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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정영애] 칼과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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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2,233회 작성일 11-01-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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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칼로 물 베어봤어?
쇠심줄보다 질긴 운명의 입자들이
칼을 에워싸지
이박삼일 칼부림 쳐도 물은 흠집 하나 없이 말짱하지
단호하게 잘라내도 용수철처럼 퉁, 되돌아와서
다시 한 몸으로 이어지지
노련한 칼잡이처럼 단칼에 물의 결 베어내도
토막토막 잘린 물은 자석처럼 척척 칼날에 달라붙지
쇠보다 강한 물이 칼의 이빨 하나씩 먹어치우지
칼이 지쳐 흐물흐물해지면
흙탕물은 가라앉고 걸러진 윗물 떠서 말갛게 얼굴을 씻지

칼금으로 상처투성이 된 물, 시침 뚝 떼며
깔끔한 수면 펼쳐놓고 수면에 들지
일렁일렁 운명이 젖어가지
칼로 물 베기란
쇠심줄 같은 인연을 수없이 난도질하다
카리스마 잃은 칼날이 스스로 물에 몸을 던지는
칼과 물을 한 몸에 가지고 숙주처럼 동숙하는 부부라는 집

당신, 칼로 물 베어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