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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호2008년 [시-김충만] 가뭄과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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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21회 작성일 09-02-06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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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과 힘

오이덩굴이 늘어지는가 싶더니
손바닥 같던 가지 잎이 오그라지기 시작했고
세상구경 한지 얼마 안 된 열무는
바닥에 엎드려 혓바닥을 내밀더군.
밭 구석의 도라지가 입을 앙다물고
아직은 참을만하다 하고
밭두렁의 옥수수만이 깊이 박은 뿌리 덕에
잘 버티고 있다네.
가뭄 든 텃밭에서
가지각색 저들의 진지한 표정을 읽어나가다가
마른 모래알에서 멀어져 가는 작은 물기
그것을 움켜잡기 위한 실뿌리들의 움직임과
호흡 소리를 들었다네.
링거 팩에서 규칙적으로 떨어지는 무색의 힘
그것을 빨아들이기 위해
죽을 힘으로 곤두섰던 당신의 혈관처럼
가뭄 밭에 몇 개의 힘줄이 불끈거렸네.
가뭄 든 텃밭 한 자락 지닌 사람은
세상은 별처럼 멀지 않고
타들어 가는 맑은 눈은 노을을 닮지 않았네.
당신 가슴에 심겨진 작은 잎들에게
오늘은 힘이 되는 눈길을 보내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