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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최명선] 분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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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73회 작성일 09-12-28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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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갈이


삭정이 같은 몸 열고 너를 꺼낸다
너 죽여 얻었던 한 뼘의 평화와
너 살려 얻었던 격 없는 실리여
더는 분盆밖으로 눈 주지 않으리니
미안하다 마음이여
뿌리 깊은 곳으로 편히 길 내시라
세상 빌려 쓰듯 몸 빌려 사는 생
듣지 말아야 할 말 많이 담았고
하지 말아야 할 짓 많이 탐했고
보지 말아야 할 것 또한 많이 들였음이니
오십여 해 낡은 그릇 얼마나 버거웠으랴
몸이나 마음이나 거두며 가는 것
썩은 생각 잘라내고 북 새로 주었으니
저물어가는 육신의 길
주름진 살꽃이어도 환해지지 않겠느냐
채움만이 전부였던 미혹의 시간
무지의 내 어제를 부디 용서하시고
무거움에 겨워하는 내일 없도록
가벼이, 가벼이 비우면서 가시되
어쩌겠는가 마음이여, 하나 뿐인 몸
비루먹은 누의 집 되지 않도록
가는 길 서로 다독이며 가시라
서녘으로 휘어진 적적한 외길
부디 맞잡은 손 놓지 마시고
서로 아껴 살뜰하게 품어주며 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