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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정영애] 불멸의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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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90회 작성일 10-12-3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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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회관 개강식하는 날
몸속에 밥을 품은 여자들 파마머리처럼 동글동글 모여든다
배우고 또 배워 비어 가는 뼈를 채울 채비다
국기에 대한 경례!
일제히 태극기를 향해
왼쪽 가슴의 소복한 밥그릇 위로
오른쪽 손이 밥뚜껑처럼 얹혀지면
숟가락 들기 바로 직전의 순간처럼
엄숙한 시간이 집중되고
삼천리 금수강산 지도가 유선(乳腺)처럼 팽팽히 뻗쳐온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뒤로 한 채
난데없이 더운 가슴 짜르르 젖이 돌아
배우지 못한 아낙처럼 젖가슴 풀어헤쳐
달덩이 같은 아기 하나 품에 안고
출렁출렁, 젖 한 통 물리고 싶다

잇몸으로 웃는 어린 세상과 둥개둥개 눈 맞추다
젖꼭지 문 채 잠든,
몰캉거리는 저 무른 것 팔에 감고
낮잠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싶다
세상 모든 일이 마르고 닳도록 반질거릴 쯤
비로소 저릿저릿 감겨오는 모성의 신앙
젖내 풍겨오듯 흥건한 미몽에서 돌아오면
귓전에 출렁이던 동해물과 백두산은 온데간데 없고

몸속의 밥 두 그릇 그윽하게 품고 서 있는
거룩한 여자들의 육덕 같은 집을 바라본다
깜빡거리는 초가 같은 어머니의 몸이
쉬이 불을 끄지 못하는 까닭도
식지 않는 불멸의 밥 그릇
따뜻이 품고 있기 때문인 것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