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9호2009년 [시-정영애] 반성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85회 작성일 09-12-28 15:59

본문

반성문


내 입 속에는 수없이 짓다 만
절들이 폐허로 널브러져 있다
혓바늘처럼 껄끄러운
문장의 파편들이 나를 향해 날아들며
견고한 말씀 한 채, 세우라 한다

말씀의 절을 빙자해서
얼마나 많은 언어들에게 상처를 입혔는가
절 한 채 세우느라
일어서지도 못하는 문장에 채찍을 가하고
불량한 동사(動詞)와 결탁하여
짱짱한 꽃 한 송이조차 갈가리 찢어가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모독했다
지었다 허물었다 던져버린 언어의 돌덩이들이
가슴만 치다
입 속에서 와르르 부서지고
잡초처럼 쇠어버린 나는
언제쯤 돌 한 개라도 제대로 올릴 것인가

일생을 통해 쌓아 올린
말씀의 절 안으로 누군가 걸어 들어와
세상을 절명하며 지친 몸 뉘게 할까
나는 아직 멀었다
난삽하게 말씀들을 괴롭힌 나를
시여, 용서하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