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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시-장은선]우보씨 내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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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419회 작성일 05-03-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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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표지판에 걸려 있었지만
길에서 길을 잃던 무수한 기억들
총천연색으로 발광하는 네온과
핸드폰의 쉴새없이 바쁜 화음들
타이어의 격렬한 마찰음에 쫓기던
우보씨 마음의 오솔길로 들어선다
허망을 쫓던 날선 기억들을 지우면
청계천의 구두소리들은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순한 눈망울의 여유로운 소걸음이 된다
지쳐 쓰러져도 다시 생기를 주던 흙내음과
어머니의 쭈그러진 가슴에서 샘솟던 젖내음이
들숨 깊숙이 스며드는 풍물시장의 살림살이들
꿈을 부풀리며 책장을 넘겼던 등잔
오줌누는 누이를 가슴 조이며 훔쳐보던 요강
제비입 같은 식구들을 먹이던 사기그릇들
투박하고 못생겨 곰보투성이가 되었지만
금간 상처마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지
그것들은 일방 통행식 라디오 연설처럼 서사적이거나
온 동네가 한방에 모여 한숨을 내쉬던
티브이 드라마처럼 서정적으로 다가와
사시나무처럼 떨거나 저릿저릿하게 감전되었지
궁핍한 세월의 두께가 푸른 녹으로 남아서
그리운 풍경들이 흑백사진으로 선연히 각인된다
너와나 우리들이 함께한 아렸던 시간들이
살내나는 푸른 내를 이루어 깊은 호흡을 내쉬며
꽃향기 그윽한 피안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