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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정영애] 볼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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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49회 작성일 10-12-3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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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펜 좀 빌려 줄래요?
돌려받으면 본전이다
돌려받지 않아도 생각나지 않는다
슬쩍 집어와도 미안하지 않다
선물로 받으면 냉큼, 고맙지 않다
아무리 화려하게 진화해도 그냥 볼펜일 뿐이다
바닥에 굴러 다녀도 선뜻 줍고 싶지 않다
가방을 뒤지면
잡동사니와 함께 언제든 한 두 자루쯤 손에 잡힌다
그러다 급히 쓰려면 보이지 않아 성질내고 싶다
끊임없이 일을 할 때만 반짝 이름을 가진다
홧김에 집어 던져도 만만해서 미안하지 않다
자꾸 디지털에 밀려 설 자리가 좁아진다
그래도 문구점에서는 상품으로 대접 받는다
이 매력 없는 물건에게 경의를 표하며

우리 집에선 나도 볼펜 한 자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