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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권정남] 닫힌 문 앞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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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99회 작성일 09-12-2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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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문 앞에 서서


닫혀있는 현관문 앞에서
까마득 썰물처럼 떠내려가고 있었어
디지털도어 숫자가 사정없이 나를 밀어 냈어
네 자리 버튼만 눌리면 쉽게 열리던 현관문이
가슴 풀어헤치고 지즐 대던 당신의 이야기가
모로스 부호처럼 나를 해독하지 못한 거야
세상과 소통을 위해, 고독한 내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족쇠 같은 비밀번호를 순간순간 확인하고
우리사이를 틈틈이 갈무리 했어야만 했어

출구는 돌문처럼 닫혀있고
우리사이 암호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어
평소에 내 지문을 정확하게 인식하던 당신의 뇌파가
기억을 상실 해버린 게야, 치명적이었어
당신의 가슴을 전기톱과 십자드라이버로 해체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저벅저벅 당신 안으로 걸어 들어갔지
현관 입구에 조각조각 분해 된 수많은 밀어들이
하얗게 질린 채 나 뒹굴고
몇 개 나사못만 조심스레 옆구리에 조여 있을 뿐
당신 가슴에 뜨겁게 충전되어있던 내 배터리의 유효기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 소진된 우리들의 사랑처럼

문득, 사람들 기억 창고에 저장되어있는
수많은 비밀번호들이 모두 안전 한가 궁금하기 시작 했어
그리고 닫혀있는 문 앞에 서서
썰물처럼 떠내려가고 있던 나를 의심하기 시작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