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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정영애] 미용실의 거울 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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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00회 작성일 09-12-2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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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의 거울 속에는


푸석한 시간들이 뚝뚝 끊어지고 있어요
개망초 꽃 수북이 핀 머릿속을
민둥산처럼 밀어줘요
천 년 전에 묻어 두었던 청동거울을 꺼내줘요
빗살을 빠져나가는 바람들 붙들지 말아요
들꽃들의 씨방이 여무는 소리처럼
온통 와글거리는 여자들이
담쟁이처럼 내 집을 덮고 있어요

언제나 바람을 여미지만
빙하기보다도 깊은 곳에 뿌리 내린 유목의 습성
내 안에는 늘 떠나고 싶은 여자 하나 살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맹세를 해야겠어요
약속을 대신해서 검은 머리칼을 줄께요
마음대로 자란 나를 야생의 들로 데려다줘요
거울 속으로 들어가 버린 방금 전의 나는 잊을래요
도르르 말린 백 년 전의 유행을 모자처럼 쓰고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저 오후

당신, 따라오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