. 그리고이렇게잘생긴애인이애타게찾고있는
데다시안오겠어요.”
두영은 춘화에게 소식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만에하나라도춘화가조선족일것이라고생각지못했던자신의우둔함을이제
아무리후회해도소용없었다. 날짜를꼽아보니공교롭게도춘화가불법체류자
단속에걸려든날짜가두영이미국으로간다음날이었고중국으로추방당한것
은귀국하루전날이었다.

북한은핵폭탄을보유함으로써자신들의체제가보장되리라는생각을가지고
있다. 핵폭탄을개발해서미국을바로공격은하지못할지라도미국이자신들을
무력으로공격하려고하면핵폭탄으로남한정부와일본을날려버리겠다고위협
함으로써자신들의체제를보장받겠다는속셈을드러내고있었다.
한편 정부는 어떻게든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보려고 눈물겹도록 그들의 비
위를맞추고있다. 급기야전쟁과굶주림이무엇인지도모르는젊은세대를충동
해서민족감정을부추겨반미감정을유발시키고때마침대통령선거와겹쳐지
면서소위지도자라는사람들이앞장서서반미구호를외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