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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호2010년 [시-신민걸] 반쯤 먹다 버린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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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764회 작성일 11-01-0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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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소강상태다
어제 쓰고 온 우산을 출근길에 골라 들었다
우산살을 붙잡고 있던 젖은 실은 떨어져 나가고
그 녹슨 살마저 곱게 휘어져 버린
창립 40주년 기념 우산이 딱 나랑 맞춤

홀가분한 게 좋아지는 지금
어지간하면 무겁다고 두고 다니는 습관
가방도 지갑도 시계도 반지도
여러 개라서 버려도 그만인 나도 두고
버스비처럼 그래도 한 권은 꼭 챙겨 다니는데

해가 나서 후덥지근한 날씨
양산도 아닌 우산을 접어 들고
버스에서 내려 응달로 골라 걷는다
세상의 반쯤은 양달이고 그래서 응달이라면

버려도 그만인 게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거라면
옥수수 응달 한 구석에 먹다 버린 사과가 보인다
움푹 팬 싯누런 사과 속에
아침부터 개미가 바글거린다
매일 신고 다녀 내 발 닮아 닳은 운동화
땀에 찬 발가락이 간지러워 꼼지락거린다

반쯤 파먹다 만 삶, 그래도
아직은 둥근 내 사과를 보면서
개미들이 기꺼이 와서 바글거릴 거라고
사과는 아침에 먹어야 건강에 더 좋다고
지금은 소강상태라고 낯간지럽게 우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