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0호2010년 [시-정영애] 오리털 잠바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341회 작성일 10-12-31 10:23

본문



오리털 잠바를 입고 벗을 때마다
몇 개의 깃털이 눈발처럼 날리다 떨어지곤 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꺼내 입는 오리털 잠바
수년 째 입어 얄팍해진 가슴께가
시큰둥한 부부처럼 밋밋하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속 깊다

칼바람에도 소심한 가슴을 지켜 준 것이
잠바를 샀던 몇 장의 지폐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미처 몰랐다
수십 마리의 오리들이 뒤뚱거리며
절망으로 벗어놓은 울음이라는 것을
버둥거리던 물갈퀴마다 생 한 줄씩 지워졌다는 것을

사는 것이 때로는 사막 같아
지퍼를 올릴 때마다
괜히 눈 부라리며 세상을 단속하던 가슴
오리털 잠바 깊이 숨는다
보이지 않는 배경에서
토닥이며 등 밀어주는 것들의 힘이 둥실둥실
물 위를 떠 간다
갇힌 계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푸득거리며
먼 귀가를 서둘렀을 지친 날개들
햇살 나른한 마룻바닥에 새끼오리보다 가볍게
어미의 헤엄쳐 오는 소리에 귀 세우는

깃털 몇 개
나무의자에 걸쳐진 낡은 잠바는
두 팔 늘어뜨린 채
못 본 척 졸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