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39호2009년 [시-박대성] 체 내리는 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787회 작성일 09-12-28 16:59

본문

체 내리는 집

이름부터가 수상하지 않은가, 이 집
체 내리는 집. 꽁꽁 닫힌 대문과 종부돋음 해도 잘 들여다보이
지 않는 높은 담을 담쟁이가 돌고 도는 그 집이 대체 무엇 하는 집
인지 참 궁금했다. 체 내리는 집. 중앙초등학교 운동장 건너 언덕
위의 집. 전설을 두드리듯 그 집 대문을 두드린다. 백발의 노파
가, 이 집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이 걸어 나올 것인가? 혹
이 동네에서 용하다 소문난 버버리 영감이 앞 못 보는 늙은 아내
를 데리고 어디론가 점을 놓으러 나설 것 같기도 하고, 오랫동안
종적이 묘연한 절름발이 두칠이가 옹골짱옹골짱 목발을 짚으며
걸어 나올 것 같은 아침. 나는 무슨 갑갑증에 걸린 사람처럼 그
집의 내력이 알고 싶은 것이다. 체 내리는 집.
드디어 나는 문을 연다. 그리고 그 오래된 간판을 본다. 희미한
흔적만 남은‘기’字. 공손하게‘기氣’字를 불러 본다. 복원된 간
판은‘체기 내리는 집’바람을 따고 체한 걸 내려주던 집. 바람따
는 늙은이가 살던 그 집이었다.
‘기’字가 어디론가 날아간 것이다.
깊고 험한 밤. 아이를 들쳐 업은 부부가 맨발로 달려들면 머리
카락 숫돌에 쓱쓱 문지른 바늘로 빨간 피를 홍옥처럼 뽑아 올리
던 집. 막히고 닫힌 몸에서 터져 오르는 울음소리가 무지개 같던
집. 그 늙은 여자가 살던 집. 달과 별이 내려와 한참을 그 품에 안
겨 있곤 하던 집. 체 내리는 집. 그 늙은 여자가‘氣’字를 타고 어
디로 떠났는지 궁금한 집. 참 궁금한 그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