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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신민걸] 여기는 十字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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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21회 작성일 09-12-2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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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十字路
가로와 세로로 쫙 갈라놓은
여기는 십자로 횡단보도 앞
신호등이 파랗게 변하길
오래 서서 기다리는 중
여기서 저기로 건너려는 중
건너편에 자전거 여행 중인 남자
자전거에 걸린 일곱 개의 배낭과
빨아서 달리며 말리던 옷가지와
힘들고 여윈 기억을 등에 맨 채로
오래 서서 기다리는 중
저기서 여기로 건너려는 중
지금 막 버스에서 내렸어
귀는 이어폰으로 꼭 막고
버스에서는 내내 책을 읽었지
(2004년 발매한 이장혁의 앨범 중
<영등포>를 무한반복해서 들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었어
여기는 아마도 200q년 9월 끝 속초)
올 추석에는 보름달이 뜰지도 몰라
여기는 아주 조그만 틈새니까
틈은 점점 자라 허공의 배꼽이지
뻥 뚫린 귓구멍과 꼭 다문 입술
이맘때 씨알이 굵어진 해바라기들은 늘
동서남북 사방으로 고개를 떨구지
고개를 떨구지, 고개를 들면
십자로 사방에서 몰려드는 무한간판
간판 사이로 난무하는 광고전단지
멀미처럼 밀려드는 버스와
버스에 실려 온 바닷바람까지
여기서 온통 빨아들이는 중
드디어 파란 신호등이 깜박거리면
갈라진 틈이 찰나에 사라지며
네 조각이 하나가 될 걸
여기는 허공의 배꼽을 기억하는
여기는 꿰맨 십자의 흔적을
옮겨가는 아슬아슬한, 여기서
일곱 개의 별이 별자리였다가
툭 떨어진 해바라기 굵은 씨알처럼
마침 단 하나의 인사말로 수렴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