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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정영애] 길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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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01회 작성일 10-12-3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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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승(女僧)이 되고 싶었다

함부로 살았던 지난날을
푸르게 삭발하고
문둥병처럼 도지는 캄캄한 마음을
연등으로 매달아
평생을 묵언하듯 살리라, 그랬다
하지만 헤픈 연애질로
삶은 제멋대로 바람이 나서
잎맥마다 세속의 길을 감추고
나를 꼬드겼다
사내를 받아들이고
아이를 낳고
적금 통장도 불릴 줄 아는

긴 염불처럼
회오리치지 않는 생이
만성 두통으로 이력이 날 즈음
이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 몰라
가끔 술도 마시다가
새벽이면 공양 올리듯
공손히 쌀 씻어

절 한 채 세우는 마음으로
밥상을 차리면
식구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 수다한 아침
그 속으로
나뭇잎 같은 여자 혼자
오늘도
타박타박 먼 길 떠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