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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지영희] 안중근 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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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95회 작성일 09-12-2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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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님께


깨어진 처마 밑에 놓인 절구에 지금 비가 고이겠네요.
연변의 방천에 다녀오다가 님의 초가집을 들렀습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김이 검게 서린 무쇠솥들을 내려다보며
간신히 기대어 있는 굴뚝의 높이를 가늠해 봅니다.
쓰러지는 채로 버려진 숨결 한 줄 한 줄 거두어
가방에 넣어 오려했지만
쪽판자 녹슨 침대마저 허전해 할까봐
천정만 바라보는데 흙이 떨어질 것 같더이다
굵은 자물쇠 벗겨 문 열어주던 여인네는
바닥이 지저분하니 신발을 신고 들어가라고 재촉합니다
순박한 짙은 눈썹과 검은 눈이 박힌 사진은
교과서에서도 보아온 터라 울컥 반가웠지만
거친 돗자리는 벌떡 일어나 내 가슴을 훑어 내립니다

수없이 눈길이 닿았을 집 뒤 포플러와
올곧은 뜻 붉게 고이던
님의 발자국이 덮힌 마당은 여전히 반듯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이국의 깊은 정적까지 껴안은 큰 가슴에
잦은 플래쉬만 터뜨리는 미안함을 구겨놓고 나왔습니다
님이 바라보았을 앞산을 찍으면서요
큰일 하러 떠나던 그 길, 이 빗속에 누가 걸어갈런지요
옆뜰로 난 썩은 한지문이 애잔해 옵니다

참,그나마 <안중근의사생애>라고 쓴 큰 안내석을 고마워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