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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수필-서미숙]속초 여자로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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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871회 작성일 05-03-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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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내리던비가아침이되자서서히그쳐뿌연하늘이되었다.
아침나절안개사이로보이는설악산은언어로표현할수없을만큼아름답다.
그아름다움에취해하늘을바라다보면친정부모님이생각난다.
아들이없는아버지는며느리를못보신당신의신세를늘한탄하셨고, 그속
에 자란 나는 이다음 크면 꼭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노라고 다짐했었다.
그런데서울이싫다고남편의발령을핑계삼아이곳속초로떠나왔다.
바다와산이아름다운동네에서살면서뭐가그리힘이드는지아들노릇하고
살겠노라고약속했던세월을무심히흘려버리고우리네식구살기도바빠허우
적거린다.
요즘은 어릴 적집이 자꾸 꿈속에서 나타나 그 마당에서 놀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우리집은아버지가손수지으신집이라서마당이넓었다. 그마당한장독대에
는숯과붉은고추가둥둥떠있는간장항아리와뚜껑이없어양푼으로덮어놓
은고추장, 된장항아리가있었다.
소낙비라도후두둑떨어지는날이면장독대뚜껑을닫아야하는데내하얀블
라우스를먼저걷다가엄마한테혼난기억도난다.
속초에와서난단독주택을얻었다. 처음낯선곳에이사오던날시골이고바
닷가라는것에즐거웠고들뜬마음도있었다.
그러나웬걸와보니너무나시골집이었다. 화장실도마당에멀리있어밤이면
아이들을다데리고가야했고, 더구나비가오면우산을쓰고아이둘과종종걸

음을걸으며화장실에다들어가서로빨리볼일을보라며성화를치고, 마당은
너무어두워무섭기그지없었다. 담은왜그리낮아도둑이라도훌쩍뛰어넘을
것같아더무서웠었다. 나중에제부가와서마당에서울의가로등같은커다란
등을달아주고가서살것같아한시름을놨다. 또어디든외출을하려면방마다
문을걸어잠그고확인해야만마음이놓였다.
그러다1년이지나면서우린아예현관문도안잠그고열쇠도다어디로갔는
지기억도없이살게되었지만…
바닷바람과강한햇볕에얼굴이많이타서울로나들이를가면시골사람이다
되었다고시누가놀려정말인가하여거울을하루종일드려다보기도했다.
아이들도학교에가서어느새속초사투리를배워서로~간나야하면서싸울
땐우습기도했고기막힘도있었다.
그러나맨땅이밟히는마당한구석에는상추도심고, 작은방울토마토로심었
다. 아침이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그이도 출근을 하면 나만의 시간을
갖기위해헤즐럿커피한잔에내가제일좋아하는차이코프스키의백조의호수
를마당이다울리도록틀어놓고라일락향기를맡으면서나만의시간을갖는행
복도있었다.
목련잎이떨어진마당을언제다쓰나고민도하고비오는날이면빗물로땅
속에홈이생겨그고인빗물을손가락으로튕겨가며딸아이랑등이흠뻑젖어
도즐거웠던시간들.
그해겨울이사와서첫눈을맞았다. 마당가득쌓인엄청많은눈.
백색가루로온통뒤덮힌세상은눈이부셨다.
아이들도마당에서이리뛰고저리뛰고신이났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 언제 이렇게 왔을까? 밖으로 나가려고 대문을 밀
었더니대문이열리지않았다.
“문이안열려어떡하지?”
“애들아, 문이안열린다. “엄마어떡해?”

아이들과셋이힘껏밀었다.
“꽈당팡~”
대문이밖으로나가떨어지더니부서져버렸다. 우리는대문이부서진것은아
랑곳하지않고아이들은마당에서난거리에서신이났다. 골목으로허우적거리
면서나갔다. 동네어르신들이손에, 손에싸리나무로만든빗자루를들고나와
골목을쓸고계셨다. 나도서울서쓰던플라스틱마당빗자루를들고나갔다.
“그빗자루로뭘쓸려고눈구경이나해.”
난 머쓱해져서 도로 들어갔다. 동네 어르신들이 다들 웃었다. 부서진 대문을
고쳐준다고어르신한분이망치를들고나왔다.
“정말눈이많이왔어요. 전처음봐요. 너무아름다워요. 꿈같아요.”
“그래젊은새댁살아봐라. 매일눈이와도좋은지한번살아봐라.”
옆에서할머니한분이중얼거린다. 그때는도대체무슨말씀인지이해를할
수 없었다. 마당에 쌓인 눈 속에서 아이들과 눈사람도 만들고, 여기 푹 저기 푹
빠져도보고신이났다. 부서진대문은말짱히고쳐졌다. 그렇게한나절을끼니
도거르고눈과놀다보니저녁이되었다. 남편이부랴부랴뛰어들어왔다. 부지
런히눈을치운다. 어디서찾았는지싸리비를갖고오고커다란삽도갖고와해
지기전에눈을치워야된다고했다.
“왜눈을치워?”
물어보았다나를빤히보더니
“이바보야그럼이눈을그냥두고얼음위에서걸어다닐래? 어서너도거들
어빨리치워야해알았어.”
아깝긴했지만마당의흙이드러나도록신나서눈을치웠다.
그다음날아침에눈을뜨니온삭신이아팠다. 못일어날것같았다. 얼마나
잤는지일어나집을치우고저녁을하려하니갑자기물이나오질않는다. 졸졸
나오더니아예그것마저도나오지않았다.
“점심은저녁은무엇으로하지?”

갑자기폭설로수도파이프가터졌단다. 온동네가물이나오지않았다.
생수를잔뜩사와겨우밥을해먹고그릇은있는대로꺼내써서설거지는가
득쌓이기만했다.
시청수도과에전화를했다. 왜물이안나오죠? 갑작스런폭설로수도파이프
가터졌으니공사를할때까지기다리란다.
“소방차라도보내서비상물을주세요”
‘오늘하루만어떻게견디어주십시오. 방법이없습니다.’라는대답만반복하
고있었다.
서울처럼찾아가서따지고해결책을당장해놓으라는한다해서해결되지않
는것이이곳시골의특성이라는것도이곳에살면서알게되었다.
갑자기어두컴컴해졌다. 전기도나갔다. 이건또뭐야. 보일러를전기로돌리
는데전기가나가면어쩌라고난감했다.
그 날 저녁은 이불을 있는 대로 꺼내어 온 식구가 붙어 덜덜 떨면서 잤다.
아침에눈을떠수도를틀었다. 여전히물은나오지않았다. 그렇게하루가지
났다. 참을 수 가 없어서 시청에다 전화를 다시 했다. 또 다시 시청에다 난리를
떨고소방차가오고부랴부랴물받아서썼다. 그다음날부터물도나오고모든
것이정상적인생활이되었다. 거리는온통얼음바닥으로미끄러워모두들꼼짝
을못하고있다. 그러나그생각하기도싫은몇일보다야낫지하고못잔잠이
나실컷자보려고안방에들어가누웠다. 막잠이들려고하는순간벼락치는소
리가지붕에서들렸다우지직무엇이부서지는소리도들리고뭔일인가싶어나
가보니하늘은푸르기만하고, 웬벼락인가좀무섭다는생각이들었지만다시
잠을청했다. 한참있다보니또소리가들렸다.
어두운 밤이 되고 기온이 내려가니 벼락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지붕이새고거실이난리가났다. 어제그벼락으로기왓장이부서졌다. 맑
은하늘에날벼락이다. 이렇게하늘이맑은데벼락이라니이상도하다며마당에
빨래를 널고 뒤돌아보는 순간 또 벼락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이상스러워 소리

나는곳으로달려가보았다. 뒷마당에서나는소리였다. 세상에우리집지붕위
로윗집지붕에서눈덩어리가떨어지는소리가아닌가그집은우리집위에지
붕을겹치게콘테이너박스로만든가게가딸린집이었다. 그집지붕에쌓인눈
이얼고기온이올라가면녹으면서우리지붕과뒷마당에떨어지는소리였다.
이곳속초는눈이겨울보다이른봄에더많이온다. 다른곳은12월크리스
마스 전후로 그리고 다음해 1월까지 많이 오는데, 여기 속초는 오히려 2월이나
3월늦으면4월에도온다. 그때의눈은거의폭설로이어지기때문에모든교통
수단에비상이걸린다.
처음 이곳에 이사 와서 나는 몸이 좋질 않아 간단한 수술을 받으려고 서울로
병원예약을한적이있었다. 그러나그눈때문에비행기결항에온교통수단이
마비되어두달걸려예약해놓은병원을여러번에걸쳐겨우갔고서울서속초
로못와서우리둘째녀석3월입학식도못갔었다. 그것때문에철모르는아들
녀석은엄마만원망한적도있다.
그덕에멀리속초에서왔다고원장님이진료비는빼줬다.
설악산을끼고있는지형학적영향탓에눈도많이오는곳이다. 한번오면상
당히많은눈이오기에설악이눈이잠길때면그장관은이루말할수없이아름
답다. 하지만속초에사는사람들은힘겨울때가많았다. 그건어느도시건마찬
가지일테지만유독여기속초는더하다.
첫이사를와서뒤늦게온눈이너무좋아서날뛰고날벼락을맞아, 죽도록고
생을한속초의첫겨울을나는결코잊지못할것이다.
너무도많은불편함을느끼면서도그하얀폭설이설악을가득덮을땐왜그
렇게좋은걸까?
난눈이오면설악에눈구경을간다.
온통도시가눈꽃밭이다. 밤새도록검은색도화지에안개꽃이뿌려지듯흰색
으로덮은도시, 오늘도대충서둘러집안을정리하고거리로나온다. 거리는온
통반짝반짝불투명유리빛으로반사되어눈이시리도록부시다. 아침일찍부터

서둘러설악산을향했다. 나무에핀눈꽃을구경하기위해다들체인도치고미
끄러운눈길을바닷게기어가듯거슬러올라간다. 덜덜덜....
불투명유리가루를뿌려놓은듯한아슬아슬한길, 나무마다가득가득나뭇가
지가휘어지듯쌓인눈꽃들은가지가부러질듯말듯그찰라에고무줄튕겨지
듯이떨어진다.
정말아름다운도시다.
누군가이속초에살수있다는것은선택받은사람만이살수있는특권이라
고했다.
지금은처음이사왔을때의정겨웠던시골스러움이많이없어지고점점도시
화되고있지만, 그래도서울같지않는부분들이아직은많이남아있다.
8년이란세월을살면서많은눈물도쌓았고, 서울의친정식구들이보고싶어
그리움에날밤을새운적도많다. 요즘길가의낙엽이무수히떨어질때면서울
도회지의 회색빌딩들과 네온싸인의 그 현란한 불빛들이 자꾸 그리워져 서울로
만가고싶어진다.
힘겨운생활고에모든것을포기하고이곳을떠나고싶은생각도들었었다.
그러나이아름다운도시속에내슬픔만묻어두고떠나면다시이곳을찾을
수없을것같아아직까지이렇게버티고있는지도모른다.
한번씩서울을다녀오면향수병같은것에시달린다.
보고픈친구들과도시의화려함을뒤로하고고속버스를타고집으로내려올
때면후회도많이도한다. 속초가가까워지면바다를보면가슴이탁트이는것
이아니라가슴이탁탁막혀옴을느끼지만그래도어쩔수없이나는또다른생
활이기다리고있는제2의고향으로돌아온다.
여름이면많은인파로작은도시속에서서울을볼수있고가을이면낙엽이
쌓인덕수궁돌담길을걷던기억을설악의가을단풍으로더아름답게느끼고있
기때문이다. 여긴작은도시이고지역사회의많은단점을안고살아가기도하지
만그래도난속초가좋아이곳을떠나지못한다고이야기하고산다.

그리고지금은어디서든나를기억해주는사람들도많아지고모임도많아생
활에활력이넘쳐많은사람들과어우러지며속초로여자로거듭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