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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정영애] 발칙한 곗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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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429회 작성일 10-12-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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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을 훨씬 넘기고 치매까지 앓던
시할머니 세상 뜬 날
우리는 하나 둘 곗날처럼 모였습니다
한 방울의 피가 점조직으로 튀어간 사돈의 팔촌까지
핏줄을 타고 모였습니다
몇 해 동안 굳었던 손들 과하게 잡고 흔들면서
얼마를 내야 체면과 체온이 잘 섞일까 속으로
계산기 두드리며
내가 부은 계는 언제쯤 타게 될지 대충 헤아려보다
이름 멋드러지게 쓴 부조 봉투 하나씩
곗돈처럼 냈습니다
먼 훗날
내 차례에도 잊지 말고 잔칫날처럼 북적거리도록
삼가 고인 앞에 머리 조아립니다
소복도 새 옷이라고 맏며느리 치맛자락 휘감고 다니 길래
섹시하다고 농을 치니 화장발이라며 받아칩니다
접수구의 아들은 아직도 곗돈 받느라
물 한 잔 못 마시고 꼼꼼히 얼굴들 적습니다
다행히 밑지는 장사는 아닌지 아들들 표정 흐뭇합니다
밥 한 쟁반 받쳐 들고 바쁘게 조문객 사이로 다니는 딸들
함박꽃처럼 벌어진 입에서 지루한 어머니를 피워냅니다
만개한 그 입 속에 팁을 줄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곗날처럼 먹고 마시고 떠들다 고스톱도 무르익어
피박 썼던 조문객들
꼬질꼬질한 담요처럼 구겨져 일어섭니다
다음 계주는 누구일까 두리번거리며
사라질 신발 눈 여겨봅니다
발칙한 곗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