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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최월순] 봄날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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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49회 작성일 09-12-2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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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이었네
                 —서둘러 떠난 친구 김유근을 생각하다


봄날이었네
먼 바다를 건너온 한 사람이
오랫동안 소복을 입고 지내던
어머니의 위안이 되기 시작했을 때에도
한 평 남짓 조그만 문간방에서
고운 각시와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에도
꽃잎이 날리는 봄날이었네
이제 이 세상 그대가 떠나가는 날
눈꽃이 풀풀 아카시아 꽃잎처럼 흩날리네.

한 때 어머니의 위안이었던 그 사람이
오래된 집터를 남의 손에 넘기고 바다로 떠났을 때에도
걷기를 포기한 채 입으로 자식을 키우던 어머니
터울 많은 동생을 떠맡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자신을 치고 지나가는 운명쯤이야
문지방을 건너온 봄 햇살 같은 아이들의 웃음과
봄꽃 같은 아내의 미소 속에서 아카시아 잎 떼어버리듯
눈물을 지우고 씩씩하던 친구여
세상에 사랑이 있기나 한걸까 의심하지는 말자
그대의 사랑은 우리가 함께 걷던 고향의 초등학교 가는 길
줄지어 피어있던 아카시아 꽃빛만큼이나 아리고 눈부셨으니
친구여 편히 잠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