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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정영애] 회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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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50회 작성일 10-12-3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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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족보를 가지고 있는 나는
한 시대의 불우한 사내처럼 고독하다
쓰러져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우듯
안겨드는 바람 모두 품어
한 섬의 그늘을 드리우고 싶었지만
악보에서 떨어진 음표처럼
스스로 제 몸 때려가며
혼자 뿌리 내리는 법을 알아갔다

나는 가혹한 언어다
탁, 탁, 탁
잘못을 더 깊이 못질하는 망치다
허공에 몸을 내리칠 때마다
내 속을 흐르는 바람의 무늬와 결을 생각한다
매섭고도 호방하게 깨뜨린 허공들을 쓸어 담으며
나는 나를 반성한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아버지의 손에 들려진 나는
이 순간
나무 한 그루보다 더 무겁다
눈썹 밑에 대롱거리던 아이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꼿꼿한 나의 문장들이 먹물처럼 번진 아들의 종아리에
붉은 글씨로 읽힌다

잔소리처럼 뿌리가 내리는지
온몸이 화끈거린다

나를 내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