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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수필-이은자]동행 (同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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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4,834회 작성일 05-03-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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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나는또숨을작정이다. 어제도그제도이런식으로그분을따돌리는
것이너무한다싶지만, 아직그방법밖엔생각해낼수없으니어쩔수없다. 남
편은아르바이트로저녁7시30분이면출근한다. 그이가나가면나는곧장전등
을모조리끈다. 우리아파트는복도식이고내방은복도와벽하나사이에있다.
캄캄한집안내방에서CD를얹고누웠거나, 카세트테잎을틀어서내귀도가
려버린다.
그 분이 내 집 창을 조심스레 두드리거나 출입문 손잡이를 약간 틀었다 놓는
소리를들으면나는더이상버티지못하고말기때문에, 독하게마음먹고이런
방법을쓴다. 불끄기를10분만더디해도그가앞질러들어닥친다. ‘바하의첼
로’는몸과마음을풀어놓게하고, ‘하이든의오라토리오천지창조’는일상의잡
다한우수사려에서벗어나형이상학의세계를헤엄치게한다. 그러다보면시간
은밤10시에이른다. 그제야나는술래를따돌린아이처럼내방에다시불을켠
다. 다음날아침엔어김없이그분은내게전화를넣거나현관벨을누른다.
<어제밤에어델댕게온거여?>
내가노인을처음본것이재작년봄이고인사를튼것은그가을어느날오후
였다. 쥐방울만한노인이비닐주머니에자기만치나늙은호박한개를담아들
고아파트계단을힘겹게오르고있었다. 늘하던대로몇걸음마다쪼그리고앉
아기침을고르고쉬었다가다시걷곤하였다. 나는그의행보에맞추어뒤따라
걷다가손을내밀어그짐을건네쥐었다. 노인은나를올려다보더니면식이있
는터라순순이내손에그걸맡기고또한차례숨을몰아쉬며목례를했다.

–늙으면메뚜기도짐된다했던가! ?
그후로도몇차례오가는길에노인의짐을들어다성큼앞질러그의문앞에
놓아주곤했다. 무서리가내리고TV에서첫눈소식을보도하던날그가비로소
내게, 밭에 무우걷이를 도와달라 했다. 김장 무우를 그냥 얼릴 수가 없다고, 딸
과손자들이오기로했지만날씨가다급해서못기다리겠다고. 노인은빈비료부
대에풀석앉은자세로무우한개뽑는데온힘을다했다.
–나이란이런것이다.
그에비하면나는어쩌니저쩌니해도청년이다. 청이30cm 넘는무우를선
채로쓱쓱뽑는다. 청을잘라단을묶고알무우는자루에담는다. 무우자루다섯
개를끌어다한자리에모아놓고풍을씌운뒤돌로눌러놓는다. 내가하는일을
흡족해바라보던노인이다덮은풍을헤집더니그중한자루를나더러가져가
란다. 뜻밖이다. 잠깐의내수고가노인이기울였을그간의수고에비길바아니
겠고무우한자루에해당될것같지도않아서사양했다. 거듭하는권유를뿌리
치면정없고, 동치미감으로무우다섯개와청한단을받았다. 그일이있고부
터나는가끔노인이혼자사는집안으로드나들었다. 입동이닥치고산촌에눈
이내리면인적이드믄날들이이어진다.
노인이몹시아프던날, 깔개를털어주고손톱을깍아주고발톱도깍으려하자
급구 사양이다. 그럴수는 없노라고. 기력이 딸리고 눈은 어두워도 염치와 자존
심남아있는노인을더이상우겨댈수는없었다.
노인은 자기집 출입문을 항상 잠그지 않고 지낸다. 멀리 외출하는 때 말고는
주야로 그렇게 산다. 습관적으로 문고리를 잠그는 내게 그리 말라한다. 때문에
언제라도쉽사리그의집안에드나들수있다. 문을잠그지아니하는이유가있
다. 그건그분의제일큰걱정중하나인바, 어느날자기가죽어서몇며칠씩방
치되는 일이란다. 그리고 건망증 탓에 집에 불이라도 내면 누구든 즉시 들어와
수습할수있어야한다는것이다. 언뜻듣기에기막힌말이지만, 사실이세대는
거의가정마다그런처지의노인을만들고있지않은가. 장차내모습을미리보

는것일지도모른다. , 그런걱정은내가맡아주마자원했다.
그약속지키느라나는하루도거르지않고문안한다. 오전에못보면밤에라
도.
207호와204호는지척지간이라그리번거로운일도아니다. 나의어머니께
죄스럽던마음을그렇게나마달래는길이다.
긴겨울을나는노인의이불자락에나란히눕기도하며보냈다.
어떤날은울다가나를맞는다. 왜우냐고물으면건너마을어느늙은이가죽었
노라. 그망인의일대기를내게말하며또운다. 또어떤날은그저공연히옛날
이생각나서운다고한다. 그의옛날이란썩어질것들뿐이라하면서도구구절절
되풀이뇌인다. 그에게썩어질과거말고는추억할거리가없다는말인가.
내게는많은친구가있다. 나이로따지면20년상하요, 생업이나사는고장도
다양하다. 친구란사는여정에서생겼다사라지기도하지만끝까지남는친구가
있다.
이노인과나는처음부터친구하기에맞지않다. 나는목소리를잃은사람,약
간의 대화에도 체력 소모가 심해서 곧 지친다. 노인은 보청기를 꽂고도 싸우는
것처럼고래고래소리질러야겨우의사전달이되니말이다.
주로노인이말하고나는들어주는쪽이다. 그의이야기가처음엔육하원칙에
전혀맞지않고풀어헤친실타래같더니, 듣고또되풀이듣다보니이젠가닥이
잡히고정리가된다.
그는 15세에 이곳 청대산 자락 논산 골짜기로 민며느리 삼아 시집이라고 왔
다. 85세되도록한번도이마을을벗어나살아본적없다. 6남매중넷이살고
있다. 아들앞세운며느리와는미안해서안살고, 딸들은출가지외인이니못가
살고, 서울사는막내아들이한사코모시려해도, 가봐야나그네요낮에집에혼
자남기는매일반이다. 화장실쓰는일만해도학교가는손자들출근하는아들며
느리다지난다음이라야차레오니, 요실금아니라도노인의생리현상이기다리
게하는가? 징역사는게그럴까싶더란다. 노인정도잘안간다. 그곳에는술, 담

배, 남의집흉보고, 며느리욕하는일만있다며. 그분은그래서늘혼자다. 누워
서 썩어질 옛날만 울어옌다. 그런 날엔 내가 너스레를 떤다. 늙으면 다 똑 같은
설움이있대요. 돈없어초라하고아파서불쌍하고식구들떠나서외롭고. 그런
데당신은돈이며내집도있지, 밤잠못잘만치아픈데없지, 자손들이시로때
로챙기지대접받지……죽는날그거야말로하나님이하시는일아닌가요? 주
께 맡긴다면서요? 그 대목에 이르면 노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일고 아이같
이눈물을훔친다.
그의 유일한 외출은 주일 마다 예배당 가는 일이고 그 곳에서 자손들을 보고
오는일이다. 송구영신예배를드리고온날, 금년소원은무얼빌었냐고물었더
니<하나님금년엔날좀꼭데려가주세요.>
–그렇게재촉하지않아도머지않은여생인데.
<아무쓸짝도없는목숨인데바쁜애덜이노인을챙기거라늘분주한게싫다.
사는게지루하다.>
기형이다싶게굵은팔뚝, 굽은등, 갈쿠리같은손마디를보면평생을가난노
동인간고생속에살았을그가, 지금은어떤의무나책임이없이홀가분한삶인
데, 냉장고에사철먹을거리그득하고자고새고놀아도남는게시간이요세월인
데, 요새처럼편한세상은없었노라하면서도죽기를소원한다.
부활절예배를드리고온날은또내게이런주문을했다.
자기가인사불성이거든병원에싣고가지말고옷장맨아랫서랍을열어보라.
오늘입은이흰색한복이거기있을테니그걸입혀아랫목에눕히고자손들을
불러다오. 병원에가서억지로살리지말고집에서죽게그냥놔둬달라고.
나야그렇게할수있겠지만자손들은아닐텐데그들에게당부함이가하지않
겠냐고했더니그는주위에서구박덩어리노인을응급실로들고가서살려내놓
고는 귀찮다며 또 다시 천대 구박 주는 일을 많이 보았노라 했다.
노인의방엔주야로TV가시끄럽게켜있어서대화가안될지경이다. 내용을
물으면번번이

<몰러.> 아무것도모른다면서왜켜놓고있냐니까<사람소리는나쟌여.> 사
람소리, 사람소리라했다. 노인의고독을단적으로시사하는말이다.
봄이왔다. 들녘에서농부는쟁기질이부산하다. 노인은부시시털고밭에나
다니더니산책을핑계로따라다니는나더러밭이랑하나를떼주며마음대로해
보라는것이다. 어떨결에나도농부가됐다.. 봄가뭄이계속되고내가이런저런
구실로 며칠씩 밭에 나가지 않으면 <외 모종이 목이 비틀어져 이녁만 지달린다
네.>
냇물이밭옆을소리치며흐르건만노인은기운이없어그걸못길어올린다.
우리가 부치는 밭은 본래 노인이 평생 살던 집터다. 년전에 서울사는 아들이
헌집과어머니가걱정되서그집을무너뜨리고어머니를아파트에옮겨앉혔다.
이른봄 앵두나무가 맨 먼저 하얀 꽃을 화사하게 피우고 영롱한 구슬을 매달
더니 꽈리 원추리 산마늘 꽃들이 앞다투어 핀다. 머위와 취나물 군락이 100평
넘는 밭 둘레에 빙 둘렀다. 노인이 소싯적에 하나 하나 산에서 떠다 심은 것들
이란다. 하루에도 두 세차례 밭에 돌고오는 노인, 밭은 그분의 비원(秘苑)이란
것을 알 수있다. 그에게 현재란 그저 내용을 알 바 없는 당신 방 TV 화면에 불
과하다. 자식들이안부전화했다가노인이안받으면몹쓸생각이앞선다며형
제간에서로맞전화질로야단이란다. 밭에아무것도심지말고제발좀가만있
으라, 그깟 무슨 큰 보탬이 되냐,옛날 같은줄 아시냐, 요새 누가 그런 것 그리
먹냐고, 넘어지기라도하는날엔큰일아니냐고……자식들의걱정이정말노
인의 사망일까? 오히려 노인이 다치면 자기들에게 끼칠 번거로움이 아닐까?
그들은아직모른다. 어머니가얼마나그밭에, 그집터에, 당신만의비원에기
대어 살아내는지를.
나는노인이그겨울에세상뜨지나않을까내심걱정했었다. 그런노인이밭에
씨를넣고부터눈동자에윤기가어리고걸음도빠르고기침도없어졌다. 나같은
왕초보농사꾼제자가생겨서오랜만에감놔라배놔라자기목소리가먹혀드는
나날이살맛나는지도모른다. 골은이렇게쳐라. 씨는요만큼씩간격을두고뿌

려야된다. 흙두께는씨앗마다이리이리해라. 솎아내라, 북을돋아주어라.
나도나름대로소견이전혀없는건아니지만소출을기대하기이전에노인을
신나게 하면 그만이란 생각에 무조건 순종이다. <이녁도 농사꾼 다 됐네 제
법….> 그는나를추켜주기도한다. 밭일을하며노인이하는말속엔잠언도있
고철학도있다. 그가따르는하나님말씀으로인해그나이의다른노인들보다
맑고분별력이있는것같다.
대부분푸성귀는장마가끝나면시들하다. 고구마들깨콩무우만이가을까지
시간을 기다린다. 그것들은 별로 손볼게 없다. 밭일이 뜸해지고부터 노인은 밤
마다내게마실온다. 처음엔별로중요하지도않을밭일을구실삼아오더니, 그
구실이동이나자눈치가보였던가어느날부터작은종지아니면내가드린반
찬그릇에다굳어꼬부라진떡대여섯개, 좀더자라게두어도좋을애호박한개,
아직캐기엔이른새끼고구마몇알을들고온다. 며칠전엔작은딸이산에갔다
가주워왔다며토종밤한됫박을가지고왔다. 거절하면내집에올구실을뺏는
게되고받자니내가이게무슨착취행위(?)란말인가.
노인의 둘째 딸, 그도 며느리 본 나이다. 시내에서 부자소리 들으며 살지만,
고추50주고구마100주, 심고지주세우고약치는일따위힘드리는일을그
가다해낸다. 딸의시간사정을안다하면서도연신불러대는것은딸을보고싶
어 농사일 핑계 삼는 것만 같다. 어머니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돌보는 자식이고
어머니호출에한번도싫은내색않고순종하는모습이아름답다.
노인이밭에서쓰러지는날이오늘이면어떻고내일이면어떤가. 냉정히말해
서 저리도 고독하게 사느니, 한시나마 살 맛 나게 살다 가게함이 옳지 않겠나?
추석한주전나는3박4일간여행다녀왔다. 노인에게이르고간날에서하루가
더걸렸다. 그하루를참을수가없던지복도끝창턱에얼굴을얹고서나를맞는
것이다. 어쩌면 좋은가, 내가 대체 당신에게 무언데? 노인을 내집 부엌, 식탁,
거실에앉혀두고이런저런가사일은얼마든지할수가있다. 그러나컴퓨터작
업, 독서, 글쓰기 등은 그럴 수가 없다. <내가 이녁 일만 지장 주는구먼. 가야

지……> 그가뭉기적거리며일어선다. <할머니도내일부터는성경책과돋보기
가지고와요.> <내가글을몰르잔여…> <그럼찬송가는요?> <그냥하지뭐.> 일
어서다 말고 도로 앉아 주저리 주저리 한다고는 하는데 모두 마뜩찮다. 그중에
한곡—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가운데로 걸어가면—그곡 하나만은 비교적
제대로부른다. 내가박자를쳐주니까삼절까지다외서부른다. 마치유치원생
이부모앞에서재롱으로부르는것같은몸짓이다. 나는절로—아하나님–
신선노름에도끼자루썩는줄모른다더니우리는그렇게재미있게살았다. 그
런데가을이다. 내겐고민이생겼다. 원고숙제가너무밀렸다. 철저히고독해야
되는이작업을노인과는동행할수가없기때문이다. 그와의동행을위해그간
에시도해본몇가지것들이다벽에부딪쳤다. 귀머거리와벙어리, 문맹자와글
쟁이, 80대와60대……친구란공동의관심사공통의기호(嗜好), 이런것때문
에질리지않고끝까지남는것이라생각한다. 노인과는밭일외엔함께놀거리
를찾지못하고있다. 우리는한참을더동행해야하는데내가고민에빠진사실
을그는알지못한다.
내일아침에노인은으레내집문을두드리거나전화를할것이다.
<또어데댕겨온거여, 아픈거여?>
–그와동행해주리라.–일년전내가자원한일이다. 겨우한해도못채우고
그를따돌리고있다. 나의시간을조금나누어주기만하면행복한노인을, 내시
간을헐어내는노인으로여긴다.
소유란언제나이렇게통증을수반한다는사실을또한번절감함다.
오는겨울동안노인에게한글을가르쳐드리면어떨까? 가능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