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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수필-노금희] 화장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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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823회 작성일 09-12-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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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어느 핸가 오월, 한창 꽃이 만발할 때 아이 데리고 오대산 근처의 한국자생식물원에 갔다.
어디를 가던 외출하면 그곳의 화장실은 꼭 한 번 들르게 되는데 그곳에서 화장실을 찾아보니 화장실 표지판이 아주 걸작이다.
화장실을 가리키는 화살표 옆에는 그 흔한 남녀그림으로 되어있지 않고 자생식물원 화장실답게 여자화장실은 분홍색 고운 금낭화꽃 사진으로,
남자화장실은 그 이름이 천박하다하여 복주머니난으로도 불리는 개불알꽃사진으로 예쁘게 단장해 놓았다.
남녀를 구분 짓는 색깔이 있는 것은 아니나 화장실의 느낌을 색과 형상으로 아주 잘 표현한 화장실이라 두고두고 재미있던 화장실로 기억된다.
벌써 여러 해가 지났으니 지금은 화장실 표지판의 꽃 사진이 많이 바래있을까?
아님, 여전히 피고 지는 식물원의 고운 그 꽃들로 무한 리필 되고있을까?


두울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 속초시내 한복판에 <다랑>이라는 찻집이 있다. 내가 이곳을 알게 된 것이 스무 살 때 즈음,
문학동호인들이 시낭송을 한다고 해서 처음 인연을 맺은 곳이다. 그러니 그 이전부터라 치면 족히 20년은 넘지 않았을까?
올라가는 계단도 어렸을 때 보던 나무계단이라 그 발자국 소리도 정겹다. 주인만 서너 번 정도 바뀐 거 같기는 하지만,
같은 상호로 같은 자리에서 이렇게 오래도록 버티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겨울이면 난로 위 커다란 주전자에 여러 약재를 넣은 차가 수증기를 뿜으며 끓고, 언제든 수시로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모임도 <다랑>에서 아주 편안한 관계로 익어갔다.
식사메뉴는 간단한 몇 가지 중 김치볶음밥이 참 압권이었다.
설악산 집마당에 묻어둔 김치를 꺼내와 김치에 맨밥만 먹어도 맛있어 주인 눈치를보면서 계속 더 주문하기도 했으니…
지금도 그 김치볶음밥으로 손님을 맞고 있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먹고, 마시고, 쌓인 것을 내려놓기 위해 화장실에 가면 다른 집에서 볼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화장실이 남녀 구분 없이 세면대와 변기 하나가 있는데, 안에서 문을 걸고 앉아있다 밖에서 노크하면 볼 일을 보다가 일어나서
안에 사람이 있다고 노크를 해야 할 거리이다. 그러다 보니 주인장은 벨을 설치해서 밖에서 노크하면‘딩동’하고 벨을 누르도록 한 것이다.
나도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호기심에 밖에서 노크가 없어도 벨을 한번 꾸욱눌러보고,‘ 딩동’소리에혼자후후웃어보기도했다.
그리고화장실입구에주인장이붙여둔매력적인문구,『 당신이화장실에서 사색(思索)에 잠길 때,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사색(死色)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