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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소설-윤홍렬] 逆風은 불어도 江물은 흐른다.Ⅹ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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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628회 작성일 10-12-2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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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에 부부간 상의한 끝에 청진으로 가기로 합의를 하였다. 다만 샛강골에 계시는 부모님들의 봉양 문제를 결론 짓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 당장 청진으로 모시고 가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에 애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주택문제도… 생활대책도…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일단은 여선규 부부가 우선 청진에서 자리를 잡은 다음에 부모님을 모셔 가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날이 밝으면 청진의 처남에게 아내가 천화로 알리기로 했다. 일주일쯤 있다가 가겠노라고. 오늘당장 군청 위원장 직책에서는 물러나기로 부부간에 합의를 하고 조반상을 물리며 곧바로 집을 나섰다. 밖엘 나서니 9월 중순의 초가을 날씨가 완연하다. 시원한 날씨. 푸른 하

늘…. 여선규는 무심결에 고개를 제끼고 하늘을 우러렀다. 두 팔을 한 껏제꼈다.

군청으로 가는 길로 가다가 우측 사잇길로 바꿔들었다. 자신이 청진으로 간다는 사실을 사촌처남 김두룡에게 먼저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여선규네는 대대로 외아들로 가계가 이어져 왔기 때문에 무산땅에는 친척이 없다. 사촌처남이지만 김두룡과는 무산 보통학교 동기생이기도 하여 자별하게 지내는 사이다. 무산면 사무소 동료로 있을 때에도 공무든 사사일이든 신경을 써야할 일은 반드시 김두룡과 상의를 하였다. 3년전에 면사무소를 떠날 적에도 김두룡과 상의를 하고 결정을 지었다. 이제 공무원자리뿐만 아니고 무산 지역을 떠나는 처지인데 여선규로서도 쓸쓸한 변화이지만 김두룡으로서도 사뭇 충격적인 변화일 것이다. 그런 중대한 변화를 남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김두룡이 일게 할 수는 없다. 군청직원들에게 공개하기 전에 우선해서 김두룡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짐작대로 아직 출근은 안했다. 중학생과 국민교 다니는 아이들 남매와 겸상으로 조반상을 앞에 놓고 있다.

‘처남과 조매이 상의 할 것이 있어 왔지비. 날래 식사르합세. 너희들도 퍼뜩들기오. 핵교 르 늦지 안토록’

여선규는 자신의 신상문제를 덜컥 밝히면 김두룡이 영향을 받아 조반드는데에 지장을줄 까봐 자리를 조금 비켜 앉으며 김두룡의 식사를 권했다.

‘괘안소. 이바구르 퍼뜩합세’

하기는 여선규도 군청 출근시간을 생각할 때 시간이 그다지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언성을 높여 말을 한다.

‘좋소. 식사르 하믄서리 드릅세. 나 청진으로 갈뚱하오.’

김두룡은 입안의 음식을 씹으면서 여선규를 빤히 보다가 입을 연다.

‘누부 왔소 ?’

‘왔지비. 엊저녁에 왔음. 김두룡은 역시 충격을 받나보다. 입안의 음식을 서둘러 마무리하면서 밥상에서 물러난다. 정지에서 잔일을 하던 김두룡의 아내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손을 멈추고 정지에 서 있는 채로 방안을 들여다 본다. 서운한 표정으로 여선규를 보면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난 김두룡이 천장을 본다. 쓸쓸한가보다. 부엌에 서서 방을 들여다보고 있던 김두룡의 아내가 숙연한 표정으로 말참례를 한다.

‘어시(부모)도 함께 가오?’

‘아이요 . 어시는 함께 몽가오 . 청진이 객진데다가 또 어이님(노인) 이라서 몽모시고 가 오. 한 달포전에 대강 말씀을 드렸습메. 어쩌면 청진으로 갈투싶은 데 어시들을 몽모시 고 갈투 하다고 용서르 하시믄 좋겠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선선히 승락 하십데. 그래서 내 처자들만 데불고 가오.. 청진가서 우리가 자리를 잡으면 가끔 올 모앵요.’

김두룡의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선규는 일어 선다.

‘오나조 (오늘 저녁) 우리 집에 오기오.우리끼리 이바구두좀 나눕세.’

군청 문 앞에서 출근중인 직원들 2명을 만났지만 평상시나 마찬가자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면서 청사로 들어섰다. 평소대로 군수실로 들어가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총무과장을 부르는 초인종을 눌렀다. 총무과장이 재빠르게 들어 왔다. 결재 서류를 가지고 들어 왔을 적처럼 군수 의자 정면에 서서 여선규의 하회를 기다린다. 여선규는 총무과장을 정면으로 보며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좌측 옆의 의자를 가리키며 입을 연다.

‘오늘은 다른 이바구가 있습매. 이리로 앉읍세’

총무과장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옆 쏘파에 조용히 앉는다.

‘그동안 군행정에 미숙한 나를 돕느라고 수고가 많았습매.’

군위원장의 하회를 기다리며 여선규의 얼굴만 유심히 바라보던 표정이 순간에 긴장한다.

‘나… 위원장 직을 그만두기로 했습매.’

총무과장은 전연 뜻밖이라는 듯 벌떡 일어서며 위원장에게 다가선다.

‘밤사이 무스레 일이 있었음둥? 갑자기 그만둔닥 하능기오. 여선규는 손짓을 하며 의자에 앉기를 권한다.

‘앉소… 앉소… 지난밤사이 무스레 일이 있었던 것이 아이라 여러 날동안 생각하고 생각 한 결과오.’

그는 친일파. 일본앞잡이… 등으로 뒷공론을 퍼뜨린 길병석의 악의적인 태도가 자신의 행동에 절대적이 영향을 미쳤다는 밀은 전혀 입밖에 내지않기로 했다. 그렇게 하였다가는 자칫 길병석을 비롯한 몇몇 급진 세력들과 온건파들 사이에 알력이 생길는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다시 입을연다.

‘총무과장은 조회시간에 내가 사퇴하는 사실을 밝힐테니까 그렇게 알기오. 오늘 아침 조 회도 평소 시간대로 시작합세. 그러믄 나가 봅세.’

여선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총무과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총무과장은 힘없이 손을 내밀어 여선규의 손을 두손으로 힘있게 잡고 울먹이는 목쇠로말을 한다.

‘정말 서븐합메’

‘서븐하기야 나도 같습메. 좀 있으믄 마음이 안정 될기오. 날래 나가 봅세’

총무과장이 나가고 조금있다가 직원들이 우르르 위원장 실로 몰려들었다. 제일 먼저 달려들은 사람이 길병석이었다. 사뭇 울먹이는 음성으로 …서운하다. 슬프다… 사표의사를 취소 하십쇼…등으로 언성을 높인 사람도 길병석이었다. 그러나 군청직원들의 군중 심리로 왁자지깔한 소음에 흔들릴 여선규의 의지일 수는 없다. 결국은 강당에 도열한 전 직원들 앞에서 짤막한 이임인사를 하였고 전 직원들이 보는 가운데 사표는 총무과장에게 건네었다. 그리고 군청 직원들이 정문앞에 도열하여 박수를 치는 가운데 여선규는 군청을 물러나왔다. 몇 발짝 걷다가 방향을 무산 중학교 쪽으로 돌렸다. 큰아들 전학서류떼문이다. 국민학교 다니는 아이들 남매의 것은아내가 정리 히였을 것이다.
수업중이다. 교실 이곳 저곳에서 강의 소리가 들린다. 교무실엘 들르니 2학년 2반 담임 교사인 정 선생은 마침 수업중이란다. 여선규는 수업이 끝나려면 20분 가량이 남았단다. 슬며시 교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거닐었다.거니는김에 기석의 학급앞에서 멈췄다. 아직도 여름 기온이 남았다. 교정쪽과 복도쪽 창문이 모두 열려 있다. 2학년 2반 창문 앞에서 멈췄다. 수학수업 중이었다. 흑핀에 가득히 찬 판서는, 보통학교를 졸업한 여선규로서는 신기롭기만한 내용이었다.

무산 중학교가 설립된지 3년밖에 안됐다. 아직 졸업생도 내보지 못한… 말하자면 애숭이 학교다. 그런데다가 한달포전에 조국이 해방 되면서, 다른 기관이나 마찬가지로 교육기관에도 직원 충원상황이 어지러운 것 같다. 이 학교에도 일본인 교사가 4~5명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들이 물러난 자리를 메우는 과정에서 인사처리 상황이 원만하지 못햇다는 것이다. 아내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경성(京城)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이 학교 교사로 채용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학부형들 사이에서 이런 저런 말이 있다고 들었다. 그런 교사들의 수업인들 오죽하랴라는 것이 학부형들의 쑥덕공론이라는 것이다. 기석이가 아버지와 시선이 닿았다. 여기석이의 눈빛이 빛났다. 여선규도 웃으며 고개만을 끄덕이고 그 교실앞에서 물러났다. 계속해서 어슬렁 어슬렁 3개학년 15개 교실앞을 기웃거리는 사이에 수업이 끝났다. 여선규는 서둘러 기석의 학급 앞으로 갔다.

‘아베요’

학생들 무리 속에서 기석이 달려 와 아버지의 팔을 잡는다. 여선규도 아들의 손을 반갑개 잡있다.

‘너그 전학서류 땜새 왔습매 교무실에 함께 갑세’

그들 부자는 교무실에 들어가 여기석이 앞장서서 담임교사 앞에 섰고 자신의 부친을 담임교사에게 소개 했다. 그리고 부친이 학교에 온 내력을 이야기했다. 담임교사는 싱글거리며‘좋는 고장으로 가게 된 것을 축하한다’며 서류를 작성하였다. 서류를 넘겨받은 여선규는 아들을 데릴러 학급에 갔더니 기석은 친구들하고 좀더 이야기하고 방과후에 가겠단다. 친구들과 헤어지기 서운해 하는 아들의 심정을 헤아리면서 자신의 심정도뭉클하였다. 밝은 날 여선규는 처자들 온가족을 거느리고 샛강골로 갔다. 리운골(麗雲鄕)의 벼 타작도 해야 겠고 한바위골 장노인에게 인사도 해야겠고… ·자신들이 청진으로 떠난후에 부모님들이 적적해 하시겠는 데 다소나마라도 위안을 시켜드리려고 며칠간을 샛강골에서 묵기로하였다. 갑자기 다섯식구가 몰려 들으니‘야 이제사 참말로 사람 사는 집 같우 하다’며 여기석의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하룻밤을 묵고난 다음 한바위골엘 갈 예정이다. 여선규는 지난 여름 경찰서에 잡혀가 지천만에게서 모진 매를 맞고 온몸이 퉁퉁붓고 쑤시고 저리고….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때에 웅담과 곰의 기름을 보내 주어서 신기할 정도로 효험을 본 신세도 있을뿐더러 평소에도 여선규 부모님들과 각별히 가까이 지내는 시이인‘한바위골’장 노인 내외분들에게 청진으로 이사간다는 인사를 해야겠어서 방문키로했다. 두 아들들도 함께 가고싶다고 하여 삼 부자가 함께 떠났다. 두만강의 최상류이니 강은 좁고 수심은 얕은데 길이 엉망이다. 엉망이라기 보다도 길이 사뭇 없다. 큼직큼직한 돌덩이들의 깔려 있는 사이사이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른다. 그 바위들을 이쪽으로 건너뛰고 저쪽으로 건너뛰고 하면서 계곡을 끼고 올라야 한다. 물론 숨도 가쁘다. 기석과 재석 형제는 험한 계곡을 이리 저리 껑충 껑충 뛰어 건느면서 자못재미 있는지 킬킬대고 웃으며 헐떡인다. 거의 한나절을 그렇게 가쁜 숨을 가다듬어가면서 껑충거린 결과 한바위 골에 이르렀다. 장 노인 내외분은 마침 점심을 들고 있는 중이었다. 장씨부부가 반색을 하면서 우선 점심을 함께 먹자며 자리를 양보한다.
그 자리도 흙바닥이 아니고 바위다. 마치 인공으로 다듬어 놓은 것처럼 펑퍼짐한 것이 5~6명이 충분히 앉을 수 있는 반석이다. 하기야 집자체가 바위덩어리다. 거대한 바위가 구르다가 땅에 깊숙이 박혀있는 또다른 바위에 가로막혀 멈춰서있는 큰 바위가 지붕이요 벽이다. 그 박힌 바위와 굴러온 바위가 우뚝 머춰 서면서 가슴을 크게 벌리고 있는 곳이 출입문이다. 그 곳에 도끼로 대강 다듬은 기둥을 세우고 거적문을 달았다. 그렇게 해서 생긴 공간이 장노인네 집이다. 그 곳이 장 노인 이 아들을 키웠고 내외분이살고 있는‘가옥’이다. 그러니까 지붕과 뒷벽은 큰 바위이고 출입문과 그문짝이 걸려 있는 문설주, 그 문설주 주변을 황토로 싸발은 것만이 장노인의 어색한 솜씨다. 장노인 내외분이 들던 점심 식사는 삶은 통감자 한대접, 열무김치 한 탕기가 전부다. 장노인의 부인 김복순 할머이가 불편한 다리를 뒤뚱거리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옥수수 삶은 것 세자루를 싸리채반에 담아 들고 나왔다. 옥수수 한 자루의 길이가 아주 실하다. 시원하다기보다도 차가운 개울물에 얼굴을 씻으며 키키덕 거리던 기석이 형제가 김복순 할머이가 부르는 소리에 응답하며 달려 왔다. 여선규는 헌신문지에 단정하게 싸서 들고온 조그마한 뭉치를 김씨할머이에게 내밀었다.

‘아마이, 이거 절군 고망아 조매이 개 왔소’

장노인 부부가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귀한 것 개왔구마이.여기서는 멧돼지 고기는 가끔 먹지만 절군 고망아는 정말 귀하지비. 우리가 약초르 개고 무산시장에 갈적에도 이 절군 고망아 좀 사려고 해도 몽사는 때가 있습매’.

장노인이 무적 반기는 모습을보자 여선규도 기뻤다. 장 노인 부부는 다 다리를 저는 불구자다. 본래 부령이 고향인 장노인은 소아마비로 타고난 왼쪽다리 불구자다. 그리고 가난한집 외아들이었다. 부모가 작고한 뒤 걸식을 하며 살다가 샛강골 여선규네 집엘 들르게 되었는 데, 여선규 부친 여혁룡씨가 한바위골을 소개했다. 한바위골의 특징이 군데군데에 토질이 좋은 뙈기밭이 있다는 것을 소개하며“걸식을 하면 일평생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병이 들면 꼼짝도 못하게 되는 것이 걸식하는 사람의 운명이라”며 한바위골에 들어가 부지런 히 약초채집을 하면 오막살이 집 한채라도 장만할 수 있는 미천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 그리되면 무산 장거리에 와서 살림을 차려라. 그라고 백두산 주변에서 나오는 약초를 수집하는 장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는 권고에 한바위골로 들어 왔다. 초창기에는 곡괭이 삽 망치 아니 당장 끌여먹을 간단한 취사도구들 침구들… 까지 여선규네 협조로 한바위골살림이 시작 된 것이다. 김복순의 본 이름은“간나”다. 게다가 타고난 절름발이다. 무산의 일본인 목재소의 종업원이었던 사람의 딸인데 한해봄에 장질부사가 유행하였고 그 유행병에 간나 부모와 다섯 살 난 남동생… 하여 세 식구가 몰살을 했다. 간나는 갑짜기 고아가 되었다. 다행이 누군가의 발연으로 고무산의 어떤집으론가 입양이 되었었는데 그때 이름이 생겼다. 복순. 김복순. 학교도 들어갔다. 성적도 우수했다. 그런데 소학교 3학년때 그 집이 몰락하여 만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도대체 누구입에서 나온 말인지는 몰라도 복순이가 박복한 아이라고… 그래서 만주로 이사가는 집에서도 데리고 가기를 꺼려 복순이는 아무연고도 없는 고무산 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갑자기 걸식을 해야하는 신세가 되었고… 걸식을하는 생활을 할망정 고향이 그리웠다. 다행이 학교 친구들의 도움으로 무산까지의 차비가 마련되었다. 어렸을적 살던 고향이기는 한데 찾아갈 집은 없었다. 여덟살적 기억을 더듬어 찾아간 집이 자신이 살던 옛집을 찾기는 찾았다. 갈데가 없으니 본능적으로 옛집을 찾아간 것이다. 전에는 사립문이었는 데 지금은 일각대문으로 바뀌었다. 지붕은 지난날이나 마찬가지로 초가지붕 그대로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없다.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다. 느닷없이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한참을 울다가 아디론가는 가야겠다는데 생각이 드는데 갈곳이 없다. 눈물을 흘릴수 있는 자유만이 있는 신세다. 그러나 어디로든 가야겠어서 눈물을 닦으면서 동 서 남 북 구분도 없이 덮어 놓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 근처에는 집도 별노 없다. 드문드문 있다. 그냥 터드럭 터드럭 걸었다. 그러다가 누군가와 마주쳤다. 아니 어떤 아줌마가 복순의 가슴에 손을 대며 말을 걸었다.

‘니 누구지비. 왜서 우지비?’

복순이는 흐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그 아주머니가 복순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가만이 있으레이.니 재재소집 간나 아이가? 니 내양지(얼굴)르 오솜소리(조심해서) 해 서 보레이 너도 날 알끼라’

복순이도 그 아주머니 얼굴을 알 수 있었다. 흐느끼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지비? 알 수 있겠지비? .

복순이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집 옆집에 무산소학교 다니는 학생이 하숙을 하고 있었다. 벡두산 가는 길목 어느 산골에 산다고 했다. 가을이면 머루 다래 같은 것을 푸짐하게 가지고 와서 하숙집 아이들도 주고 간나도 더러 얻어먹기도 했었는 데 그 어머니다. 복순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우는 내력을 물었다, 복순이는 흐느끼며 고무산집이 만주로 이사를 갔고“자신은 떼어 놓고 갔다”는 이야기를 털어 놨다.

‘애구 시상에. 기롬 니 지금 어디로 가는 질입메?’

복순이는 말을 못하고 흐느끼기만 했다. 그 여인이 여선규의 어머니였다. 오늘이 토요일이자 무산 장날이다. 아들 선규가 집에 가는 날이다. 이 근처에 있는 하숙집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 약초는 팔았고 이제 아들이 오면 함께 시장에 가서 자반고등어 석유등하여 생활 필수품을 사가지고 함께 갈 예정이다. 그런데 실질적인 고아 복순이를 우선은 자기집으로 데려가는 생각이다. 다리는 절룩거릴망정 외모는 반반하다.… 내가 일단 만났는데, 이것도 인연인데… 길거리에다가 팽개치고 갈 수는 없다… 우선 데리고 가자. 그리고 기회 있는 대로 수소문을 하여 마땅한자리, 수양녀같은 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어디 마땅한 집에 수양딸로라도 보내 주리라는 궁리를 거듭거듭 되풀이 하면서 데리고 가기로 하였다.

‘너의집 이웃 집에 하숙하던 내 아들이 지금도 그대로 그 집에 하숙하고 있데이. 6학년 이지비.’

그리고 샛깅골로 데리고 갈까 하는데 함께 가겠는 가고 복순의 으향을 물었다. 복순은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샛강골이 어딘지는 모른다. 우선 재워주고 먹여주는 곳이라면 아무리 험한 곳이라도 사양할 처지가 아니다.
아들을 만나러 가는 여선규 어머니를 따라 하숙집에 들어서자 그집 아주머니도 알 수 있었다. 어리둥절 하여 복순이의 인사를 받으며 찬찬히 복순이를 살피던 주인 여자가 깜짝 놀란다.
‘니가 누고. 제재소집 간나 아이가. 그체 맞제?’

하며 여선규 어머니를 본다. 여선규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옳소 . 요 이웃집에 살던 집 간나가 맞소.’

그리고 자신이 복순이를 데리고 온 내력을 늘어 놨다. 하숙집 여인은 여선규 어머니의 설명 대목 대목마다 감탄사와 연면의탄성을 연발한다. 이야기가 거의 끝날 무렵에 여선규거 왔다. 인사하는 복순이를 잠깐 살피고 나더니 주인에게 묻는다.

‘이 아가 이웃집에 살던 간나 애이요?’

‘맞다.’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리고 샛강골에 데리고 가려는 자신의 의도도 밝혔다. 여선규는 어머니의 의견에는 찬성도 반대도 안하고 씽긋 웃으며 .

‘나는 동생이 하나 더 늘었네’

하면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세면도구와 숙제 정리할 공책 몇 권을 가 둥그려 나온다. 여선규모자 일행은 시장에 가서 자반 고등어와 석유 그밖의 생활 필수품을 사가지고 샛강골로 향했다. .복순이는 첫째 한터 고개를 넘을제 땀을 배지지 흘리며 숨을 헐떡였다.그렇게 힘들게 넘은 한터고개를 수없이 넘나들게 되며 샛강골 아니 한바위골의 안주인이 될줄은 상상도 못하였다. 샛강골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여선규 아버지 여혁룡이 아내에게 수근거렸다. 복순이를 한바위골 장대식과 혼인을 시키자고. 나이 차이는 열다섯 살인데 그런 정도의 차이는 흔하다고 도 말했다. 날이 밝자 여혁룡은 일찌감치 한바위골로 향했다. 그리고 한나절이 겨워서 장대식을 데리고 왔다.
복순에게는 말한마디 설명도 없이 여혁룡부부와 장대식이 수군거려서 장대식의 민며느리로 결정을 짓고 복순이를 딸려 보냈다.이렇게 해서 27세의 총각과 11살의 소녀는 실질적인 결혼이 이루어 진 것이다. 복순이는 장대식을 아저씨라고 불렀다. 몇 년 있다가는 오빠라고 부르더니 그 몇년이 지난 16살이 되어서는 만삭이 되었다. 몸을 풀을 정확한 날짜는 모르지만 배가 부른 정도로만 짐작을 하고 여선규네 집으로 왔다. 여선규의 어머니가 자진해서 부른 것이다. 20여일이 지나서 복순이는 아들을 낳았다. 이름은 여혁룡씨가 근태(根泰)라고 지었다. 장근태… 씩씩하게 잘 자랐다. 그런데 자라가면서 한바위골을 싫어 하였다 나이 20이 가까워지면서 별볼일도 없으면서 무산장에도 가끔 나오고 약초 조금 채집하여 여비를 만들어 가지고는 청진도 갔다 온 적이 있다. 그러다가 어디론가 없어져 버렸다. 장대식씨 부부가 지금도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일설에는 만주로 갔다고도 하고 일설에는 청진 거리에서 떠돌다가 징용으로 끌려 갔다고도하고… 지금도 여선규는 장근태 이야기를 입밖에 내지 않는다. 장대식씨가 먼저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근태이야기를 안할 작정이다. 그들의 쓰라린 심정을 헤아려서다. 김복순… 이제는 40이 넘어 50세가 가까웠을 나이인데 이제는 출산의 가망도 없고 그저 먼산을 바라보는 것이 소일거리가 되어 있는 것 같다. 근태를 낳은 직후 산모는 몸을 보해야한다고… 그래야 젖도 잘나고 어린것도 잘 지란다고 산에서 만난 심마니꾼들한테 들은 풍월로 여러 가지 약초를 뜯어다가 삶아 먹였는 데 그것이 단산의 원인이 되었는지 복순이는 다시 임신을 못하고 50줄에 다달은 것이다. 복순이는 웃어도 생기가 없다. 장대식씨도 그렇다. 웃기는 잘 하는 데 생기가 없다. 옥수수를 다 먹었다. 이집에 감자 강냉이 정도의 식량은 충분히 있는 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골짜기의 바위도 많치만 그 바위들 사이 시이에는 부식토가 쌓인 기름진 땅이 군데군데 많다. 비록 손바닥만한 땅이라고 표현을 할 정도로 좁은 땅 조각들이지만 장대식씨가 경작하는 그 기름진 쪼가리 땅이 50군데도 넘는다고 들었다. 옥수수와 감자는 씨만 뿌려놓고 잡초만 뽑아 주면 잘 자란다는 것이다. 비료도 안주고 벌레잡는 약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제 먹은 옥수수들도 지루가 아주 실하다. 한자루의 길이가 보통 30센치 정도가 넘는 것 같디.그런데 아무리 옥수수 자루가 크다고는 할망정 그것 한자루으로는 한끼 요기는 시뻤다. 그렇다고 더 달라기에는 염치가 없다. 시원한 냉수를 많이 마셔 부족함을 채웠다. 좀 시뻐하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핀 복순 할머이가 옥수수를 더 삶겠다는 것을 여선규가 극력 사양하며 말렸다. 그리고 자신의 가정이 청진으로 옮긴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장씨 노인들 부부가 다 놀라워하고 서운해 하였다. 그리고 부모님들도 가는가가 큰 관심꺼리인 것 같았는데. 우선은 여선규네 가족만이 간다고 하니 장씨는 적이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이다. 영감을 빤히 본다. 뭔가 일깨우는 표정인 것 같다. 그제사 장 아바이는 피뜩 기억이 나는 듯 .

‘내 참 기억 보레이. 앉소 앉소.’

여선규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자신은 일어선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제법 큰 쿠새먹은 통나무를 들고 나온다. 바위옷으로 벌어진 부분을 가득 치웠다. 보는 순간“산삼”이고나… ·라는 것을 여선규는 직감적으로 느꼈다.눈이 커졌다.

‘앉소 앉소’장노인은 연신 손짓을 하면서 여선규를 앉았던 반석에 도로 앉도록 권한다. 여선규는 약 간 긴장된 심정으로 앉았다.‘이거 있재이요. 심이오 ’일단 말을 끊고 장노인은 나무토막을 감씬 바위옷을 조심스레 걷어낸다.‘나래 기석 아바이 청진으로 간닥하는 데, 다시 몽볼 거시능 아이지만기래두 만나기가 쉬븐 일은 애이지 않소? 기리고 나그네 생활에 어려븐 일도 있을끼요. 이거 줄 모앵이 니까 개저다 삶어 듭세.’말을 마친 장 아버이가 바위옷 속에서 몸통길이가 새끼손거락 만한 산삼, 가는 꼬리가 무척 길다. 그 것을 높이 들며 자신도 자못 신기해한다.‘이 거 한 백년은 묵었을끼요. 만난지는 몇 달 됐수다. 심마니는 물론 누구에게도 말으 아이 했소. 기석 애비 푹 삶아서 듭세’ 여선규는 산삼 이야기는 여러번 들었다. 그러나 실물을 보기는 처음이다. 듣던대로 잔뿌리가 많지는 않은데 중심 세근이 무척 길다. 몸통은 별로 길지않은 데 세근은 7~80센치는 실할 것 같다. 그리고 풍문에 듣던 대로라면 몇만원, 쌀값으로 치면 1백 가마도 넘을 것이다. 이 것을 선물로 받다니… 여 선규는 무심결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바이, 이거슬 나한테 준닥하는 거슨 너무하오. 그러지 말고 핍세. 내가 알아볼끼오, 무산 거리에는 이런 좋은 심을 살 사람이 없을끼오. 내 청진에 가는 기회가 왔스이, 처남도 있고하이니 잘 일아 보겠음. 지긋이 개지고 있습세. 내가 선물로 받기엔 됫새 크오. 말 거둡세’

두 사림의 진실된 사양과 의지가 밀고 당기는 고집끝에 결국엔 여선규 가 산삼을 가지고 왔다. 장노인은 산삼의 향방이 결판이 난 것을 후련해 하면서. 훈수를 늘어 놓는다. 오래도록 고으라. 그리고 한꺼번에 벌컥벌컥 마시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며칠동안에 마시라고 간곡히 당부 하였다. 또 조심할… 것은 20세 이하의 아이들은 절대로 먹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바보가 된다는 것이 었다. 심마니들에게서 여러 차례 들었다는 것이다. 진실로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하게 하고 산삼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아이들은 먹이지 말라니 부친께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부친이 펄쩍 뛰면서 ‘니가 먹어라’라는 것이었다. 여선규의 아내는 은근히 남편이 먹었으면 하는 하는 눈치를 보였고 어머니는‘늙은이 기력도 약하고 한데 먹어 두지 그러느냐’고 은근히 아들의 의견을 거들었다, 옥신 각신 끝에 부자가 반씩 나눠 마시었다. 사흘 동안에 조금씩 조금씩 마셨다.

심리적인 영향을 받아서인지 산삼의 약효가 나타나는 것인지 몸이 좀 가벼워 지는 것 같다. 오늘은 아이들 데리고 리운골(麗雲鄕)엘 가서 우선 벼를 베고 내일엔 탈곡을 헤서 벼를 아버지댁에 갈무리 해야겠다고 게획을 세웠다. 아무래도 집의 아이들 만으로는 노동력이 모자라니까 리운골 펑 씨(彭) 네 부자들에게도 부탁을 하리라는 예정도 한다. 오래간만에 너 벅선을 움직여 만주땅으로 건너갔다. 이제는 만주의 주인이 바귀어서인지 조금 마음이 불안하다. 그러나 몇 년동안 경작을 해오던 처지인데 아떠랴싶은 생각으로 거듭 마음을 다잡는다. 날씨는 가을 날씨 그대로 아주 청명하다. 여선규는 아들들의 손목을 잡고 휘파람을 불면서 걸었다. 한 시간쯤 절어서 리운골에 다달았다. 펑수닝(彭許寧)어머니가 마당에서 참깨를 털고 있다가 여선규네 일행을 보고 반색을 한다. 먼저 기석이가 펑수닝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청년단에서 불러 훈련받으러 갔다는 것이다. 무슨 훈련인가는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펑수닝 어머니가불편한 표정으로 더듬거리는 우리말로 여선규를 보며 말을 한다.

‘저어, 이야기 들었는지 모르 것는데요 농사진 거 조선 사람이 몽 가져간대요.’

농산물에 관해서 들은 이야기는 없지만… 어쩌면 통치권자가 바뛰었으니까 내 경작하던 토지의 관할 변동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런데 이제 듣고 보니 현실로 나타나는 구나. 펑 씨 부인은 동정어린 표정으로 말을 계속한다. 조선 사람이라 해도 민주 땅에 살고 있으면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조선땅에 살면서 만주땅에서 농사 짓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단다. 더불어 기왕에 경작한 땅의 농산물도 못가져 간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나니 갑자기 적지(敵地)에 와 있다는 생갇이 들었다. 공포감이 들었다. 두아들들을 데리고 온 것을 후회했다. 가자. 더 있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는 일어선다.

‘알겠습니다. 중국정부의 방침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가겠습니다. 가자’

두 아들들도 펑씨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버지의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두 아들들도 힘빠진 태도로 부시시 일어섰다. 자신들이 경작했던 논빼미를 흘깃 보고 그냥 스쳐 지났다. 마치 경기에 패베하고 가는 선수들 같은 몰골이 이와 같으리라. 여선규는 근심이 휘몰아친다. 부모님들의 식량 대책을 수정해야 한다는 절박감이다. … 산삼을 공연히 먹었다… 쌀이 백가마도 넘을텐데… 그라나 사라진 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 어떻게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부모에게 리운골 추수문제에 관한 사실을 밝혔다. 부모님들의 실망도 컸다. 김서분도 낙심한다. 아직 해는 높다. 무산시장엘 다녀 와도 될 시간이다. 집모퉁이로 아내를 부른 여선규는 무산 시장에 가서 쌀 두가마는 사와야 한다고 의논 했다. 노인네들의 기본식량으로는 감자와 강냉이가 있다. 1년 식량 정도로는 충분하다. 쌀을 좀 보탠다면 말이다. 두 아들을 데리고 무산 시장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일본 관헌에게 식량을 빼앗기지 않는 세월이니 시장에 햅쌀이 넉넉하게 나와 있다. 한가마를 사서 3부자가 나누어 짊어지고 샛강골엘 갔다.두 군데의 높은 산을 넘기애는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노인들이 거치른 음식을 안 잡수시게하려면 힘은 들지만 내일 한탕 또 해야 한다. 쌀 두가마니를 감자든 강냉이든섞어 잡수시면 그다지 심한 악식은 아니리라는 짐작이다. 땀을 흠뻑 흘리며 쌀푸대를 짊어지고 집에온 3 부자를 본 여선규의 부모들도 김서분도 무척 안타까워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킬킬대고 웃으며집뒤 샘터로 기면서‘아베도 옵세’부른다. 3부자가 서로 서로 목물을 하면서 시원해 하는 탄성을 질렀다.이튿날 두가마니 째 쌀을 사러 무산시장에 가는 길에 우체국에 가서 청진 처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레 간다고…쌀 두 가마니를 사다놓고 나니 여선규의 마음이 한결 홀가분하다. 그 다음날 무산으로 나와 처남의 집에서 일박하고 다음날 청진행 기차를 탔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