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4호2004년 [소설-윤홍렬]逆風은 불어도 江물은 흐른다(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754회 작성일 05-03-26 10:53

본문

11
잘아는길이기도하지만점점높아지는아침해가불안하기도하여온몸에줄
줄흐르는땀을닦을염도없이부지런히걸었다. 걷는다기보다는거의뛰다시피
겅중걸음으로달렸다. 그래도다행인것은말복머리라논에나오는사람은별로
없는시기다. 장마도그친지가오래이니물꼬를보러나오는사람도없겠고피사
리나오는사람도있을법하지않은시기다. 마주치는눈길이있을것같지는않
지만그래도남의눈을피해야하는처지의김남철은여전히불안한심정에쫓기
는불안함은어쩔수가없다. 그저겅중걸음으로갈대숲을이리저리헤치고의
지하면서, 만일에있을지도모르는먼데눈이없을까를살피면서부지런히겅중
걸음으로달렸다.
항상즐기찬노력은염원하는목표에도달하게된다는것은진리인가보다. 먼
데눈을두려워하면서도부지런히걷다뛰다한보람으로샛강나루터가멀지않
은지점에다달은김남철은망설이고생각하고할여지도없이누님댁정면으로
다가설염두를못내고그집의뒷산인수리재로접어들었다. 누님이이샛강골
로시집온이후그러니까약이십년을바라보는세월사이, 지름길이라는이유에
서여러번넘어본산이다. 멀리서바라보면이산봉우리가마치독수리의머리
처럼생겼대서생긴이름이라는것도알고있는김남철은당연한순서인것처럼
수리재로달려들었다. 그다지높지않은산이었지만경사가조금가파르다. 오르
는사람에게는산다운산이었다. 김남철의호흡이상당히거칠어졌다. 웬만해선
작업을 멈추고 숨을 가다듬듬어본 기억이 없던 김남철이었지만 지금은 가쁜숨



을고르기위해잠깐씩걸음을멈추고서서심호흡을하는경우가몇차례있었다.
그리고계속빠른걸음으로더위잡아올랐다. 영마루에올라서자잔솔포기그늘
진곳을골라은신과땀을드리기로하면서겸하여누님네집도보이는곳을골라
앉았다. 우선은숨어있는경찰들이있지않을까하는염려도하면서조용히앉았
다. 수리재를등지고서쪽을바라보며앉아있는누님네집이김남철의우측아
래로내려다보인다. 여전히숨어있을지도모르느경찰이몹시마음에걸린다.
이제는해가중천에솟아오른완연한아침이다. 누님네집굴뚝에연기가나지
않는것으로보조반때도지난것같다.
“? ”
기석이가 외양간의 소를 끌어내어 나루터쪽으로 간다. 이 것은 이 집의 생활
습관이라는것을김남철은알고있다. 맹수가조심스러워밤에는들여매고낮에
는풀밭에내다맨다. 호랑이도가씀나타난다고하고곰이나삵쾡이들도어쩌다
가나타난다고한다. 그러나그것들이소를잡아갔다는말도없고또다른골짜
기에서도그런소문이전해온적도없단다. 그러나만일의경우에대비하여밤
에는 반드시 외양간에 들여 매고 낮이면 밖에 내다 맨다는 것을 김남철은 알고
있다. 이골짜기에닭은한마리도없다는것을알고있다. 지난날에닭을짐승들
에게빼았겼다는말이전해오기때문이란다.
기석이가소를끌고나가는행동에서엊저녁의소동이완전히갈아앉았음을
느꼈다. 그렇다면…김남철의궁금증은점점더깊어만간다. 매형이경찰들에게
끌려가는것을분명히봤는데…온집안이근심과절망에휩싸여비탄에빠져
있을법한데지금기석이가소를내매는행동에서는산골농가의평소생활그
것뿐이다. 기석이를불러보고싶은충동이굽이쳤지만여기서기석이가알아들
을 수있도록소리를지른다면이 골짜기에메아리가번질정도의큰소리라야한
다. 무엇보다제일궁금한것은매부의안부였지만그렇다고여기서큰소리를질
러물을수도없다. 우선은조용히숨어있을수밖에없다. 소리를질러기석이를
여기로불러올릴수도없다. 현재상황에어떤변화가올때까지는잠자코있어

야 한다. 그리고 이 자리를 함부로 떠서도 안 된다. 현재 까지는 안전하게 있는
것도다행이다. 침착하게좀더기다려보자. 이골짜기의동정을좀더자세히살
펴야한다. 참자. 기다리자를 거듭거듭 다짐한다. 소를 어디쯤에 매어 놨는지는
모르지만기석이가홀로집으로들어가는것이보였다.
조금전새벽에무산역개나리숲에서풋잠으로눈을잠깐붙였었을뿐인김남
철의 눈까풀이 자꾸만 내리 덮인다. 머릿속이 흐릿해진다. 지금 여기서 누어서
는안된다는생각에머리를흔들어몰려오는잠을물리치려고하지먼걷잡을수
없이몰려드는잠의기세는조금도꺽이지않는다. (여기서눈을감으면안되는
데…)라고거듭다짐을하지만그런데도눈은힘없이감기기만한다. 이어김남
철은그자리에슬며시쓰러졌다.
무슨꿈을꾼것같은데종잡을수는없다. 하여튼꿈을꾸다가문득잠이깨었
다. 이어지금자신이있는곳이수리재라는것도알았다. 무거운몸을힘들여추
스르며자리에서일어나앉았다. 그리고얼굴과가슴패기에주르르흐르는땀을
상의 앞자락을 끌어 올려 대강 문질렀다. 몃시쯤이나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자
신의머리위에서서성거리는해를흘깃보고는점심때쯤일거라고짐작한다. 시
장기와 갈증이 몰려 온다. 기석의 할아버지가 감로수라고 일컬으는 옹달샘물.
그집부엌에있는샘물이불현듯생각난다. 밥보다도그물이간절히생걱난다.
우선조용히기지개를켜고나서앉은채로사방을기웃거렸다. 별이상이없어보
인다. 자리는바꿔야겠다. 비켜간그늘을제쳐두고새로운그늘을찾아갔다. 막
막하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를 궁리하는 데 별다른 묘책이 없
다. 일단기석이를만날까도생각했지만거기까지가는것이불안하다. 그찰라
문득생각나는방책이있다. 봉바위골진씨아바이를찾아가야겠다는생각이다.
그렇게해서진씨의협력으로기석이를진씨네집에오가게하여자신의안부도
전하고매부의소식도알수있으리라는생걱이다. 가장믿을수있고정확한방
안이라고판단하였다. 그렇다면더기갈이심해지기전에봉바위골엘가야겠다
는생각에서부시시일어났다.

여기서봉바위골이십리라고는하지만김남철은평지의2십리길보다도더시
간이오래걸린다는것을알고있다. 또하나의우려는가다가맞은쪽에서오는
사람을만난다면, 지금의김남철의처지에서는경찰을만나기라도하는날이면
옴쭉달싹못하고잡히는길밖에없다는점이다. 그길에서는불행을피해뛸려
야뛸여지가없다. 실개천을끼고뚤린고샅길인데부분적으로는좌우측이모두
깎아세운듯한바위로뒤덮힌산길을한참씩가야하는곳도있기때문이다. 그
길말고는다른길이전연없다. 외길이다. 정히그길을피해달리가겠다면생
땅의생길뿐이다. 사람은고사하고산짐승들도다닌적이없을법한험산이다. 힘
이 든다는 정도가 아니고 거의 불가능 한 길이다. 어떡할까로 잠시 망설이다가
수리재의 능선을 타고 조심스럽게 걸으며 봉바위골로 향하였다. 고샅길이지만
진씨아바이가 다니는 길로 살펴 가는 도리 밖에 없다. 험하고 위험한 길이지만
지금당장엔그길밖에생각나는곳이없다. 만약에가다가경찰을만나기라도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런때는 그런 때의 상황대로 대응하리라는 생각
이다. 이판새판으로대응하리라는각오다. 그렇지만일부러경찰의눈에드러나
도록은할필요가없으니될수있는한조심은하여야한다고다짐한다. 별탈없
이나루터를지나봉바위골길로접어들었다. 우선은심한갈증을풀어야겠어서
길옆에흐르는개울물을두손으로떠서많이마셨다. 새삼생기가돋는것같다.
어차피들어선외통길일바에는빨리나가야하는것이위험에서벗어나는길이
라고생각하며시장한배를달래며부지런히걸었다.

12
낮에는진씨아바이네집뒤의봉바위옆의숲에서누었다일어났다를되풀이
하자니지루하고갑갑할수밖에없는그런생활을하자니진정괴로운생활이었
지만그래도그생활을벗어날길이없으니참고견디며지내는생활을하는지도
2주일이넘어간다. 그사이진씨가기석이네집엘드나들며두집의소식을적셔
주곤했다. 아니 김남철네 집 소식까지 세 집안의 소식이 비교적 소상하게 오고
갔다. 죽음의 문턱을 몇 고비씩 넘나들을 정도로 지천만의 매를 맞은 여선규가
석방되어김남철네집에서조리중인데진씨아바이가건네준곰의쓸개와곰의
기름의약발이좋아반신불수가될뻔한고비를넘겼다는소식과온몸에나타났
던멍과상처도곰의기름을발라거의완쾌가되어가고있다는소식은김남철
을제일반갑게하였다. 그리고청진앞바다에미국잠수함이우굴거린다는소식
은사뭇춤을추고싶을정도로반가운소식이었다.
“제발 일본이 빨리 망해라. 오까모도와 지천만의 모가지는 내가 비틀어 버릴
것이다.”
김남철은하루에도몇차례씩두주먹을불끈쥐고부르르떨곤하였다. 그러던
어느날‘외삼촌’을연호하며가뿐숨을헐떡이며봉바위로다가오는기석이형제
를보는순간김남철은펄쩍뛸정도의환희를느꼈다. 나는새도피하고싶을정
도로조심스럽게숨어있는김남철을저렇게큰소리로부른다는것은김남철의
주변에둘러쳐졌던모든장막이완전히걷혀졌다는신호라고깨달은것이다. 이
어진씨의고함도들렸다.
“남철이! 이제사마음놓고내려옵세. 일본놈들이망했닥합메.”
진씨네집에서봉바위가조금사이가떨어진거리다. 어지간한고성으로는그
소리의내용을분간하기가쉽지않을정도인데이제진씨의고함은그뜻이분명
하게들렸다. 벅찬감동을전하고자온갖힘을다하여부르짖는것같다. 진씨의
고함이 아니라도 봉바우에 숨어있는 자신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달려오는
여기석형제의태도에서김남철은일본의패망을대뜸감지하였다. 청진앞바다

에 미국잠수함이우글거린다는소식에서도일본의명줄이얼마남지않았음을
짐작했는데그시기가완전히다가온것이라고거듭거듭판단한긴남철은화닥
닥일어나며여기석의음성이오는쪽을향하여맞고함을질렀다.
“알았다이. 오르지맙세. 내가가겠음”
기석과재석형재가오르는모습이보였다. 김남철은그들을향하여겅중겅중
뛰었다. 산 비탈에서 여기석 형제를 만난 김남철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의 손을
덤썩 감싸잡고 펄펄뛰면서 힘차게 흔들었다. 홀가분하다는 것이 이런것인가를
실감하였고통쾌하다는것이이런것인가를실감하였다. 일체의근심과걱정이
사라진, 오로지기쁨에겨워길길이뛰어오르고싶은벅찬감동과흥분으로날아
갈것같은기쁨을이기지못해그저껄껄대고웃으며진씨네집엘들르는데그
곳에지금마악도착하는아내손명숙까지만나자김남철은실제로겅충겅충뛰
었다. 그지긋지긋한일본의압제애서벗어난감동스러운소식을일각이라도빨
리남편에게전달하기위해여기석여재석형제를떠나보낸손명숙은그들만보
낸것을후회하였다. 완전한자유의몸이된남편을한시바삐보고싶었다. 그리
고 남편의 기뻐서 펄펄뛰는 모습을 시각을 다퉈 빨리 보고 싶어 기석이 형제를
떠나보낸바로뒤미쳐손명숙도남편을맞으러샛강골을거쳐봉바위골로온것
이다. 남편의수척해진모습을보자손명숙은눈물을펑펑쏟으며남편을얼싸안
았다. 아내의 눈물을 보자 김남철의 눈에서도 순식간에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러면서아내의얼굴에흐르는눈물을두손으로문지르며위로했다.
“우지맙세. 어저능우리시상아이겠음! 웃기요. 웃읍세. 우지맙세”
온무산시내가벌컥뒤집히다시피시민들이몰려나와‘조선독립만세’를부
르고있다는소식을들은김남철과진씨와기석형재들, 진씨네부부도함께‘조
선독립만세’를수없이되풀이하여부르고진씨네가족들과함께샛강골에잠시
들렀다. 그들은기석의조부모들과어울려또여러차례‘조선독립만세’를불렀
다. 그리고그들전원이무산읍으로내달렸다. 기석의조부모들은며칠전에도
아들을보고왔지만그모진매를맞고저세상의문턱을수없이넘나들었다는아

들, 진씨의덕으로좋은약을빨리쓴덕분으로이제는생기를찾았다는아들을
또 빨리 보고 싶었다. 그리고‘조선독립’의 기쁨에 감격하고 있을 아들을 빨리
보고싶어서였다.
무산읍은 완전히‘조선독립’의 함성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산고보(茂山高普)
학생들의 군악대가 그 어느때보다도 우렁차고 흥겨운 가락을 뿌리며 시가지를
누비고있다. 그군악대뒤에는역시무산고보학생들의대열이따르는데그뒤
에는무산여고학생들이벼락치기로만든조그마한태극기를하나씩들고휘져
으며‘조선독립만세’를 소리높여 외쳐댄다. 그 군악대가 뿌리는 양산도와 방아
타령천안삼거리노들강변가락에맞춰남녀시민들은덩실덩실춤을추며학생
들과함께시가행진을하는모습을보자기석의조부모도김남철부부도진씨내
부부도감동의눈물을줄줄흘리며시민들대오에합류하였다. 그리고“조선독
립만세”를목청껏외쳐댔다. 그뒤를이어무산소학교남녀학생들도태극기를
들고만세를열창하며행진을한다. 또다른거리에서는농악대가선두에서고수
많은시민들이그뒤를따르며소리높여‘조선독립만세’를연호한다. 그리고보
니모든점포들이가게문을닫고거리로뛰쳐나와만세대열에합류하고있다는
것을알수있었다. 시가행진으로한바퀴돌고난김남철은매부도흥분의도가니
에합류는못한다할지라도이벅찬감동스러운장면을보게는하리라고집으로
가려는데누군가의고함소리가들렸다.
“여서기가나왔다.”
군중들의시선이쏠리는곳을보니여선규가작대기를집고아내의몸에많이
의지한채로군중들틈에서있는보습을발견했다.
“매부여”
고함을지르며김남철이달려갔다. 그들세사람들은서로를부등켜암고감격
의눈물을줄줄흘렸다. 한동안울고난그들이잠시뜸을드리려는데누군가가,
누구에게라는것도없이물었다.
“오늘이며칠야?”

여선규가조용히일깨워준다.
“오늘이단기4278년8월15입메”
김남철이보니시장에서반찬가게를하는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