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뫼 호수별 보기

40호2010년 [시-박대성] 기엉 역驛이 없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galmoe
댓글 0건 조회 1,930회 작성일 11-01-04 11:04

본문



기엉 驛을 찾아야한다.
내 유년의 풀피리를 싣고 떠난 역
내 사랑과 내 존재의 근골을 모두 싣고 떠난 역
난 그 역을 찾아 내 생의 남은 날을 모두 태울 것이다.

푸른 보리밭을 달리던 나의 소년
네 잎 클로버를 걷던 나의 소녀
소꿉 집에 걸던 붉은 꽈리 등燈을 찾아야 한다.
길과 골목을 빠져 다니던 나의 미꾸라지들을 찾아야 한다.
내가 낳은 아이와 나의 유년이 만나던 간이역들은 어디로 갔나
거센 역류와 파도를 피해 바위틈에 숨은 가재를 찾아야 한다.
내 몸을 수색하겠다며 당도하는 희고 차가운 월말의 영장들

나는 나를 수색한다.
나의 친구를 수색하고 나의 노래와 나의 사랑을 수색한다.
기엉 驛은 어디에도 없다.
기다림을 가려주던 플랫폼도 낮게 내려앉고
기차를 떠나보낸 두 줄기 철길도 이젠 마른 눈물 자국 같다.
기엉 驛은 어디에 있나, 내 생을 송두리째 싣고 떠난 역

나는 나를 떠나간 기억들에게 변변한 배웅도 하지 못하였다.
인사도 건네지 못하였다.
기엉 驛을 찾아야 한다.