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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수필-이은자]훈이 장가 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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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664회 작성일 05-03-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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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방앗간집할머니는이른아침부터수다가여간아니다. “훈이오늘장가간
다네”아들이 자라서 장가드는 일은 어느 집에서나 있는 일이고 훈이는 당신의
손자도아닌데싱글벙글이다. 그만큼훈이는우리동네에선특별한아이였기때
문이다.
내가게는마을초입에자리하고있었다. 한가족중남녀노소가리지않고모
두가이용하는곳이었다. 마을대합실이고싸롱이고, 짐보관소이고아동보호
소로도한몫하였다. 우리마을은북한산보현봉바로아랫마을이다. 산을등에
업고지어진집들이라대개가3층이거실되고1·2층은지하방이된다. 지형적
인특색으로그지하방에도채광엔전혀문제가없다. 교통수단은거의자가용
에의존하지만낮동안엔마을버스가삼십분간격으로산자락을돌며아이와노
인들을실어나른다. 한번마을로내려왔다가다시집에가서무얼챙겨오기란여
간번거로운일아니다. 그럴때에내가게가있어편리하다. 귀가시간이조금씩
다른 가족들이 그 시간을 맞추는 장소, 다른 마을에서 친지를 찾아온 나그네가
기다리는장소, 여기저기장을보고무거운짐을한데모아가는곳, 장을보다가
돈이모자라면빌려갈수도있는집이었다. 해마다입시철엔길건너예고에실
기수험생들이긴차레기다리는동안언손을녹이던집이어서자랑스러웠다.
현대인들은너무많은역할탓인가, 젊은엄마들간에건망증때문에곤혹스러
워하는사람이많다. 내가게에서손님들끼리주고받는이야기엔정말심각한
사건들이있었다. 듣는사람이배꼽잡고웃을수밖에없는일이,본인에겐우울
증까지들먹이는사안들이다. 사람들은그어떤어려움을당면하게되면자기혼

자만이그런처지에놓인것같아서부끄러워지고마침내의기소침해진다. 남
들도같은고통을,누군가함께겪는다고생각하면위로가되고그절망에서헤어
나는것을보게된다. 나는서로간사례를적라나하게털어놓으므로써피차도
움을얻게할생각에서반은농담쪼로“어데누가더감동적인지콘테스트해보
는게어떨까요?”참으로눈물나게웃기는사건들이쏟아져나왔다. 끝내우열을
가리지못했던사건세가지를나는기억하고있다.
정릉사는K엄마는곧장가보낼아들예물로쓰고자미국에다녀오는친구에
게다이아몬드알한세트을사오라부탁한일이있다. 돈암동그친구가기별을
해서초저녁에집을나섰다. 미국여행이야기며, 그곳가족들안부를전해듣기
도하고, 깨끗하게보이는물건인데값도만족스러워아주흡족한걸음으로집에
왔다. 밤이 늦었다 싶어 잠자리에 들려는 그때, 식당방에서 콜록콜록 가정부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아, 내정신좀봐. 네약사왔지. 근데약봉지어데놨더
라?”
K엄마는 등골이 오싹 했다. 택시? 약방? 돈암동 친구집? … … 그럼 다이야
는?
그는시계를보았지만자정이가깝고순간눈앞이아득해서침실로가서누눴
다. 기침소리를못들었다면그밤을흡족한기분으로잘잤을것이다.
사람들은 기백만원의 실물(失物)이 안타까워 그가 챔피온이라 했다. 그런데
도전자가생겼다.
세검정G엄마다. 그는사회적으로출입이많은사람이다. 한주에두번은내
가게에들르는데,별이유없이여러날오지않았다. 멀리출타하게되더라도준
비차더오는사람이다. 소문으로듣자니그가입원중이라는것이다. 석달쯤지
나서어느날그가핼쓱한얼굴로머리는덥수룩하니가게에들어섰다. “죽을뻔
했다.”로 시작하는 그의 사연. 집수리 하던 중 마지막 날이었다. 일꾼들이 점심
을먹느라자리를뜬사이,그는누워서천정을올려다보았다. 오전에마무리한
천정 테두리 칠이 마음에 들어서 흡족했다. 그러다가 한 귀퉁이에 약 30cm쯤

칠이 건너 뛴 것을 발견했다. 그까것 가지고 사람 다시 부르랴, 자기가 해도 될
것같앗다. 그는식탁의자를그밑에가져다놓고, 도색공들이놓아둔붓을니
스 통에 찍어서 들고 손을 뻗었으나 닿지 못했다. 자기 키가 워낙 작다는 걸 알
고, 옆에있던도배용삼단사다리를끌어다한계단, 한계단올라가서소기의목
적을다이루었다.
“다됐다. 이렇게간단히해치울수있는것을.”그는자기가대견해서중얼거
리며한발뒤로땅에내려섰다. 그순간발이허공에내려지며천지가헝크러지
고정신을놓았다. 깨고보니병원이었다. 척추꼬리뼈에금갔고석달간병원침
대에꼼짝못하고누워있었다. 그는의자를딛고올라선것은생각하고있었는
데, 곧사다리로바꾸어세계단더올라간행동을깜박한것이다. 의자라면마땅
이한발짝이다. 그는머리다치지않은것만은하늘이도운일이라며감사했다.
다이아몬드 보다는 생명이 우선이라 G엄마 사건으로 챔피언이 갱신 됐다.
그해연말에또다른도전자가생겼다.
훈이는베이비붐세대다. 대입경쟁이사상최대치를보이던그시절에훈이는
Y대학에합격했다. 모교에선물론마을에서도경사라했다. 훈이는합격통지서,
등록금명세서등을제엄마에게일임하고일주일간친구들같이입시지옥해방
여행을 떠났다. 훈이가 돌아온 날, 집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등록금
고지서, 입학준비제반서류가엄마핸드백속에그대로고스란히있었다. 지금
은어떤가모르지만, 그시절학교들은3일이내에등록절차를마치지않을경우
<입학 의사 없음>이란 단서를 인정하고,곧 차점자 명단에서 차레 대로 기회를
준다. 촉각을세우고기다리던대기자는지체않고그천행의기회를잡는다. 훈
이는두말할나위없이낙방이었다. 참으로아쉽고어이없는낙방이지만일년간
재수하기로했다. 날로가중되는입시경쟁, 재수가꼭성공하리란보장은없다.
고시원이건입시학원이건소위명문대를꿈꾸는3수생, 5수생들로가득하다.
학교에선못느낀적수들이사면에포진한것이주눅이들게한다. 이듬해훈이

는안전지원으로H대학에합격했다. 훈이를아는많은엄마들이축하한다면서
끝에다가쯧쯧…. 그런일로동네사람들이훈이에게관심을가졌다.
훈이졸업이래. 훈이군대간대. 훈이제대래. 훈이장가간다네….
입시생이 상전이던 시절,엄마 때문에 명문대를 놓친 아들의 이야기. 자기 실
수로아들앞길망친(?) 어처구니없는심정이된엄마의이야기는단연챔피온
감이라고들 했다. 무엇을 전공 했나? 무엇에 소질이 있나? 따위가 아니라 어느
대학나왔냐가한인간의일생을관통하는기득권획득의수단으로치부되는현
실에서, 그엄마의실수는어떻게용서받을수있었을까?
아이러니하게도당시훈이아버지는모은행지점장이었다. 훈이엄마는누구
에게 뒤지지 않을 판단력, 야무짐, 똑 소리 나는 여인에다 그 정도의 돈 여유는
있는집이다.
나같았어도혹여날짜안에등록금을못낼까노심초사그런일은없었을것
같다. 훈이네가족들에게우리가알수없는그무엇이있었다. 그날의일로훈이
는제엄마에게아무런뗑깡을부리지않았다는사실, 그엄마는전혀주눅들지
않고여상하다는후일담들이다.
당사자들에겐엄청난사건들이, 제삼자에게는각기자기의가치관이나현재
의절실함에따라그등위가매겨진다는사실도우리는챔피언을골르면서공감
했다. 그리고훈이네처럼가족한사람의엄청난실수를그렇게수용하는집을
보았다. 그집이돈이있어서일까? 그것만은아니라생각한다. 인간관계속에
서가장기댈대상이혈육이고가족인것만큼, 가장큰상처와아픔도가족에게
서온다. 훈이네같은신뢰와사랑의가족이많으면, 우리가사는세상도나날이
따스해지지않을까?
훈이화이팅
건망증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