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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호2004년 [시-장은선]수선집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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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갈뫼
댓글 0건 조회 2,438회 작성일 05-03-26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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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 췌바퀴 돌리듯
낡은 미싱 툴툴 돌리며
그 여자 다소곳이 삯바느질 한다
양볼에 수줍은 홍조필때부터
반백의 서리꽃 질때까지
나설 수 없는 세상을 내다보지 않고
꿈을 접듯 실밥을 털어냈다
가는 실로 기쁨을 수놓아
헤진 옷들에 날개를 달아주면
비누방울들이 선망으로 피어올라
비좁은 골목길을 환하게 밝혀지
때로는 호랑나비에 실려
영을 넘는 꿈에 잠기다
날선 바늘에 선홍빛 핏물을 흘렸지
주름진 돋보기 너머로
새색시적 기억이 가슴에 아른거리는데
수은등에 하나둘씩 불이 오르고
하교길 한무리 소녀들이
재잘거리며 어디론가 길을 재촉하네
그 옆의 가로수도 훌쩍 자라
보도위에 아낌없는 모성을 드러내며
손때익은 가위로 무상한 세월을 자르고 있는
수선집 여자를 안쓰러이 바라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