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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권정남] 폐휴지를 버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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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40회 작성일 09-12-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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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휴지를 버리다가


폐휴지를 버리다가 문득
떠오르는 한 남자

새벽 초등학교 언덕길
안개꽃 입김 송송 뿜어내며
폐박스 가득 싣고 올라가는 남자
힘껏 리어카를 당긴다
내리막길에 헛도는 바퀴들
한때 정형외과 화장실에서
환자들 빨래, 피고름 붕대가 담겼던
쓰레기통을 아침 햇살로 닦아놓고
흔들거리는 목으로
연신 웃기만 하던 그 남자
신문지 행간 같은 촘촘한
골목을 앞가슴까지 끌어당기며
반듯한 하늘을 소망하듯
가쁜 숨 몰아쉬고는
구겨진 박스 탁탁 털던 그 남자
초등학교 담벼락 빙판 언덕길
스프링처럼 흔들거리는 그의 목과 팔을
새벽안개가 지우며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