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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장은선] 행복 고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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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187회 작성일 09-12-28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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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고물상


한낮의 흥겨운 라디오 소리가
들리는 고물상
변두리를 떠도는 행상이 된 전파들이
삶의 밑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산더미같은 파지들이 바람에 날리는 사이로
밥상을 대신했던 김 오르는 라면상자들이
허기진 얼굴을 내밀고
뿌연 먼지를 뽑아내던 선풍기는
옛주인이 그리운지 헛날개짓을 하며
흐르는 땀을 식히고
누런 잿물을 토하던 탈수기는
지나온 삶이 못마땅한 듯
꼬불꼬불 말려간 철근 사이에서
팔을 감싸안고 면벽중이다
곤한 잠에 떨어져 뒹굴던 주인과
뜨겁게 달아올랐던 연탄보일러는
문둥이처럼 썩어 문드러지는
제 살을 부여안고 신음중이다
풍진 세상 견디던 몸이 접히자 마음도 가벼워져
길 끝에선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고
만신창이가 된 몸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삭아가는 제 몸에서 가끔씩 형광을 내며
내리깔리는 안개들을 솜이불처럼 나란히 덮어쓰고
버림받은 것들끼리 어울려 달디단 잠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