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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최월순] 이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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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92회 작성일 09-12-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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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녁
          —친구 이유근의 장례식장에서


스위치백으로 오르던 태백의 높은 산길이
산기슭에 무리 짓던 주홍빛 나리꽃이
지친 꿈길에서도 언제나 선연하였다.

청춘을 가로질러 가던 시간 속에서
서슴없이 손 내밀던 얼굴 하얀 소녀도
수줍게 얼굴 감추던 산목련도 다 사라졌다.

가난하고 서러웠던 어린 날의 푸른 이상 앞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 먹는 법을 말하며
미소 짓던 그대의 얼굴이 촛불 속에 어른거린다.

그대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며 차마 울지 못하는 이 저녁
이루지 못할 꿈을 적어 연을 띄우듯
함께 웃던 오래된 기억을 꺼내 그대의 하늘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