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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호2009년 [시-박명자] DMZ 근처 나무들은 호흡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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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900회 작성일 09-12-2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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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근처 나무들은 호흡이 빨라졌다


조심 조심 발꿈치 들고
DMZ 근처로 건너가는 나무들의 행열이 보인다

밤이 으슥해지자 나무들의 호흡이 점차 빨라진다
59년 기나긴 침묵의 늪 쪽으로 계속
페달을 밟았기 때문이다

겨울나무들은 일렬횡대로
모멸의 아픔을 딛고 눈물의 강을 건너간다.

248km 빈 벌을 가로 질러 선듯 걸어가는
나무들 뒷모습이 한층 긴장한듯 하나
자유의 마을 S 지점까지 첫눈이 오기 전에 닿아야 한다

검은 숲으로 한파가 엉덩이를 흔들고 지나갔다
반달가슴곰이 뒤따라 한 마리 외눈 뜨고 나타났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불똥이 설봉아래
호외를 던지고 달아났다

해 떨어지기 전 최소한 우리 일행은
대성동 자유의 마을까지 도보로 가야한다.

검은 숲의 장막 뒤편으로 새끼 고라니가 슬쩍 지나갔다
깜짝 놀라 돌아보는데 낡은 철모 하나
탱탱한 시간 밑에 깜빡 깜빡 삭아 내리고 있다

그대 영혼 채 피지도 못하고
죽어서도 절규하는 스물 한 살
코리아의 새내기 국군이었구나

그 날 낙동강 피로 물들여 진격의 나팔소리…
그대 어깨에 빛나던 계급장 육군 소위 K

지금은 후미진 이 강토 골짜기 억새숲에
피의 향기 번지어
젊은 고혼을 울고가는 멧새들이
북녘 하늘로 먼지처럼 흩어진다

여기는 하늘 아래 이색지대 DMZ
59년 버려진 외연의땅
철새들이 100개의 백열등 같은 눈을 뜨고
천상의 운율을 감지하며
눈꽃 가지 아래 잠자리를 펴 놓고
<철새 포럼>을 열고 있다

이상한 눈빛의 바람이 한줄기 크게 지나갔다
숲속 나라는 다시 산문을 열고 나무들은 행진을 시작한다.
영하의 찬바람 속으로 다시 떠나야 한다

우우우우 일제히 길 떠나는 겨울나무들
그들 호흡이 점 점 빨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