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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지영희] 우리는 잊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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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51회 작성일 09-12-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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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잊혀지고 있다


종탑 십자가 위에 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잊고 있었다
뾰족한 곳에도 누군가 앉아 쉴 수 있다는 걸
천천히 그림자 당기며 지나는 시간이 있기에
빈 시선 가득 설레임으로 채울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어제처럼 되돌리는 어스름도 잊고
내일이 싹트는 머리맡에
빛을 납작납작하게 빚어내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철로변 어디서나 손을 들어 기차를 탈 수 있는
알래스카로 가는 가을날
우리는 잊혀지고 있다
몸이 알기도 전에 되돌아오는
초고속열차 속에서
추억이라는 새로워야 할 이름을 잃어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